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보든 내 마음이 투영되는 시기
지금의 제 모습인 것 같아요.
그 때문인지, 버스가 잠시 멈춘 그 순간에도
길가의 화단을 쉽게 스쳐 지나가기 어려웠어요.
정돈된 모양대로 예쁘게 잘 가꿔진 무궁화나무.
누군가 일부러 잘라내었다고 느끼기 어려울 만큼 단정해 보였지만
어쩐지 묘하게 눈에 밟혔어요.
열 맞춰 서있는 나무 가지들 사이로
조심스럽게 뻗어 나온 가닥 하나가
정돈된 선 밖으로, 아주 조용히 자라고 있었어요.
열심히 자라났지만
'곧 잘리겠구나.'
굳이 거스르고자 하는 마음으로 자란 것도 아닐 텐데
하는 마음에 오래 바라보게 되었어요.
마음이 아프다기보다는
보이는 모양 때문에 멈춰야 한다는 사실이
묘하게 가슴에 남았어요.
생각해 보면 살아오며 우리도
잘 자라고 있으면서도 괜히 조심하게 되는 순간이 있잖아요.
멈출 이유가 없는데도
마치 허락받지 못한 자람처럼 말이죠.
그런데 창 밖의 무궁화는
말끔히 지워진 흔적 대신
멈추지 않고 자라는 새로운 흔적을 남기고 있었어요.
그 모습을 보고 깨달았어요.
자람이란, 누군가가 바라봐주어야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멈춘 것처럼 보여도 계속되고 있었다는 걸.
잘려나간 것이 무엇이었든
잘려도 잘리지 않은 듯이
잘려도 자랄 수 있다는 것을 보았죠.
당신의 자람 또한,
누군가에겐 이미 용기가 되고 있을지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