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아리는 날 수 없지만 난 날았다.
고등학교를 다시 다니는 꿈을 자주 꾼다. 졸업이 1년 정도 더 남아서 그 기간을 채워야 한다는 내용으로 항상 똑같은 꿈이다. 학교에 다시 다녀야만 한다는 얘길 들을 때마다 꿈인걸 알면서도 이상하게 행복하다. 돌아가고 싶지만 다신 갈 수 없는 곳, 나에게 학교란 그런 곳이었다.
우리 학교 교복은 당시 부천에서 이쁜 걸로 일등이었는데, 네이비 칼라에 여름에는 리본끈으로 가을과 겨울에는 넥타이로 포인트를 주는 디자인이었다. 난 친구들보다 교복과 헤어진다는 사실이 더 슬펐고, 졸업 후 10년이 지나도록 교복을 버리지 못했다. 사실 좋은 추억이나 즐거운 기억도 없는 학창 시절이었지만 막연히 어떤 곳에 속해 있다는 소속감이 좋았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고 나니 또다시 적응의 시간이 왔고, 난 다시 애를 쓰기 시작했다. 외톨이가 되지 않고 친구들 무리에 속하기 위해서 주전부리를 싸가지고 다니거나 그 시절 유행 아이템들을 빨리 사서 주목을 받으려고도 했다. 그렇게 1년이란 시간을 보내고 고등학교 2학년이 되니 모든 에너지가 소진되어 있었다. 친해지려 노력했던 친구들의 입에서 묘하게 우울해 보인다는 농담 섞인 조롱을 듣고서는 난 더 이상 아무하고도 말을 하고 싶지가 않았다. 말할 필요성을 찾지 못했고 조용히 혼자만 있고 싶었다. 그렇게 입을 닫아 버렸다. 어쩌면 기질이 그리 한 건지 태생이 *아웃사이더인 건지 잘 모르겠다.
교실 뒤편 게시판에 제일 조용한 아이로 뽑혀 이름이 올라가 있을 정도로 말을 안 했기에 날 기억하는 친구들도 아마 몇 없을 것이다. 그렇게 자진해서 2년을 *묵언수행 을 했다. 말을 안 하고 책상에 앉으니 할 게 없었고, 서랍에 있는 교과서를 꺼내 읽고 공책에 필기를 했다. 그러면 시간이 잘 갔다. 다른 애들이 보기에는 공부에 미친 아이인 줄 알았을 것이다. 그래도 그 결과 나는 고등학교 2, 3학년 때의 내신으로 대학을 갔다. 나는 내가 대학에 갈 수 있을 거라고 꿈에도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난 거의 중학교 내내 반에서 꼴등이었다. 45명 중에 잘해야 43등이었다. 공부에도 흥미가 없어서 담을 쌓고 지낸 결과였다. 그런 내가 대학을 가다니, 정말 아이러니했다. 엄마에게 나의 대학 합격 소식을 전했을 때, 엄마는 우셨다. 수원에 있는 좋은 대학도 아니었는데 합격이라는 말에 감동을 받은 것이다. 엄마는 내가 아파서 사람구실도 제대로 못 하고 살 줄 아셨다고 했다. 가벼운 우울감은 언제나 있었지만 난 늘 씩씩했다. 말 한마디 안 하던 고등학교시절이 신기하게 그립기까지 한걸 보면 언제나 열심히는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난 고등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대학까지 가게 되었다.
*아웃사이더
사회, 경제, 법률적으로 일정한 테두리가 설정되어 있는 경우에, 그 테두리 밖에 있는 자.
*묵언수행
침묵, 즉 일부러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