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떨리는 어느 날
X를 생각한다.....
- 김 중 근
어디선가 가랑잎 굴러다니는 빨간 단풍잎 하나에 왠지 모를 설레임이 다가가온다. 작은 흔들림에도 마음은 콩당거린다. 마치 홍조띤 소년(少年)같다. 길가에 피어난 코스모스와 노랑색 국화를 화병(花甁)에 꽂아놓는다. 비온 뒤에 다가올 햇빛을 거느릴 태양(太陽)처럼 누군가 오길 기다린다. 밖엔 소슬한 가을이 지나는 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눈을 돌려 하늘을 쳐다본다. 노을 빛이 황홀하다. 하늘은 맑고 흰 구름 유유히 떠다니는 초겨울 저녁 하늘에 푸른 꿈을 그려본다.
어느듯 오렌지 색 노을 빛이 다가온다. 온통 주위가 환희(歡喜)로 채색되더니 바로 땅거미가 내린다. 잡힐듯이 반짝이는 별들의 무리가 바로 눈앞에 보인다. 달 빛을 가슴에 채운다. 지나가는 소슬한 바람과 문득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밤은 계속 된다. 그 여운의 향기로 마음 한 자락에 은총의 달빛 줄기가 흐른다. 아무것도 보이지않던 밤 하늘에서 내린 빛이 세상을 아름답게 품어낸다. X의 마음을 움직이게할 달 빛과 별 빛 또한 은은하다.
X를 생각한다. 달빛이 사립문(斜立門) 사이로 살폿이 비집고 나온다. X의 치맛자락이 버들잎처럼 날리듯 싸릿나무 가지 새로 실 바람이 들어온다. 달빛 은은한 촛불과 같이 내뜨거운 심장의 실바람이 온유한 빛으로 들어가 그에게서 숨쉰다. X에게 전해지길 바란다. 싸리나무로 엮은 가지 사이로 들어온 빛을 실을 삼아 진정한 마음울 송알송알 꿰어서 X의 목에 채우고 싶지만 그의 마음을 모르겠다. 그가 꽃 버선 발로 반가히 맞아줄 새 색시같이 늘 설레임으로 반겨주길 바라는 마음인데.....때론 짜증이 안개꽃 같이 만발하다. 그렇지만 갈증나고 피곤에 지친 나그네가 쉬어 갈 수 있는 곳처럼 나를 편히 대해주면 좋겠다. 욕심이겠지만 늘 그런 설레임과 반가움으로 채워진 옹달샘이 퐁퐁 솟아나길 바란다. 밤 하늘의 별들이 그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흐뭇하게 미소를 지을 수 있고, 내 청량한 눈빛이 그대의 선한 눈빛과 마주칠 때, 맑은 미소가 목련 꽃같이 가슴으로 함께 전해질 그런 사람이길 바라는데....
커피 한 잔 앞에 두고 발길이 닿지 않는 한적한 찻집에 앉아 시끄러운 도시를 떠나, 살아온 이야기를 진정으로 나눌 수 있는 대화(對話)를 한지 오래다. 마음이 상처받고, 육신(肉身)이 삶의 고통으로 갈갈이 찢겨지지만 그 고통을 함께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그런 사람과 대화(對話)가 절실한 시기다. 서로의 눈빛을 보고도 서로가 무슨 생각을,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에게 세상을 한 송이의 꽃같이 아름답게 깨닫게 했던 사람, 쩍쩍 갈라진 메마른 정원에 내린 빗방울 같이 내 삶의 생명수(生命水)와 활력소같은 사람, 때론 모든 일에 실수하지 말라고 재잘되는 종달새의 지저귐같이 끊임없이 잔소리했던 X는, 결국 내게 사랑한다는 고백으로 들린다. 그와 끊임없는 대화는 종국(終局)엔 내 마음으로 맑은 물줄기가 흐르게 한다.
이젠 내가 그한테 무엇을 요구하기 전에 내가 X의 마음을 읽어 겸손히 그한테 맞추려한다. 내 눈과 귀가 항상 X에게 향해 열려있으니 일상 속에 허덕이며 살아가는 고통을 감추지 말고 마음 담아 모든 것 함께 나누었으면 좋겠다. 그만큼 우리의 영혼은 한결 성숙해지고 내 마음이 가벼워진다. 서로가 결합(結合)의 중요함을 인식하고 결코 후회하지 않는 그 마음, 또 지금은 비록 힘들고 어렵지만 두 손 맞잡아 어려움을 헤쳐 나가자고 용기를 주는 것으로 부터 지금의 어려움들을 극복해야만 한다. 내 말 한마디에 그의 얼굴에 화색(和色)이 돌아 올수 있다면 이젠 파랑새가 영영 날아 올 수 없다는 꿈이 깨어지는 것 따위는 상관하지 않겠다. 주위에서의 온갖 유혹과 뜬 소문에 현혹되더라도 그의 모든 것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보듬어 줄 것이다. 모든 일을 나의 부덕함으로 돌리고 내 잘못을 이해해줄 그는 내 편이다. 천길 벼랑 끝에 서서 주저하거나 상처받는 일이 있다면, 그가 내 마음을 감싸줄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궂은 일 마른 일 마다하지 않고 웃음을 달고 사는 그는, 그 흔한 실 반지 하나 없이 살고 있지만 그 고운 미소 여전해서, 이 세상에 남아 즐거움을 채색하는 사람이다. 언젠가는 살아서 기쁜 일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사는 그다.
나를 둘러싼 정숙(靜肅)이 초겨울 달빛에 떨린다. 온유한 달 빛이 작은 숲에 둘러싸인다. 부드러운 달빛이 외딴 우리 집 나뭇가지에 걸터앉아 논다. 낮엔 햇살이 지저귀는 새들의 친구가 되어 놀듯이 내가 진짜 외롭고 힘들 때 곁에 와서 용기를 주는 그런 X다. 텅 빈 내 꿈의 뒤안 길에 자리한 그다. 반짝이는 초겨울 햇살에 떨려오는 하얀 그의 미소가 고운 꿈처럼 다가온다.
X여! 사랑하기도 모자란 이 시간을 아름다운 생각 변치말고 건강하게 삽시다!
2024년 11월 달빛 떨리는 어느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