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빈 가지
늦 가을 거리
- 김 중 근
내 마음과 눈 안에 아름답게 피어오르던 가을 단풍이 다지고 떨어져서 바쁘게 앙상한 겨울을 재촉한다.
한철 무성했던 나무의 모습은 간 곳 없고 코 끝이 싸아한 바람만이 길 위에 가로수의 낙엽을 쓸어내린다. 청동 빛 찬 색으로 잠긴 거리의 표정은 이제 서서히 겨울로 돌아서 얼어붙는 듯하며 내 얼굴의 표피(表皮)가 수축되어 실 핏줄이 당겨지는 소리가 나고 세포가 줄어서 조여지는 소리가 나는 듯하다. 늦은 가을 비 지나가고 낙엽이 져서 나목(裸木)이 서있는지 그리 오래지 않건만 냉랭한 바람으로 채워진 내 속에서 몸부림치는 속기(俗氣)는 시간에 나를 맡겨 놓고 기다리면 없어질텐데도 안타깝고 괴로워서 몹시 꿈틀 꿈틀거린다. 어느 한 날,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그만인 것을, 그것은 그칠줄 모르니 종심(從心)의 나이와는 상관없는 일인 모양이다.
내안 어느 구석엔가 흰 구름처럼 떠돌다 남겨진 속기(俗氣)들을 흔적도 없이 떨쳐내기 위해 시리도록 맑은 공기를 가슴에 채운다. 두 뺨에 와닿는 싸한 바람이 코를 통해 걸러져 폐부에서 찌들었던 속기(俗氣)들을 깨끗하게 씻어 날려버린다. 동맥 정맥에 이르면 말초 신경까지 어느덧 말개져 한철 찌들었던 기분까지 상큼한 바람 소리를 담아낸다. 그러나 두 팔을 힘껏 벌려 그 차가운 기운을 맞이한다. 상큼하게 부딪쳐 오는 차가움 때문인지...아니면 활활 타오르던 붉은 한 잎의 이파리가 떨어지면서 사람의 마음을 흔들고 지나가는 애절함 때문인지....늘 늦 가을에 오는 원인 불명의 불치병에 남모를 시름에 잠기곤한다. 오지않을 사람처럼 미련없이 떠나가는 계절도 아닌데, 해 저문 가을 거리를 바람에 휘날리는 낙엽처럼 이리저리 헤매기도 한다.
세월이 나를 버리고 간 것이 엊그제 같은데 떨어지지 않으려 필사(必死)의 힘으로 앙상한 가지에 붙어있는 한 잎처럼 벌써 2024년 한 해의 끝 자락에 서있다. 아직 내 마음은 드높은 가을 하늘처럼 맑고 높아서 푸른 색으로 색칠해야 할 남은 일들이 산더미 같다. 시간은 낙엽 떨어지듯 하루 하루 지난다. 저녁 소슬한 바람 불어 마지막 잎새 떨구듯 쏜살같이 떨어지는 섬득한 하루에 온 몸을 지척이며 마음이 숙연해진다. 몸짓 웅쿠려 세로 누우면 미처 이루지 못한 일들이 혈관을 타고 이리저리 헤집고 돌아다닌다. 잡념(雜念)들이 머릿속 꼭대기에 가득해진다. 불면의 맥박질은 더욱 가슴을 두들긴다. 눈빛으로 만나고 싶은 사람도 가슴에 묻어둔 채 되돌아볼 틈도없이 앞으로 내달리기만 했던 하루하루가 더 아쉽기만 하다.
현재 남아있는 날들이 날짜와 시간과 분이 아니라 초로 계산된 숫자같이 살 수만 있다면 빈 껍데기로 남겨진 속기(俗氣)들을 이젠 마음을 비워 털어내고, 가을 단풍처럼 매달아 놓을 것은 매어놓고 낙엽처럼 떨쳐 버릴 것은 버리면서 살겠다. 이 해 남은 날은 고운 미소 지으며 흰 겨울답게 앙상한 삶의 빈 가지를 잘라내고, 새로 태어나 사는 기분으로 희망의 새싹을 틔우며 매달려 살겠다....
- 2024년 11월 7일(목) 늦 가을 거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