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간식 땅콩
따닥따닥 콩 볶는 소리가 요란할 때면 여지없이 밖에 비가 오고 있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마당에 발도 내딛지 않고 방에만 박혀 있는 손녀딸을 위해 할머니는 콩을 볶으셨다.
지글지글 기름에 부침개를 지지는 듯한 빗소리와 요란한 콩 볶는 소리는 찰떡같은 조합이었다.
그런 날씨에는 마루까지 나오는 것조차도 귀찮았던 나는 높은 문턱에 턱을 괴고 앉아 비 오는 마당과 하늘을 에둘러 보곤 했다.
에둘러 먼 곳을 바라보는 눈은 그리움이 가득한 눈이었다.
엄마와 아빠가 보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집안 사정으로 나를 외가댁에 두고 가실 때 아빠는 열 밤만 자면 오신 다고 했었다.
“아빠 언제 와?”
“열 밤만 자면 아빠가 깍까 많이 사가지고 올게,
울지 말고 할머니 말씀 잘 듣고 있어야 해 울면 안 사 올 거야 “
이날 한 아빠의 약속은 내가 삼촌들을 협박할 때 사용하는 큰 무기가 되었다.
"우리 아빠 오면 깍까 안 사줘" 하며 마음에 안 드는 심경을 어필했었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는 약속한 열 밤이 지나도 오시지 않았고, 반년 가까지 시골 외가 댁과 친가 할머니 댁을 오가며 보내야만 했다.
외할머니 댁은 내가 살던 시골 보다도 더 깊은 시골이었기 때문에 유치원도 다닐 수 없어서 그냥 할머니를 따라다니며 투정을 부리거나 내 또래의 막둥이 삼촌과 강둑이나 들로 다니며 노는 것이 일상이었다.
한 살 많은 막둥이 삼촌은 나를 친동생처럼 데리고 다니며 들꽃을 꺾어 한아름 안겨 주기도 하며 잘 놀아 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리움도 컸지만 호사를 누린 시간이기도 했다.
시골 마당에는 오리나 닭들이 주인행세를 하며 마음대로 돌아다녔다. 그들 모두가 나에겐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혼자서 마당에 내려가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날도 마당에 내려가지도 못하고 마루에만 앉아 있는 나를 혼자 두고 밭일 나가려니 불안하셨는지
“할머니가 땅콩 따 줄게 같이 밭에 가자!”
이 한마디에 할머니를 따라 밭에 갔다.
그 시절 깊은 시골에 간식이라고 해봐야 제철에 나는 수확물이 아니고서야 콩 같은 것들이었는데 그중에서도 땅콩은 어린 내 입맛에도 쏙 드는 고급간식에 속했다.
밭에 도착하니 이웃 분들도 앉아서 밭일을 하고 계셨다.
손녀딸을 데리고 왔냐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는 이웃들 틈에서 난 할머니께서 말씀하신 땅콩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할머니, 땅콩은 어디 있어?"
"응 여기 있는 게 땅콩이야 먹고 싶으면 따, 할미가 볶아 줄게"
하지만 내 눈에 땅콩은 없었다.
“할머니 거짓말쟁이, 땅콩이 어딨어 없잖아!”
한바탕 생떼를 부리는 나에게
“여기 봐 땅콩이 이렇게 많은데, 왜 없다 하냐”
하시며 콩나무를 통째로 뽑아 올리셨다.
순간 너무 신기해서 눈물 그렁그렁했던 눈을 비비며 자세히 들여다봤다.
땅콩이 뿌리에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난 그날 할머니께서 땅콩을 뽑아 올리시기 전까지 모든 콩은 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린 콩깍지 안에서 자라는 줄 알았다.
이날의 땅콩과의 첫 만남은 훗날 초등학교 수업시간에 나의 어깨를 으쓱이게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