유한한 것의 아름다움 (완결)

이 또한 지나간다

by 향글

오늘 비로소 인생이 아름다운 이유를 아주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우리는 유한한 삶을 살고 있고 아무리 고통스럽고 힘들고 지겹고 짜증 나고 진절머리가 나더라도

언젠가는 끝이 난다.

일 하는 것 빼고 모든 게 즐거운 요즘, 난 몇 달 전부터 퇴사를 준비했다.

대단한 준비를 한 것은 아니지만 퇴사를 마음먹은 시점부터 컴퓨터에 있는 파일들을 보기 좋게 정리하고

책장에 있는 오래된 서류들을 파쇄하고 각종 업무 관련 사이트의 로그인 정보를 정리해 놓았다.


지금 직장에서 8년을 일하고 마지막 날이 되었을 때 난 전혀 내가 자랑스럽지도 뿌듯하지도 않았다.

사람들의 칭송을 받는 게 여전히 어색하고 부끄럽고 송구스러울 뿐이다.

내가 원해서 그만 둘 뿐인데, 아쉬워하는 사람, 내가 너무 좋다는 사람, 슬퍼서 우는 사람 등 너무 감사한 사람들을 뒤로 하고 떠나는 것도 미안하다.


한 동안 누군가가 "이제 그만해"라고 이야기해 주면 너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누군가 "끝!"이라고 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내가 "끝"냈다.

내가 떠난 자리에도 다른 사람들은 남아 있는 무기를 챙겨서 또 전쟁과 같은 삶을 치를 것이다.

지금은 그저 남아 있는 사람들이 너무 힘들지 않기를 지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하루하루 살아내면 언젠가는 찬란한 끝이 온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조금은 어색하고 쑥스럽더라도 자신의 어깨 한 번 툭툭 쳐주면서 "수고했어" 한 마디면 힘들었던 기억이 사라지고 행복한 기억만이 남는 매직이 시작된다.


아빠의 장례식장에서도 그랬다.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에 돌아가신 아빠는 병석에 3년 정도 누워계셨었다.

아주 힘든 병이나 사고는 아니었지만, 고관절 골절로 수술을 받고 다시는 두 발로 서지 못하셨다.

아빠가 이를 악물고 재활하려고 노력하고 회복하려 했다면 몇 년을 더 사셨을지도 모른다.

병실에 같이 누워있던 90세 할아버지가 말씀하셨었다.

'자넨 젊으니까 금방 회복할 거야'

아빠가 있었던 병원 6인실에는 78살인 아빠가 제일 젊었다.

하지만, 아빠는 많이 아파했고 노력하기를 그만두었으며 계속 누워계시다가 수술받고 2년 후에 돌아가셨다. 아빠 장례식에서도 슬픔보다는 이제 아빠가 아프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큰 위안이 되었다.

그리고 동생의 결혼식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준 아빠가 고마웠고 코로나 때 돌아가시지 않아서 두고두고 감사하고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 환난 속에 돌아가셨으면, 코로나라도 걸리셨었으면 얼마나 큰 슬픔이었을까.

장례식도 제대로 못 하고 마지막 모습도 보지 못 한채 너무 슬픈 마음으로 보내드렸어야 할 지도 모른다.


퇴사할 때도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퇴사 준비를 했다.

퇴사일이 결정되니 하루 하루가 소중했고 내가 더 해주고 갈 일이 없을까 둘러보게 되었다.

끝이 있다는 것을 알면 우리의 삶도 더 열심히 살게 되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뱀파이어는 영원을 살면서도 행복하지 않고 냉소적인지 모르겠다.


하루하루 즐기는 것,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 어떨 때는 하루하루 견디는 것이 인생인가 싶다.

내 인생의 어떤 시점이든 돌아가고 싶지 않고 아쉽지 않다.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큰 선물은 앞으로만 전진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끝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아름다운 오늘 하루를 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