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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홀라당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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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중근 Dec 08. 2024

가을 비가 내리는 날이면.....

10월의 마지막 날...

가을 비가 내리는 날이면.....   


- 김 중 근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다구름에 갇혔던 빗방울은 잿빛 하늘에 스며들어 대지를 적신다가을 늦더위가 물러난 후 후덥한 기운이 하늘과 땅 사이를 빠져나오질 못한채보슬비가 내린다이런 날은 우산을 챙겨나서지 않아도 된다잔잔히 내리는 비로 머릿카락을 젖히고 걸으면가을 거리에 옷은 젖겠지만비 내리는 거리에는 옛영화(榮華)의 발자취가 그대로 남는다그와 함께 손 잡고 같이 걷던 그 추억이 남기 때문이다.   

   

전국적으로 비가 밀려 온다는 일기 예보이지만 뻥 뚤린 내 마음은 그 무엇을 갖다 붓고 부어도 채워지질않는다회색 빛과 함께하는 비가 내리는 날이면슬픔을 내리는 하늘의 통곡이 무겁게 들린다내리고 내린 수 억년의 잿빛 어둠을 뚫고 앞뜰 또랑 사이로 서럽게 흘러가는 슬픔이다또랑은 모든 더러움과 추잡스러움들을 몰아서 청명(淸明)의 음율을 타고 씻어 내려가는 곳이지만지난 계절의 설움을 멍울진 소리로 토해놓는다....횟색 장막에 갇혀진 이 비 오는 거리에서 생기잃은 이파리들은 잎을 펼쳐 생명수(生命氺)로 필생(必生)의 힘을 다하나오는 계절 앞에 무기력 하기만하다회색빛은 늘 어둠과 밝음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군데군데 제대로 칠하지못한 설움을 발라놓다 이파리를 툭툭 털어내며 결국 포기하고만다최초의 밝음이 잿빛으로 변한 세상을 슬퍼하면서 한없는 눈물로 속죄한다짙은 설움을 맑은 빗방울 한 알 한 알에 꿰메어 초목들에게 생기를 불어주려던 빗방울은 인간이 베풀지못할 바다같이 깊고 넓은 너그러움이 배어있다들에 핀 이름모를 한 송이 꽃에도 영겁(永劫)의 시간을 흘려보내고 이 세상에서 가장 이쁘고 맑은 색깔이 보이도록 발버둥치는 낙엽이다.     


비는 늦은 오후 부터 하루종일 내릴 것을 예고한다나뭇가지에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에 놀라문간방에 움추리고 낮잠을 자던 울 어매는 훔칫 놀라 맨발로 빨래 널어놓은 곳까지 종종 걸음으로 달려나간다하지만 습기 젖은 돌풍이 빨래감들을 이리저리 널치고 헤집어 펄럭펄럭 흔들어댄다낙엽 날리듯이 빨래들이 허공 속에서 제 멋대로 춤춘다마치 세탁기같이 예기치못했던 돌풍은 모든 빨랫감들을 소용돌이 허공 속에 마구 돌렸다울 어매는 활같이 휘어진 불편한 몸을 이끌고 손을 들어 공중에 휘저어본다고달프고 힘들기만한 그 노력이 안스럽다이미 땅 바닥에 떨어져 더러워진 늦가을의 편린(片鱗)들이다허공 속으로 영원히 날아갈 것만 같았던 지난 날의 편린(片鱗)들을 증폭시킨다어떠한 슬픔도 이를 대신할 수 없다

 

똑똑똑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는 박혀진 설움을 끄집어낸다빨랫줄로 꽁꽁 묶여 더렵혀진 음이지만 맑은 빗방울로 씻어본다이미 더렵혀진 마음을 부비며 빗물로 딲아내면서고통스럽던 날을 씻어내본다한 여름 폭서에 시름시름 메말라 소멸하던 목초(木草)들이 한 방울의 빗방울로 생기를 되찾겠지만이 비로 모든 걸 비워내겠지....한 시절의 설움은 하늘 아래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모를 길이의 빗줄기를 타고 사색(思索)의 늪을 향해 떨어진다어딘가에 깊이 박힌 설움이 되살아난다.     


버릴 것은 거를 것없이 흘려 보내야하는데 산전수전(山戰水戰휘돌아 온다물 길 따라 물 줄기는 뼈 아 기억들을 잘도 찾아 정수리에 괴어진다...썩은 낙엽만 가득한 내 그 곳에 새물을 채워 붓고 부어도 지친 설움이 가시지 않으니 이 물기많은 늦가을을 어이하면 좋을지 안절부절이다...모든 것을 흘려버리고 씻어내린 후 빈 자리의 허전함이 더 해서인가!.....     


하늘이 만든 길은 구름만이 흘러갈 수 있듯이 결국 기쁨과 슬픔고통과 환희행복과 불행이 

온통 나로 부터 시작된 것임을 왜 아직 난 깨닫지못하고 있는지 종심의 나이가 서글퍼진다......   

            

                                        - 2024년 10월의 마지막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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