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가을의 맛

얼갈이배추 된장국, 무지한 스승의 만남

by 수련

무지한 스승의 만남

가끔,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하는 용기가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 때가 있다. 평생학습관 '무지한 스승의 만남'이라는 프로그램을 들었을 때 강사 없이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의아했다. 오히려 그 말은 나에게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내보이는 신호 같았다. 글쓰기를 하며 뭔가 아쉬움이 지속적으로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평생학습관 활동가로 프로그램을 모니터링하던 중, 글쓰기 반을 기획하여 운영해 보라는 제안을 받았다. 글쓰기 반을 어떻게 꾸려나가야 할지, 주차 별 계획을 세우는 날, 내 안의 생각들이 너무 작고 서툴러서, 불안하기도 하고 금방 부서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도 그 두려움 속에서 새로운 설렘이 피어났다. '무지한 스승의 만남'이라는 이름의 글쓰기 모임은 5주 동안 학습자들끼리 모여 공부를 하는 것이다. 그날, 나는 손바닥에 살짝 땀이 난 채 프로그램 기획자로 첫 수업을 시작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10월 둘째 주 화요일 첫 시간, 우리는 서로 자기소개를 하고,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어떤 바람을 품고 있는지를 나누었다. 강의실 안에는 훈훈한 물결이 인다. ‘이제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하는 동지가 있다’라는 생각이 든든했다.


서로 다른 나이와 직업, 다른 시간 속에서 살아온 다섯 명이 '글쓰기'라는 이름으로 모였다. 우리는 서로 서툴지만, 오히려 그 불완전함이 우리를 더욱 단단히 엮어주었다. 한 사람 한 사람 삶의 흔적들이 글을 통해 드러날 때, 그 부족함은 오히려 서로에게 큰 힘이 되었다.


글쓰기 모임의 탄생

지역 주민들을 위한 무료프로그램으로, 첫 수업에는 12명이 참여했다. 4주가 지난 지금 글쓰기 모임에는 다섯 명만 남았다. 숫자는 줄었지만, 우리는 더욱 깊은 글동무가 되기로 마음을 나누고 있다.


D는 퇴직 후 독서에 빠져있고, B는 전자책을 낸 경험이 있으며, K는 여러 공모전에서 상을 받은 작가였다. C는 도서관 사서로, 수많은 책을 품어온 사람이다. 그들과의 대화는 나에게 큰 자극이 되었다. 그들이 써온 문장은 내 안에 잠자고 있던 나태함을 꾸짖는다.


우리는 각자 써온 글을 읽으며 공감도 하고 다른 감정을 진솔하게 표현한다. 한 문장, 단어를 보며 10분 이상 이야기를 나눈다. 그때 문득 깨달았다. 글쓰기는 솔직한 속마음을 마주하고, 그 속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라는 것을.


하루 20분, 나를 다시 세우는 시간

뭐든지 세 가지로 알려주는 '김익한 교수'의 조언을 따라, 글쓰기를 하루의 습관으로 만들기로 했다. 아침 눈뜨고 10분, 잠들기 전 20분. 짧은 시간이지만 그 속에서 나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아침에는 오늘의 실타래를 풀었고, 밤에는 하루의 무늬를 정리한다. 처음엔 쓸거리가 없어 아무 말이나 썼지만, 점차 글이 조금씩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손끝에서 피어나는 문장들은 뇌 회로를 열어주고, 글쓰기는 더 이상 지식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 세심한 관찰에서 표현하고 기록하는 작업이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까만 하늘을 바라볼 때마다, 어린 왕자와 대화를 나눈다. 바람이 스치는 소리, 저녁 하늘의 빛, 냄비에서 피어오르는 김까지도 대화의 소재가 된다. 글쓰기를 이어가며 세상을 조금 더 섬세하게 바라보게 된다.


산책길의 " 야생 국화가 한들거리며 동그랗고 작은 얼굴이 춥다고 보랏빛으로 얼어있다."라는 한 문장을 완성하며, 그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 메모한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가 마음에 새겨졌고, 그만큼 바라보는 공간을 관찰하고 선명하게 눈에 담는다.


함께 쓴다는 것의 힘

학습관의 글쓰기 모임은 단지 배움의 공간이 아니라, 마음의 쉼터이기도 하다. 각자의 삶은 달랐지만, 글쓰기를 향한 마음은 같다. B의 노련한 표현, K의 거침없는 문장, C의 섬세한 묘사 — 그 모든 것이 나에게 큰 공부가 된다.


함께 하면서, 글은 조금 더 깊어지고, 마음은 단단해진다. 첫 번째 시간에는 글쓰기 대가들의 영상을 보고, 두 번째 시간에는 각자 써온 글을 읽고 솔직한 감상을 나눈다. 누군가의 문장에서 마음이 반짝이며 동요가 일어난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산다는 것

상담사로 일하며 하루가 바쁘게 지나가도, 매주 한 편의 글을 쓰기로 마음먹는다. 때로는 피곤한 하루가, 어느 날은 문장이 내 마음처럼 따라오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마음속의 작은 목소리를 듣는다. "멈추지 말자. 오늘 한 줄이라도 써보자."


글을 쓴다는 것은 산을 등반하는 모습과 닮았다. 산길을 오르다 보면 숨이 가빠지고, 무릎이 시큰거려 주저앉고 싶은 순간이 찾아와도, 한 걸음씩 오르다 보면 어느새, 탁 트인 시야가 보인다. 글을 쓰며 내 안의 뿌연 안개를 걷어주고, 내가 누구인지를 서서히 비춰준다. 글쓰기는 마음의 보석창고를 열어 보이는 일이자, 내 안의 길을 찾아가는 일이다.


나만의 길, 나만의 문장

'무지한 스승의 만남'이란 가을 학기 프로그램을 시작한 덕분에 글쓰기를 더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그곳은 나 자신을 깊이 발견하는 자리다. 글을 쓰는 일은 언제나 부담이고 서툴지만, 그 어려움 속에 작은 빛이 있다. 손끝에서 피어나는 문장들이 하루를 기록하고, 마음의 흔적을 남기며 성장하고 치유하는 시간이다.





얼갈이배추 된장국- 그리운 한 그릇

오늘처럼 찬 바람이 불면, 어머니께서 끓여주시던 따뜻한 얼갈이배추 된장국이 그리워진다. 고향 집 밭은 언제나 그랬듯, 겨울을 준비하며 김장용 포기 배추와 무가 빼곡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밭고랑 옆으로 어린잎의 얼갈이와 열무가 초록빛을 뽐내며 자라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냉기가 몸을 움츠리게 하는 날, 어머니는 그곳에서 얼갈이와 어린 열무 몇 개를 뽑아다 소금물에 데쳐놓고, 된장과 멸치, 표고버섯을 넣어 구수한 된장국을 끓이셨다. 그 냄새가 집안을 가득 채우면, 겨울의 차가운 공기도, 굳은 마음도, 시린 손도 모든 것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그 국물 한 술이 겨울날 차갑게 얼어있는 몸을 데우고, 그 뜨거운 국물 속에 깊은 사랑이 담겨 있다는 사실이 온몸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어머니의 된장국은 그리움의 상징이 되었다. 시장에서 얼갈이배추를 보면,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냄비에서 국물이 끓는 소리, 따뜻한 밥 한술을 말아먹을 때의 그 느낌, 그 모든 것이 그리워진다. 이제는 어머니의 손맛을 느낄 수 없지만, 그리운 마음만큼은 언제나 몽글몽글 떠오른다.


저녁 시간, 따뜻한 된장국 한 그릇은 그저 한 끼의 음식이 아니라 쓸쓸하고 지친 마음을 풀어주는, 정겨운 위로의 밥상이었다. 어머니의 손맛을 기억하여 끓여봅니다. 요즘은 유행하는 참치액젓을 한 숟가락 넣으면, 깊은 풍미를 자아내며 감칠맛을 폭발시킨다. 그렇게 끓여진 된장국 한 그릇을 먹으면, 단순한 한 끼가 아니라, 고향의 풍경이 담긴 음식이다.


된장찌개.jpg


[얼갈이배추 된장국]

(재료)

얼갈이배추 한 줌, 표고버섯 2 개, 애호박 반개, 된장 1스푼, 고추장 반 숟가락, 다진 마늘, 대파, 청양고추 2 개, 멸치육수 600mL

1. 배추는 밑동을 자르고 씻어 소금물에 줄기부터 넣어 숨이 죽을 정도로 살짝 데친 뒤 찬물에 헹궈 물기를 가볍게 제거 후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줍니다.

2. 배추에 된장·다진 마늘·들기름을 넣어 조물조물 버무려둡니다.

3. 멸치와 표고버섯으로 육수를 내고 된장과 고추장을 체에 걸러 풀어줍니다.

4. 배추를 넣고 20분 정도 푹 끓인 후 호박, 표고버섯, 대파와 청양고추를 넣고 한소끔 끓여줍니다.

5. 거품을 걷어내면 국물이 깔끔해지고 참치액젓을 한 숟가락 넣어주면 감칠맛을 보충할 수 있습니다.

keyword
수요일 연재
이전 20화가을의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