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우울증에 대하여, 첫 번째 거짓말
초등학교 때의 일이다. 불현듯 학교에 가기 싫었다. 딱히 교우관계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학교에 갈 이유를 찾지 못했다. 선생님한테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고 일주일 가까이 무단결석을 했다. 집 밖을 나설 때에는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를 외치고 가방을 올려 메고선 대문을 열었다. 엄마는 당연히 내가 학교에 가는 거겠지 했을 것이다. 학교에 가지 않았던 내가 했던 일은 대단한 일도 아닌 그냥 집콕이었다. 대문을 나가서 집 앞 큰 전봇대 뒤에 숨어있다가 엄마가 출근하는 걸 보고 몰래 집으로 다시 들어갔다. 초등학교 때라 수업이 일찍 끝났기에 안 들키고 엄마의 퇴근시간까지 집에 있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평소보다 일찍 퇴근을 해 집에 오셨고 학교에 있을 딸이 집에 있는 걸 발견하셨다.
엄마 : 지혜야, 너 왜 이 시간에 집에 있어??
나 : (망했다... 아 큰일 났다. 뭐라고 해야 되지... 혼나겠다..) 어... 그게.. 내가 아파서 열이 많이 나서 오늘은 조퇴하고 집에 일찍 왔어.
엄마: 아니 아프면 엄마한테 얘길 했어야지. 아침까지는 아무 말도 없었잖아. 이리 와봐, 이마 좀 만져보자. 대체 열이 얼마나 나길래....
나 : 아니 열도 열인데... 몸도 괜히 으슬거리는 게.. 춥기도 하고...(아 열이 안 날 텐데.. 아 큰일 났다.. 진짜.. 어떡하지...)
.....
[엄마가 손을 들어 내 이마를 짚어본다. 야속하게 열도 안나는 이마가 원망스럽다.]
......
엄마: 지혜야, 열이 안나는 거 같은데... 그냥 감기 몸살인 건가? 콧물이랑 기침은?? 괜찮은 거 같은데.. 그래도 병원 가자. 옷 입어.
나 : (?...!!!) 아냐 엄마, 나 병원까지는 안 가도 돼.. 사실 많이 아픈 건 아니라서... 엄마, 나 그냥 집에서 쉬면 괜찮을 것 같은데.. 방에 가서 누워 있을게.. 근데 나 새우죽 먹고 싶어., 새우죽 좀 끓여주세요..
엄마 : 그래, 내 딸 죽 끓여줄게, 근데 진짜 병원에 안 가도 괜찮겠어??. 엄마 속상하다.. 그래도 다음에는 아프다고 꼭 말해. 엄마도 말을 안 하면 알 수가 없어. 엄마가 매일 바빠서 미안해...
나는 아주 천역 덕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아무런 죄책 감 없이 마치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거짓말이 입에서 술술 흘러나왔다. 이 것이 엄마에게 한 첫 번째 거짓말이었다. 그 뒤로도 수많은 거짓말로 엄마를 아프게 했지만 그때마다 엄마는 내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아픈 내가 안쓰러워 끓여주신 엄마의 새우 죽은 정말 맛있었다. 나는 그 새우죽을 먹을 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죄책감 없었다. 그렇게 죽을 다 먹었을 때쯤, 친구들이 찾아왔다. 하필이면 엄마가 일찍 퇴근하신 그날 말이다. 친구들은 지혜가 아파서 한 달 넘게 일주일이 다 되도록 학교에 오지 않았으며 어디가 아픈 건지 내가 아닌 우리 엄마에게 물어봤다. 그렇게 내 첫 번째 거짓말은 끝이 났다. 엄마는 놀란 마음을 가까스로 진정시키고 친구들을 돌려보냈다.
왜 학교에 가지 않았냐고, 친구들이 괴롭혔냐고, 선생님한테 혼나서 그랬냐고, 내가 학교에 가지 않는 이유에 대해 엄마는 집요하게 물어보셨다. 엄마의 추궁에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나는 나조차도 이유를 몰랐기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갑자기 벙어리가 된 딸한테 질릴 때로 질린 엄마는 내 손을 붙잡고 집 밖을 뛰쳐나갔다. 엄마의 손은 그때나 지금이나 하얗고 처량하다. 처량한 엄마손을 잡고 집 뒤에 있는 산을 오르고 또 올랐다. 산 중턱쯤 되자 엄마는 나에게 나뭇가지를 꺾으라고 하셨다. 네가 맞을 회초리를 직접 꺾으라고 하신 거였다. 나는 일부러 얇고 얇은 앙상한 나뭇가지만 골라 꺾었다. 집으로 돌아온 내 종아리에는 앙상한 나뭇가지 모양이 빨갛게 찍혔다. 맞은 건 난데 엄마가 우셨다. 나는 엄마가 평소에 우는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많이 당황했다. (아주 나중에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울지 않았던 엄마가 그날 날 때리면서 울었다는 걸 깨닫고 더 많이 죄송했다.)
엄마의 눈물을 보고 나서야 나는 내가 한 행동이 잘못이라는 걸 깨닫고는 학교에 열심히 다녔다. 왜 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더이상 묻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열심히 다녔다. 학교 안에 책상과 걸상이 수갑처럼 느껴 질때가 많았지만 엄마를 울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야 내가 학교에 가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서 알았다. 그때의 나는 무기력했고 삶을 지탱해 주는 당연한 것들에게서 점점 벗어나고 있었다. 소아우울증이었다. 아빠의 사업실패로 갑작스레 떠난 고향이 그리워 생긴 향수병에서부터 시작된 우울증은 거식증과 몽유병, 발작으로 이어졌다. 몸에 특별한 이상이 없었음에도 또래보다 작고 마른 나는 매일밤만 되면 몸부림을 쳤다. 저녁마다 급작스럽게 찾아오는 발작은 시작과 끝이 20분 정도 걸렸다. 길을 가다가 신호등 앞에서 거품을 물고 쓰러지거나 방 안에서 몸을 베베 꼬는 나를 보며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엄마에게 나는 어딘가 불편한 딸이었을 것이다. 정상이 아닌 어딘가 매일 아픈 아이, 어딘가에 속하지 못한 아이였을 것이다. 발작을 견디는 건 나와 엄마의 일상이었다.
시간은 흘렀고 나는 자랐다. 초등학생이 아닌 중학생이, 고등학생이 되었다. 그렇게 친구가 생기고 나만의 놀이터가 생기자 고향에 대한 그리움도 옅어졌다. 그리움이 옅어지니 몽유병도 우울증도 발작증상도 서서히 줄어들었고 난 이제 내가 아프지 않다고 생각했다.
- 우울증에 대하여
*우울증은 우울감과 의욕 저하를 주요 증상으로 가지며 다양한 인지·정신·신체적 증상을 동반하고, 일상기능을 떨어뜨리는 정신과적 질환이다. 이런 질환이 아동·청소년에게 발생하면 소아우울증이라고 한다. 소아우울증의 원인은 60%가 환경적 요인(학업 스트레스, 가족·또래관계 등)이며, 나머지 40%는 유전적 요인이다.
* 소아우울증 증상 및 진단 방법
소아우울증은 성인우울증과 비슷하게 식욕 저하, 불면증, 집중력 저하 등을 동반한다. 특히 공부에 집중이 안 된다고 호소하거나, 이전에 즐기던 활동에 대한 흥미나 의욕이 사라지는 아이들이 많다. 우울한 상태를 자각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우울감 대신 짜증이나 예민함이 나타나기도 한다. 또한, 성인과 달리 소아우울증은 주의력결핍행동장애(ADHD), 품행장애, 불안장애 등을 동반할 수 있어서 체계적인 진단이 중요하다.
* 우울증 경고 증상
* 소아우울증 예방방법
소아우울증의 가장 중요한 예방 수칙은 마음과 몸이 건강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게임이나 휴대폰 대신, 건전한 신체활동을 통해 휴식할 수 있는 시간·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우울증 예방을 위해 중요하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교육 환경에서는 아이들이 여가시간을 충분히 확보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부모가 나서서 아이의 숨 돌릴 틈을 직접 마련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정기적인 선별 검사도 조기 발견과 예방을 위해 중요하다. 미국에서는 만 12-18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연 1회 우울증 선별 검사를 권장하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초등학교 1·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정서행동 특성검사가 시행되는데, 정기 검사로서는 부족한 실정이다. 따라서 가정에서도 실시할 수 있는 우울 검사(PHQ-9)와 같은 평가 도구 등을 통해 매년 정기 검사를 해볼 것을 추천한다.
6. 환자와 가족에게 한 말씀
“소아우울증을 겪는 아이와 부모는 이 상황이 자신의 잘못에서 비롯되었다며 죄책감을 느끼곤 합니다. 그러나 우울증은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병이므로, 그 원인을 찾으려 하기보다는 현재와 미래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책하지 말고 아이의 회복과 건강한 미래를 위해 함께 노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잊지 마세요.”
* 출처 - [자료] 우울증의 잘못된 믿음과 진실 (서울대어린이병원 소아정신과 MAY 클리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