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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 좋은 날

by 장발그놈

아침부터 꼬였다.

눈을 떠보니 이미 출근 시간이 지나있었다.

허겁지겁 나왔지만 지하철은 지연되고, 오늘따라 얄궂은 신호등은 빨간 색만 계속 보여줬다.

회사에 도착해 보니 벌써 시간은 10시.

지난 3년간 지각 한번 한 적 없는데 오늘 기록이 깨지는게 아쉬웠다.


그런데 막상 사무실에 들어서자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다들 자신의 자리에서 서류를 확인하고, 모니터 화면을 쳐다보며, 일정을 체크하고 있을 뿐이었다.

내 지각을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다행이라 생각하고 자리에 앉아 일을 시작했다.

늦은 출근 탓에 밀린 일을 챙기다 보니 점심이 되었을 때도 밥을 먹을 틈이 없었다.

바쁘게 일을 처리하고 나니 피곤함이 몰려왔다.

'아침에 커피 한잔도 못했네... 어이구 점심시간도 다 끝나가는구나.'

오늘은 어쩔 수 없이 점심도 걸러야겠다고 생각하는 그 때,

김밥 한 줄과 커피 한 잔이 책상 위에 놓였다.

“이거라도 먹으면서 해. 아까 보니 정신없이 바쁘던데.”


순간 코끝이 찡해졌다.

나는 고개를 들어 동료에게 짧게 말했다.

“고마워.”


비록 편의점 김밥과 커피였지만 나에게는 구원의 손길과 다름없었다.


오후에는 뜻밖의 전화가 걸려왔다.

몇 주째 붙들고 있던 거래처 건이 드디어 결제가 승인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이번 건 처리되었습니다. 다음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수화기 너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막혔던 숨길이 트이는 듯했다.

보고서를 정리해 제출하자, 상사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중요한 일도 다 끝났으니 오늘은 다들 일찍 들어가자구.”


사무실이 술렁였다.

힘겹던 하루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벼워졌다.

서류철을 덮는 소리, 노트북을 덮고 가방을 여미는 소리.

나 역시 책상을 정리하고 가방을 메었다.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다.

지각한 것도 안 걸리고, 동료가 챙겨준 덕분에 점심도 먹을 수 있었고,

거래처 일도 좋게 해결했고, 조기 퇴근까지 하다니...


아직 해가 지지 않은 퇴근길,

지하철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이 환해 보였다.

오늘 하루 겪은 일들이 머릿 속을 스쳐가며, 그제야 느껴졌다.


아무도 내 지각을 눈치채지 못한 건, 내가 늘 부지런히 움직이며 시작해온 덕분이었다.

생각해보니 평소에도 나는 출근과 동시에 자리에 앉는 사람이 아니었다.

메일을 확인하고, 거래처 전화를 받고, 회의 자료를 챙기느라 아침마다 늘 사무실을 오갔으니까.

오늘 역시 그 모습 그대로였을 뿐이다.


점심에 김밥과 커피를 건네받을 수 있었던 건, 동료와의 관계를 소홀히 하지 않고 함께 쌓아온 시간 덕분이었다.

함께 야근할 때 나눈 농담, 급한 업무를 대신 도와주던 작은 도움,

그런 순간들이 쌓여 오늘의 김밥 한 줄이 된 것이었다.


거래처 일이 풀린 건, 수없이 맞춰보고 다듬은 노력의 결실이었다.

일찍 퇴근할 수 있었던 건, 그 모든 과정에서 성실함과 헌신이 쌓여 상사의 신뢰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단순히 운이 좋은 하루였다.

하지만 실은, 오래전부터 하나하나 쌓아온 작은 일들과 태도들이 오늘 하루를 만들었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조용히 웃었다.

“사람들은 오늘 같은 날을 운이 좋다고 말할지도 몰라.

하지만 그 행운은 우연히 굴러들어온 게 아니야.

부지런히 움직여온 아침들이,

함께 웃고 나눈 시간이,

묵묵히 쌓아온 노력들이,

오늘의 작은 행복을 만든거지.

운수 좋은 날이 아니라, 좋은 운수를 만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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