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크리스트
그리스도에 반한 자. 니체는 안티크리스트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가.
인생이란 행복을 향해 가는 과정이다.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이며 스스로를 납득시키는 과정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니체는 스스로의 의미를, 존엄을, 가치를 납득시키기 위해 고민했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의 저서에서 자신의 선택을 말했다. 니체는 스스로 위대한 길을 걷는 방법을 선택했다.
니체는 신의 길을 걷는다.
니체는 투쟁의 삶을 산다. 안락을 위한 삶이 아니며 평화에, 여유에, 사랑이 주는 행복에 저항한다.
그는 사자다. 초원의 폭군으로서 경쟁자들에게 자신의 먹이를 뺏기지 않기 위해, 자신의 소유물을, 더 넓은 영토를 위해 투쟁한다.
다른 무리의 밑에 들어가 패배자로서, 굴복한 자로서 평화의 삶을 누리는 것은 그의 삶의 방식이 아니다.
그는 오직 더 넓은 영토를, 더 넓은 힘을, 그를 위한 처절한 투쟁을 원한다.
자기발전. 어쩌면 일종의 자기발전이다.
자신 스스로에게 타협하지 않으며 동정하지 않고, 나약해지지 않으며 도망치지 않는다.
오직 더 나은 내일, 더 나은 삶을 쟁취하기 위한 과정만이 그를 그로서 존재하게 한다.
우리는 스스로 자신의 형상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공동체 속에서의 형상을 가진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의 형상은 우리의 고유한 주체성을 약화시킨다.
우리는 고유의 주체성을 상실함으로써 스스로의 존엄을 상실한다.
스스로 존엄을 얻지 못한 자, 그는 생을 영위하기 위해 공동체에 다시금 의지한다.
그는 관계 속에서, 절대적 힘 속에서 안정을 얻는다.
그는 신이 부여해준 생의 권한에 속한 체 편안함을 얻는다.
그는 그렇게 스스로의 자아를 잃고 생각을 잃었다.
그는 스스로 살아갈 힘을 잃었다. 사람으로서의 존엄을 상실한 것이다.
노예, 그는 공동체의 도덕으로, 노예의 도덕으로 예속된 삶을 산다.
우리는 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형상을 가진다.
하지만 우리는 또 다른 스스로의 형상을 안다.
그것은 망치와 정, 뜨거운 불길과 모루, 쇳덩이들의 처절한 충돌로 생기는 형상이다.
그것은 저항의, 투쟁의 형상이다.
우리는 무언가에 대적자로서의 형상을 지닐 수 있다.
자신의 자아를 확립하는 과정은 곧 무언가에 대한 순응이거나 투쟁이다.
우리는 어떤 것에 저항함으로써, 대적함으로써 스스로의 형상을 더욱 뚜렷하게 만든다.
드넓은 초원의 폭군으로서의 사자는 그의 권위를 끊임없이 넘보는 떠돌이 사자들이 있기 때문에 의미를 가진다.
초원을 쟁취하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는 떠돌이 사자는 그를 억압하는 폭군으로 인해 의미를 가진다.
그리하여 우리는 또한, 투쟁하여 스스로의 고유한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한다.
우리는 투쟁 또는 예속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안티크리스트.
그리스도의 대적자.
니체는 그의 저서 [안티크리스트]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그는 그의 고유한 형상을 대적자로서의 형상으로 정했다.
니체는 그리스도의 대적자로서 스스로의 존엄을 쟁취하고자 했다.
그리스도교들은 예속의 삶을 사는, 노예의 도덕을 지닌 존재로서 묘사했으며
그는 스스로를 투쟁하는 자. 경멸하는 자로서 확립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니체는 투쟁의 삶에, 대적자의 정신에 방해가 되는 개념들.
- 동정
- 연민
- 배려
- 존중
- 포옹, 그리하여 사랑
사랑의 개념들을 적대시해야 할 개념들로 삼았으며.
사랑의 정신, 즉 그리스도의 정신을 나약한 것으로, 노예로서 예속되게 하는 타락한 도덕으로 말했다.
우리는 니체의 삶을 보며 고민한다.
우리는 고유의 존재인가? 무언가에 예속된 존재인가 혹은 투쟁하는 존재인가?
우리는 지배하는 존재인가 혹은 사랑하는 존재인가.
우리는 고유의 정체성을 위해 니체에게서 투쟁하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