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러닝 홀로서기

6.29km

by 웰메이드

크로스핏터 D와 처음으로 안양천을 뛴 그날 나는 감기몸살을 된통 앓았다. 한 3일 눈물콧물을 쏙 빼며 아픈 정강이를 부여잡고 러닝은 내 길이 아닌가를 고민하며 한 주를 보내고 나니 엉덩이가 근질거렸다. 이상하게도 심장이 빨리 뛰고 숨은 가쁜데 몸이 가벼웠던 그날의 기억은 내게 중독적인 간질거림으로 남았다.


처음 D와 러닝을 뛰던 날에는 바람이 조금 차가워진 걸 감안해 기모후드티를 입고 나갔다. 뛰다가 목이 마를까 봐 작은 물병도 하나 챙겼다. 물병을 담을 귀여운 힙색도 달랑달랑 매고 갔다. 그리고 그 모든 게 짐이 된다는 걸 고작 뛴 지 10분 만에 알 수 있었다.

러닝의 기본은 가벼운 몸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목은 마르지 않고 열이 금세 오른다. 따라서 물은 언제 마시는 게 좋나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초심자는 5km 정도 뛴 뒤에 한두 모금 정도만 마셔주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라고 답할 것이다. 음식을 먹거나, 물을 많이 마신 뒤 달리게 되면 세상 그 어느 때보다 위의 존재를 강렬하게 느낄 수 있다. 물론 뛰면서 울렁거림과 명치의 고통을 느끼게 되는 것도 덤으로.


첫날 D에게 배웠던 대로 나는 아주 가볍게 조깅을 하듯이 발을 굴렀다. 러닝을 할 때엔 가볍게 지면을 통통 밀어내듯이, 상체는 최대한 고정을 하고 팔을 크게 휘젓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보폭을 마냥 좁게 하기보단 고관절(골반과 허벅지 사이의 접히는 부분)을 최대한 부드럽게 둥글게 휘젓는다는 생각으로 다리를 움직여준다.

사실 나는 뛰는 걸 정말 싫어했었다. 헬스장에서 운동을 할 때엔 러닝머신 근처에도 가지 않았으며 그나마 하는 유산소라고는 사이클 타기 정도만 했다. 왜 뛰는 걸 싫어했냐면, 나는 달릴 때 가슴에 충격이 가는 것도 싫었고 많이 뛰면 가슴이 처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금세 숨이 차서 얼굴이 빨개지고 머리로 피가 쏠려 어지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러닝은 정말 불편한 운동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밖에서 달려본 러닝은 달랐다. '습습-후후'를 입을 작게 벌려 이빨 사이로 숨을 쉬어내면서 걷는 것보다 조금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하면 금세 주변 풍경이 바뀐다. 파란 하늘에 떠있는 구름들이 내 생각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것도 알 수 있다. 또한 빛들이 반사된 안양천의 윤슬과 그 위에 떠있는 청둥오리가족들 굉장히 귀엽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마치 하늘에서 달리고 있는 것처럼, 귓가에는 나의 숨소리에 바람소리가 덧씌워져 들린다. 그 순간은 오로지 혼자만이 존재하는 시간이었으면서도 고독하지 않은 시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달리는 사람들은 많았다. 젊은 사람들만 달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달리고 있었다. 60대는 한참 지나보이는 어르신들도 많았고 초등학생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와 함께 뛰고 있는 가족들도 많았다. 아버지와 아들 같아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고 엄마와 딸인 것 같아 보이는 러닝듀오도 있었다. 서로의 속도에 개의치 않고 모두 저들만의 속도에 맞춰 발을 굴러나가고 있었다. 발에 부스터를 단 것처럼 슝하고 스쳐 지나가는 아주 빠른 러너들도 있었으나, 천천히 느릿하게 뛰어가는 러너들도 있었다. 나도 그 사이에서 나만의 속도를 지켜가며 달려가는 느낌은 정말 신기했다. 서로가 다른 속도를 갖고 있으나 함께하고, 귓가에는 오롯이 나의 소리와 바람소리만 들리는 그 순간은 날 행복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이 날 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멀리 뛰게 되었다. 그 순간이 너무 좋아서, 땀이 나고 점점 다리가 무거워지지만 바람소리에 갇혀 햇살을 받는 게 너무 좋아서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처음 출발했던 지점으로 다시 돌아와 멈추니 갑자기 무거웠던 다리에서 가벼운 간지러움이 올라왔다. 분명 힘든데 숨은 차지 않고 온몸이 가벼워지는 기분이라니 정말 짜릿한 순간이었다.

집에 도착하니 온몸에 돌던 도파민이 죽고 피로감이 치솟았다. 또한 골반 비대칭이 심했던 탓인지, 뛰는 폼이 불균형했기 때문인지 왼쪽 골반이 엄청 아팠다. 다른 사람들의 근육통은 어떻게 올지 모르겠으나 나는 골반이 아래로 빠지는 것 같은 통증과 앞정강근, 오른발목과 오른발의 족저가 뻐근했다. 많이 나아졌던 족저근막염이 다시 도질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엄습했기에 집에 가서 열심히 스트레칭을 해주어야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날 느꼈던 행복감이 너무 강렬했기에 나는 뛰는 게 정말 좋아졌다. 그리고 다리의 통증이 없어진 날 나는 다시 뛰러 나가게 됐다는 건, 다음 에피소드에서 얘기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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