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5주] 뇌를 속이기

통증 극복의 시작

by jaewoos

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모든 것들을 해보고 나니 이젠 새로운 생각이 든다. 내 마음가짐의 문제가 아닐까? 작년 11월의 고통스러웠던 35km부터의 시간이 뇌 속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그때처럼 달리기만 하면 뇌에서 이건 고통을 수반하는 행위기 때문에 달리는 것을 막으려고 통증을 주는 것은 아닐까?


어느 정도 말은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다고 믿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뇌를 지배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오고 있었는데, 사실은 뇌가 나를 지배하고 행동을 유도한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제목에서처럼 5주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뭐라도 시도해봐야만 했다.


당분간 달릴 수 없겠구나, 올해 상반기 마라톤 대회들을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4개나 신청을 해 두었는데, 내 것이 아님을 그냥 보내줘야만 하는 구나라고 생각했었다. 이번 오사카 마라톤에서는 조금 뛰다가 아프면 지하철을 타고 돌아와야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 이후 3주 뒤에 있을 동아마라톤은 병원 서류를 제출하면서 취소를 할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 이후에 있는 두 개의 고양 하프마라톤과 서울 하프마라톤 대회도 취소를 하고 회복에 전념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전에 마지막으로 나의 뇌를 속여보려고 한다. 고통으로부터 뇌가 나를 지배하고 있다면, 나도 내 뇌를 속여볼 수 있지 않을까? 요즘 일주일에 네 번은 헬스장에 간다. 하체 근력운동을 위주로 하고 있는데, 가끔 컨디션이 좋을 때에는 러닝머신 위에 올라가서 한 발자국씩 내디뎌본다. 매 번 1km만 있으면 다가오는 통증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오늘은 뇌를 속이고 말 거다.




4km/h로 시작했다. 이건 그냥 걷는 속도다. 2분을 걸었다. 그 후 2분을 이 속도에서 달렸다. 분당 180번의 발자국을 내딛는 속도로 아주 촘촘하게 달렸다. 그 모습을 본다면 우스꽝스러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걷는 속도에서 빠르게 발을 전환하며 달리다니. 걷는 속도라 그런지 무릎에 느낌이 안 왔다. 하지만 무리하지 않았다. 이건 모두 뇌를 속이기 위한 빌드업 과정이기 때문에. 0.5km/h 씩 속도를 올리며 1분 걷고, 1~2분 달리기를 반복했다. 5.5km/h 쯤 되니 걷기도 애매하고 뛰기도 애매한 그런 속도가 만들어졌다. 여기서는 좀 더 오래 걸어보았다. 이게 뛰는 건지 걷는 건지 뇌는 모르겠지? 이 속도에서 걸을 땐 전혀 아프지 않았다. 일상생활과 근력운동에서는 무리 없는 내 무릎이 이 정도는 걷는 거라고 인식을 하는 것 같다. 이 속도에서도 뛰어보기 시작했다. 2분을 달려도 무리가 없네, 3분으로 뛰어보자. 그리고 다시 걸었다. 7.5km/h까지 속도가 올라갔다. 이제부터는 2분 달린 후에 1분은 6km/h에서 걸었다. 그 이상 속도에서는 걸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7.5km/h에서 3분을 뛰는 것도 아무런 무리가 없었다. 원래는 5분만 달려도 아팠던 무릎이 안 아프기 시작했다.


물론 더 낮은 속도에서 달려서 그럴 수도 있지만, 내 경험이 비추어봤을 때 아무리 낮은 속도라도 이 정도 달렸으면 아파야 정상이었다. 한번 도전해 보고 싶었다. 이제 뇌를 완벽히 속인 것일까? 시속 10km를 맞춰 놓고 5분 달리기를 목표로 했다. 내 오른쪽 무릎은 그 5분 동안 아무 문제 없이 잘 버텨주었다. 성공이었다. 뇌를 속이는 전략이 옳았던 것일까? 11월부터 뇌에게 지배당하고 있던 것인 걸까? 나는 그동안 뇌로부터 속아서 병원에 그 많은 시간과 돈을 쏟아부은 것일까?


다음 주는 설 연휴다. 설 연휴 동안엔 고향에 내려가 친구들도 만나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달릴 시간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뇌가 나를 지배했던 것인지 한번 더 체크해 보려고 한다. 만약 내가 다시 뇌를 속일 수 있다면 오사카 마라톤 완주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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