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굴레)
사랑하는 나의 아이야,
이 편지를 읽을 때 쯤이면 너도 이미 세상의 냄새와 맛을 알게 되었겠구나.
숲의 향기, 비 오는 날의 흙냄새,
그리고...
인간의 간에서 나는 그 달콤하고 짙은 향도 말이지.
솔직히 말하마.
인간의 간은 너무나 맛있다.
그 어떤 고기보다도 부드럽고,
단 한 입만으로도 우리의 몸과 마음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지.
심장이 뛰고, 피가 끓고, 머릿속이 온통 그 맛으로 가득 차버린다.
너도 그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울 거라는 걸, 나도 잘 안다.
하지만 명심해라.
인간의 간을 100개 먹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구미호로 남을 수 없다.
그 순간부터 우리는 모든 능력을 잃은 평범한 인간이 되어버린다.
아무런 힘도, 아무런 특별함도 없이...
그저 늙고 병들어 천천히 죽어가는 존재로 전락하게 되는 거야.
100번째 간이 우리를 완전히 무너뜨릴 거야.
잊지 마라.
간은 미치도록 달콤하고 감미로운 독이다.
그 맛을 보는 순간, 너는 더 이상 구미호가 아니게 된단다.
그러니, 내 사랑하는 아이야...
처음부터 아예 입에 대지도 말아다오.
처음부터 그 유혹에 빠지지 않는 것이 가장 현명한 길이다.
어미도 그 진실을 알기에 이렇게 너에게 부탁하는 거다.
부탁이야.
네가 너 자신을 잃지 않기를.
-영원히 너를 사랑하는 어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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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내려다보던 어린 구미호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손끝이 부르르 떨리더니, 어미의 마지막 말은 주먹 안에서 쥐어짜지듯 일그러졌다.
"흥! 나를 버리고 사라진 어미의 말을 들을 필요는 없어!"
어린 구미호는 편지만을 남기고 사라진 어미을 원망하며 말을 토해내었다.
"뭐? 인간의 간 100개를 먹으면 우리의 요력이 전부 다 사라지고 인간이 된다고? 약해빠진 인간이 되버리면 더 이상 간을 구할 방법이 없을테니 구미호 일때부터 인간의 간을 포기하라고? 난 어미랑 달라! 인간이 되어서도 안전하게 간을 구할 방법을 미리 모색해 두면 되지. 요력을 이용해 인간들을 홀리고 제물로 바치게 만들면 인간이 되어서도 간은 항상 구할 수 있을테니까. 난 인간의 간을 계속 탐닉하겠어! 백개든 천개든 내가 원하는대로!"
구겨진 편지를 갈기 갈기 찟어 버려버리고 그는 마을로 향했다.
그는 본능이 요구하는 만큼 닥치는 대로 인간의 간을 탐하였다.
그 와중에 운이 좋게도 화전민이 모여 사는 마을을 발견했고 예상보다 쉽게 그들을 자신의 꼭두각시로 만들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산골 외진 곳에 홀로 사는 여인을 발견하고 구미호는 아무도 모르게 그녀의 뒤로 접근했다. 소리를 지르지 못하게 한 손으로 입을 막고 남은 손으로 배룰 꿰뚫었다.
"어디 보자... 호오 이 여자의 간이 이제 100번째 사람의 간이군.
뭐 사람이 되어서도 간은 언제든지 얻을 수 있으니 맘편히 먹을 수 있겠어"
구미호는 붉은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간을 한입 깨물었다.
"우욱 뭐야! 이 끔찍한 맛은!"
요력을 잃어버린 그의 입 안에는 비릿한 혈향과 메스꺼움이 가득했다.
구미호가 경악하는 사이 배가 꿰뚫린 여인이 죽어가며 말을 하였다.
"이 어미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는구나...
그래 이 어미의 간 맛은 어떠냐?
구미호가 인간이 되는 100번째 간은 꼭 인간이 된 구미호의 간인 것이지...
이게 우리 구미호의 저주이자 숙명이란다. 결국 너도 나와 같은 길을 걸었구나."
구미호는 비틀거리는 몸으로 뒤로 물러나며 외쳤다.
"아니야! 난 다를 거야! 나는 어미랑 다를 거라고!"
하지만 이미 사라진 요력, 맥없이 허공을 가르는 손,
그리고 입안 가득히 남은 피비린내가 그에게 현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마을로 돌아가자, 그를 따르던 화전민들이 하나둘 그를 외면했다.
요력을 잃은 그에게서 더는 매혹의 힘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우린 이미 알고 있었지... 인간이 된 구미호는 더 이상 요력을 유지할 수 없다는 걸."
"당연한 일이야 만약 모든걸 가지고 인간이 된다면 그것또한 요괴인게지."
구미호는 주저앉았다.
손을 내려다보니, 이제는 손톱마저 둥글게 변해 있었다.
끝없는 욕망에 갇혀 영원히 특별한 존재로 남을 줄 알았던 자신이,
결국 어미와 같은 길을 따라 걸었음을 깨달았다.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다니...
난 왜 당신의 말을 듣지 않았을까...
특별히 영특하다 여겼던 내 자신이 어미가 간 그 길을 그대로 걷고 있었다니."
밤하늘을 올려다보니 둥근 달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달 아래, 마지막 남은 새하얀 꼬리 한 가닥 마저 희미하게 사라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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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굴레를 거스르려 했던 자, 결국 그 굴레에 스스로를 가두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