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을 나 살아보려 했다. <이방인>,<데미안>

by 반쯤리뷰


인류가 상상한 최악의 형벌은 무엇인가. 나는 주저 없이 시지푸스의 형벌을 이야기한다. 끝없이 언덕 위로 돌을 굴려 올려야 하는 고통. 언덕 꼭대기에서 다시 돌이 굴러떨어질 것을 앎에서 오는 절망. 끝이 보이지 않는 형벌. 그럼에도 그는 그곳을 벗어날 수 없음이라.

그리하여 시지푸스의 영혼은 육신에 앞서 고통스런 백기를 들게 된다. 공포에 휩싸인 영혼은 스스로의 눈을 찌른다. 육체는 장님의 영혼을 이끌지 못한다. 육체는 영혼의 시체를 매단 채 부패해간다.


인생이란 끝이 보이지 않는 마라톤과도 같다. 이 마라톤의 레일은 더없이 광활하다. 어디서 출발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 어떤 것도 정해지지 않는다. 결승선 없는 경주인 셈이다. 기약 없이, 목적 없이 달리는 것은 너무나도 버겁다. 몇몇은 그 무게에 못 이겨 스스로 달리기를 포기하기까지 한다.


레일 위에는 사람들이 무리를 이뤄 달리고 있다. 각각의 무리 지은 사람들은 목적지가 있는 것처럼 어디론가 향한다. 서로 다른 곳으로 향하는 듯하지만 모두 비슷한 방향으로 달린다.

한 무리의 사람들은 새하얀 옷을 입고 있다. 그들은 함께 모여 달리고 있다. 표정엔 웃음이 가득하다. 함께 달리는 그들은 자신들이 움직일 수 있게 해주신 신에 대한 감사함을 말한다. 그들은 그들을 창조한 신을 위해 달린다. 그들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계속해서 나아가기 위해 서로에게 채찍질하기도 한다.

다른 무리의 사람들은 검정 옷을 입었다. 그들은 남들보다 앞서기 위해 달린다. 앞서기 위해, 뒤처진 자들은 버려진다. 그들은 자식들을 업고 달린다. 자신이 늙어 더 달릴 수 없을 때까지 달린다. 자식들의 출발선은 그들의 부모가 쓰러진 선이다. 그들은 대를 이어 달린다.


레일 위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회색 옷을 입은 무리에 속해있다. 아니 어쩌면 주황색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알지 못할 흐릿한 색의 옷을 입었다. 회색들은 방향을 모른다. 그들은 주변 사람들을 따라가며 달린다. 모든 사람들은 회색 옷으로부터 시작한다. 달리는 회색 옷 무리의 몇몇은 흰색이나 검정으로 변한다.

레일 구석에는 흙이 잔뜩 묻은 옷을 입은 무리가 보인다. 달리는 것을 포기한 사람들이다. 신에게 버림받은 흰색이거나 뒤처진 검정색이다. 그들은 무리에서 떨어진 회색들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해치거나 술을 마신다. 환락과 유흥에 빠지기도 한다. 때로는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서로 싸우기도 한다. 서로 뒤엉켜있는 그 모습은 꿈틀거리는 흙더미들처럼 보인다. 그들은 레일에서 벗어날 날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한 세계는 아버지의 집이다. 이 세계는 사랑과 엄격함, 모범과 학교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또 다른 세계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그 세계에는 아름답고도 무서운 것들이 있었고, 사나우면서 잔인한 일들이 있었다.’ -데미안


그들을 바라보던, 자신의 길에 대해 고민하던 회색의 한 사람은 생각했다. 우리는 왜 달리는가. 나는 어디로 달려야 하는가. 저들의 발걸음은 어디로 향함인가?

무리와 함께 달리던 그는 회색 무리에서 벗어난다. 회색 무리는 그에게 대답을 줄 수 없다. 그들은 그저 주변을 따라 달리는 자들이기에.


그는 답을 찾기 위해 흰색 옷의 무리에게 다가가 본다. 흰옷을 입고 그들과 달려본다. 감사함을 말하며 웃으며 함께 달려본다. 하지만 그는 무리에서 겉돌고 있음을 느낀다. 그는 자신의 길을 위하여 왔건만, 그들은 그들의 선지자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따르는 사람들이다. 흰옷의 무리는 그에게 대답을 줄 수 없다. 그는 흰옷의 사람들이 마부의 말을 기다리는 낙타와 같다고 생각한다.

그는 흰무리에서 벗어나 검정 무리에게로 다가간다. 그들은 새로운 경쟁자를 환영하지 않는다. 그들 속에서 앞서기 위한 달리기를 하던 그는 야릿한 감정을 느낀다. 뒤처진 자들을 비웃는 즐거움. 남들보다 앞서있다는 쾌감. 하지만 즐거움은 곧 두려움으로 바뀐다. 계속해서 달리지 않으면 뒤처질 것이라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앞서 달리는 사람들을 바라보니 그들 역시 두려움에 가득 찬 표정이다. 그는 이곳이 야생과 같다고 느끼며 검정 옷을 벗어던진다.


이곳저곳 달려보던 그는 우뚝, 달리다 멈추었다. 멈춰 선 그의 표정은 공허하다. 무슨 생각에 잠긴 듯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는 갑자기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그는 어딘가 허무해 보인다. 사람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이내 그 시선들은 호기심 어린 관심으로 변한다.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을, 결국 서른 살에 죽는 것이나 예순 살에 죽는 것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이방인


그는 어느샌가 이 대를 이은 마라톤에 결승선이 없음을 안 것이다. 그의 눈빛은 공허하다. 그는 이제 달릴 수 없다. 달릴 이유를 찾을 수 없다. 그의 시선은 이내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진다. 이제 레일 위의 일들은 그에게 아무런 흥미를 주지 못한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나는 일요일이 또 하루 지나갔고, 엄마의 장례식도 이제는 끝났고, 엄마의 장례식도 이제는 끝났고, 내일은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하겠고. 그러니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방인


그는 참을 수 없는 허무감을 느낀다. 흑백의 길을 가지 않는 회색은 길을 잃었다. 그는 땅바닥에 구르기 시작한다. 흙더미가 된 옷을 입고 하늘을 향해 삿대질한다. 마구 고함을 지른다. 흙빛의 사람들과 함께 방황하고 방종한 삶을 산다. 하지만 환락도, 고통도 그를 이 허무감에서 구해주지 못한다. 더 이상 소리 지를 힘도 남아있지 않은 그는 공허한 표정으로 흙바닥에 앉는다. 모든 의욕을 잃은 표정의 그에게 사람들이 다가온다. 그리고 저마다의 말을 건넨다.

검정 옷을 입은 사람들은 어서 일어나지 않는다면 뒤처질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몇몇 검정은 패배자라며 비웃기도 한다. 회색 옷을 입은 사람들은 그를 바라보며 혐오감을 드러낸다. 흑백에 길에서 벗어난 그를 덕의 이름으로 비난한다.


'그 결과 엄마의 장례식 날 내가 무심한 태도를 보였다는 사실을 조사원들이 알아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검사 측에 중대한 논거가 될 것이다’ -이방인


흰옷을 입은 사람은 그를 위해 기도하겠노라 한다. 그는 자신이 성직자라 말한다. 그들은 그가 길 잃은 어린 양임을 말하며 자신이 그를 위해 기도해 주겠노라 한다.

힘없이 흰옷의 말을 듣고 있던 그의 표정이 서서히 변한다. 성직자의 위로가 통한 것일까. 그의 얼굴엔 조금씩 생기가 나타난다. 하지만 그 눈빛엔 알 수 없는 반항심이 느껴진다. 성직자가 가 그의 적개심에 의아함을 느끼는 사이 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워나갈 때. 전 생애에서 딱 한 번. 죽음과 새로운 탄생을 경험한다.’

-데미안


꼿꼿이 선 그의 눈빛은 선명하다. 다부진 입술엔 고집마저 느껴진다. 마른 입술이 천천히 벌어진다. 그는 자신의 허무에 대해 말한다. 그의 허무는 자신의 길을 걷기 위한 고민이다. 새로운 길의 창조를 위한 파괴이다. 날카롭게 빛나는 검을 위한 용광로이다. 그리하여 새 세상을 창조하는 불타는 쇳물이리라. 주어진 길을 걷는 자는, 나귀의 길을 선택한 자는 자신의 절망을 위로할 수 없음이다.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던 그는 어느샌가 상기되어 있는 모습이다. 그는 더 이상 회색 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 흙더미에 더러워진 옷도 아니었다. 어느샌가 그는 불타는 듯한, 선명한 붉은 옷을 입고 서 있었다. 결국 끝없는 허무에서 그를 구원한 것은 반항심이며 분노였음이라.

그는 성직자와의 대화에서 허무를 이해했다. 길 잃은 그의 삶에서 자그맣게 빛나는 북극성을 발견함이다. 허무를 넘어, 실존을 향해 걸어간다. 그는 허무에서 스스로 길을 만들어나가는 법을 이해했다. 스스로가 걸음의 이유가 되는 법을 익힌다. 자신이 자신의 생의 존엄함을 만들어나가는 법을 연습한다. 그리하여 나아가는 발걸음에 자부심을, 오만함을, 즐거움을 느끼는 자가 된다. 그는 스스로가 신이 되기를 선택한다. 스스로가 존엄의 근거가 되는 그는 신의 길을, 창조의 길을 걷는다.


반항심이 느껴지는, 생기 가득한 눈빛으로 그는 서 있다. 그는 이제 길 잃은 자가 아니다. 그는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는 선구자이며, 세상을 향해 빛나는 검이다.


그리고 그는 이내 뒤로, 아니 어디론가 달리기 시작했다.


‘내 뒤를 따라오지 마라. 내가 제대로 이끌지 못할 수도 있다. 내 앞에서 걷지 마라. 내가 따라가지 않을 수도 있다.’ -알베르 카뮈


달리는 그의 눈빛은 이제 더 이상 공허하지 않다. 허리를 반듯이 펴고 빛나는 눈빛으로 달리는 그의 모습은 어딘가 경건하기까지 하다. 달려나가는 그의 걸음엔 흐트러짐이 없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외경심을 느낀다.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사람들은 하나둘씩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가 가는 길에 있는 사람들이 비켜선다. 카인의 자식이다. 몇몇이 소리치자 두려움에 빠진 사람은 그 자리를 벗어나기 시작한다.

그의 이마가 잠시 무엇인가로 반짝 빛났다.


‘사람들은 말했지, 이 표적을 가진 녀석들은 무시무시하다고, 또 그들이 실제로 그렇기도 했어. 용기와 개성이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늘 몹시 무시무시하거든.’ -데미안


그는 달린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지만 남들과 같은 방향으로 달리는 것은 아니다. 그는 스스로가 정한 방향으로 달린다. 그 누구보다 확신에 가득 찬 채로. 자신의 길을 달리는 그는 자유로움을 느낀다.

마음속 단단하게 막혀 있는 허무감에 저항하고 반항한다. 자신을 둘러싼 단단한 알에 분노하여 부리를 조아대는 한 마리의 새가 된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데미안


그는 자신의 부모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다. 아니, 이제야 그는 더없는 슬픔을 느낀다. 주위가 아닌 스스로의 감정을 바라보며 마주한다. 이는 부끄러움이나 두려움에 눈 가리지 않음이다. 그는 자신의 슬픔을 결정할 수 있다. 흑백색의 기준이 아닌 스스로의 기준이다.

끝없는 허무감에 반항하는 그는 무한한 자유를 느낀다. 이제 그는 결승선에 없음에 슬퍼하지 않는다. 스스로 결승선을 창조할 수 있음에 행복을 느낀다. 생에 첫 진정한 자유이다. 처음 경험하는 자유를 누리는 모습에는 천진함이 느껴진다. 마치 처음 걸음마를 뗀 어린아이의 천진함이다. 솜털이 채 없어지지 않은 날개로 비행을 성공한 새의 환희이다.

이제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흑백색의 세상이 아니다. 붉은색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화려하다. 빛이 서로 어우러져 다양한 색을 내는 것처럼, 각각의 색이 서로 섞이며 다양한 색의 조화를 이룬다. 밝은 곳으로 여겨졌던 곳이 어두워지기도 하며 짙은 어둠 속에서 환하게 빛나는 푸른색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는 이제 붉은 눈동자에 비치는 화려한 세상을 살아간다. 스스로의 날개로 날아간다. 여전히 결승선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는 스스로의 발걸음으로 한발 한발 힘 있게 나아간다. 그의 이마엔 카인의 표식이 보인다. 그는 힘찬 걸음으로 멀리 달려나간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데미안


논어에서 공자는 인(仁)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묻는 사람의 상황에 맞추어 사례를 들 뿐이다. 항상‘이것 한다면 현명한 사람이다.’,‘이것을 이룬다면 어진 사람이라 할 수 있다.’라는 식이다. 이는 사람에 따라 상황이 다르고, 상황에 따라 인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공자는 묻는다.


"仁(인)을 이루는 것은 자기로부터 비롯되는 것이지 다른 사람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


우리는 카뮈에게 허무함을 배웠다. 헤세에게 무한한 자유를 느꼈다. 우리는 이제 대답해야 한다. 당신은 무어라 말할 것인가?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03화우린 모두 광인이다-<돈 키호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