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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우리는 이렇게

by 멍냥이

어린 시절부터 개성이 강했던 우리 4남매는 각자의 성향대로 잘 자랐고

약간의 모자람과 약간의 남다른 재주들을 조화롭게 활용해 가며 잘 살아가고 있다.


어떻게 보면 부모에게 넘치도록 자랑스러운 자식들은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엄마가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자식들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엄마는 작년 나와의 마지막 만남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난 지금이 최고로 행복해"

"다른 집 자식들 부럽지 않아"

"엄마가 많이 부족했지? 그래서 더 고마워"

그날 엄마의 말씀으로 인해서 우리는 엄마를 행복하게 한 자식들로 남게 되었다.



너무나 긍정적인 엄마와 함께한 세월들이 강하고 포기를 모르는 우리를 만들어 냈다고 생각한다.

문맹의 난관에서도 끝없이 노력하며 우리가 스스로 독립해 나갈 때까지 지켜 내셨고,

늘 냉철함을 잃지 않고 적절한 선을 그어 가며 강하게 키우셨다.

적절히 긋는 선 때문에 가끔 마음이 다칠 때도 있었지만 우리는 스스로 해내는 강한 근성을 가진 어른이 되었고,

실패는 해도 절망은 하지 않는 사람들이 되었다.


모두가 서툴렀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서로에게 감사하며 떠나간 이에 대한 슬픔을 함께 나누고 위로할 줄 아는 우리가 되었다.



말썽꾸러기 오빠는 외국을 내 집 드나들듯이 돌아다니며 살다가 지금은 이 땅에 정착해서 작은 사업을 하며 살아가고 있고,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봐야 한다는 인생철학을 버리지 않고 끝없는 도전을 계속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건강상의 이유로 꿈도 꾸지 못했던 가정을 이루어 예쁜 두 딸을 두었고, 내 의지와는 달리 사업하는 남편 옆에서 조금은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다.

나의 남다른 재주는 드라마틱한 삶을 조금 조용하게 만드는데 유용하게 활용되었고, 이제는 조금씩 자신을 찾아가는 중이다.


욕심쟁이 여동생은 누구보다도 훌륭한 육아를 해서 나와는 달리 따듯하고 친구 같은 엄마가 되었고, 엄마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해준 살가운 딸이었다.

지금은 전업주부에서 벗어나 워킹맘으로 살며 또 다른 인생을 개척 중이다.


성실하고 자존심 강했던 남동생은 직장인으로 살다가 안정된 가정을 위해 공무원 생활을 택했다. 그리고 이젠 멈추었던 꿈을 향해 틈틈이 준비를 하며 공직을 정리하기 위해 매우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우리는 50이 넘는 나이에도 꾸준히 꿈을 잃지 않는 어른들로 살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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