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亂場)의 봄날
여러 유형(類型)의 인생(人生)살이
- 김 중 근
봄은 얼어붙은 땅에 바람을 불어 꽃이 된다. 겨우내 움추려졌던 사람의 마음도 붉게 불을 지펴핀 동백 꽃처럼 빨갛게 녹아내린다. 흐드러지게 핀 매화의 요염한 자태에 넋과 혼을 불어넣어 한 겨울 잊어버렸던 기지개에 활력을 찾게한다. 예년보다 일주일 정도 빠르게 피었다는 섬진강가의 매화 꽃은 이미 절정에 이르렀다. 제주도 서귀포에서는 이미 때 아닌 목련 꽃도 피었다고 한다. 4월이면 개나리가 마지막 꽃샘 바람을 밀어내면, 사람들 마음은 완전한 봄을 맞을 수 있다. 길가의 채 가시지않은 쌀쌀함은 양지 바른 들녘에 밀려 날고 있다. 조만간 줄기 털이 보송한 민들레도 화려한 서곡(序曲)을 기다릴 것이다. 특히 이 곳의 전.군간 100리길 벚꽃 축제는 전국적으로 유명하여 이런 봄의 화신(花信) 앞에 밀려올 사당 풍물패들의 호적 소리, 괭가리 소리, 장고 소리에 흥이 겨운 촌 아낙들의 흥취까지 합세하면 꽁꽁얼어 붙었던 빙토(氷土)는 어쩔 수 없이 빨갛게 녹아 꽃을 피울 수 밖에 없다.
특히 난장이 서있는 벚꽃 축제장에 가면 한철동안 기다렸던 장돌뱅이나 여러 유형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 전국 각처에서 모인 유랑객(流浪客)들의 몸짓과 봄을 만끽할려고 나온 사람들의 파안대소(破顔大笑)가 하얗게 떨어진 벚꽃과 어울려 까드러진다. 나는 살아있슴을 난장에서 만나는 여러 유형(類型)의 인생(人生)살이에서 실감(實感)한다.
눈을 돌려보니 한 코너에서 통돼지 바베큐 고기를 성큼 성큼 떼어준다. 손이 시커멓고 큰 아저씨다. 칼갈이 아저씨가 난장 한편에 쪼그려 앉아 포크송 기타를 연주한다. 가수도 아닌데도 왠만한 가수 뺨칠 정도다. 아저씨가 턱밑 악보 채에 마이크를 올려놓고 열심히 목청을 돋군다. 부엌 칼을 팔며 갈아주는 아저씨다. 한편 열심히 섹스폰도 불고 가위 장단에 북을 치며 호객하는 울릉도 호박엿 아저씨, 전 국 각지에 올라온 풍물패와 먹거리 장터의 호객 등 이밖에도 웃지못할 갖가지의 사연을 안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다. 산다는 것이 이런구나 싶다.
둘레둘레 중간 정도 다다르니 난장 모퉁이에 빨간 코 삐에로 아저씨가 보인다. 난장 중앙 무대(舞臺)에 올라 구슬피 불러대는 신파조 가극(歌劇)에 등장하는 아가씨와 배불뚝이 아저씨의 공연이 한참이다. 깨보 얼굴에 가슴이 찢어진 부라자를 차고 치마를 깡총하게 입었는데 뱃살이 삐져나와 관람객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한다. 내용은 슬픈데 그들의 넋살에 혼이 빠진다. 사랑의 늪에 빠진 이가 그 사랑이 결국 가슴에 멍울을 만들고 어떤 뼈아픈 상처를 동반 할지라도 쉽게 포기하려 들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사랑 이야기도 한쪽이 도망가려하면 다른 한쪽은 더욱 괴로워서 술로 그 괴로움을 달래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해학적으로 풀어 관람객들에게 박장대소(拍掌大笑)케 한다. 떠나야 될줄 알면서도 헤어져야 될 그 순간까지 놓치지 않기 위해 전보다 더 많은 애간장을 녹여서 자신을 학대해야 하는 점을 역설적으로 풀어댄다. 비수(秘邃)와 같은 칼날을 마음에 품고 살면서도 가슴 저미는 아픔을 평생끼고 살아야되는 점 또한 신파조로 풀어낸다. 그렇다. 우연이든 하늘이 맺어진 필연적인 숙명이든 사랑 앞에 이별은 서로를 힘들게 한다는 내용을 신명나게 풀어내는 그들의 익살에 절로 박수치게 된다. 꽃과 벌, 나비와 마음을 교류하듯 남녀가 주고받는 치고 빠지기가 가관이고, 분명 쌍욕과 성희롱성 단어의 조합임에도 그 절정에선 관중들이 배꼽을 잡고 낄낄댄다. 더러운 물에서 아름다운 연꽃이 핀 것 같이 그 여운이 길다.
내일이면 그 다음날이 되고 또 내일이 오면 반복되는 일상 속에 안간힘을 다해 또 그 앞날을 맞는다. 다람쥐 체바퀴 돌듯 돌고돌고 또 돌지만 어쩔수 없이 반복되는 삶 속에 그래도 봄은 오듯이 올해도 지리산 동동주와 파전을 파는 부치개 집도 어김없이 열렸다. 딸과 아주머니가 함께 운영하는 곳이다. 아주머니는 세월의 굴곡 만큼 얼굴에 주름이 깊다. 혼자 딸을 반듯하게 키워낸 그녀의 딸은 서울의 “E여자대학”을 다니는 재원이다. 딸은 잠시 주말을 이용해서 엄마를 도와준다고 한다. 아주머니는 난장이 서기 전까지 밭이나 들에서 각종 채소나 나물을 캐다가 장에 내다팔곤 하는데 한철이면 이곳에 나와서 동동주를 곁들인 부치개 장사를 한다. 모진 세월을 자녀들을 위하여 희생했지만 자랑스런 자녀들이 있었기에 항상 당당했던 그녀다. 모질게 일을 해서 등이 활같이 굽고 손 마디가 번데기같이 굵고 바래졌지만, 허리 구부려 캐온 나물을 듬뿍 얹어 인정 넘치게 부치개를 부쳐주는 그녀다. 지금의 어려움이 아무리 힘들고 또 괴로워도 자녀들의 성장을 지켜 보면서 겨울 하뉘 바람도 물러나듯이 그녀는 나름대로 봄빛 찬란한 희망을 갖고 산다. 아주머니가 캔 봄 나물로 지져진 부치개로 부터 도시에서 좀처럼 만나볼 수 없는 인정을 맛볼 수 있다. 풋풋한 도량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 살아가는 모습과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봄은 이렇게 무룻 성숙되어 5월 초(初)까지 절정(絶頂)을 이룬다. 이에 부치개와 동동주를 곁들여 한잔에 취기를 채촉하면 사람 냄새가 더욱 그리워지게 된다. 난장에서 만난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 모습들을 보면서 삶의 의욕이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솟아오르게 된다. 그런 모습들이 얼마나 정겹고 인심이 넘치는지 모른다. 마치 얼어붙은 땅에서 파아란 풀이 솟아난 것처럼 우리에게 희망을 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봄이 오는 난장에서 사람 사는 모습을 가슴으로 느끼면서 자연의 변화와 다를바 없음을 보게 된다.
지난 동안 생활고에 움추려진 마음으로 더욱 추위에 떨게했다. 혹독했던 겨울 찬 바람도 꽃샘 바람에 밀려 어느새 달아나버리고, 지금은 따사한 햇빛이 온 들녘과 주위의 산을 따뜻하게 지핀다. 아침에는 또랑길 푸르름이 채 걷혀지지 않은 안개와 어울려 한결 신비스러워 보인다. 지리산 자락 산동(山東)의 산수유는 유유하게 푸른 섬진강 물까지 노랗게 채색해 들어갈 화려한 몸짓을 하고 있다. 주위의 흐들어진 매화의 자태가 작설 잎의 푸르름에 더욱 선명하여 오가는 이들의 마음까지 흐트러놓는다. 오가는 길 보리밭 푸르름도 한 뼘이나 웃 자랐다. 논밭 또랑길 한 켠에서는 쑥과 냉이를 캐는 아낙네의 고즈넉한 모습에서 몽실몽실한 봄 내음이 물씬 풍긴다.
봄은 이렇게 아낙의 손끝으로부터 시작하여 섬진강 칠십리 길을 따라 우리네 마음까지 물들인다. 난장(亂場)으로 가는 호젓한 벚꽃 길 홀로 걸으며, 잠시 스치는 봄 바람이 내 마음을 맑게 씻어내리길 바란다.
- 2007년 3월 어느 날 함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