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시간
큰아이가 고3이던 해, 처음으로 수능 100일 기도에 참여했다. 용주사에 모인 엄마들은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아이들이 가진 만큼의 실력을 온전히 펼칠 수 있기를, 몸도 마음도 무사하기를. 절 마당을 채우던 합장한 손들은 한겨울의 찬바람에도 열을 내고 있었다. 그때 인연이 닿아 생긴 작은 기도 모임은, 아이들의 대학 입학과 졸업을 지나 결혼식에도 참가하며 어느새 서로의 삶을 살뜰하게 살피는 도반이 되었다.
수능이 끝나고 이듬해 1월, 한 친구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우리 한 달에 한 번 기도하는 마음으로 방생을 해보면 어떨까?”가정의 무탈과 대학생인 자녀의 안녕을 기원하는 기도를 이어서 하자는 것이었다. 100일 기도를 하면서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고요하고 안정감을 체감하던 터라 그 말이 마음에 붙었다. 마음속 얼음 밑으로 스멀스멀 생명의 시냇물이 흐르는 듯했다. 삶이란 때때로 아주 작은 제안 하나가 길을 바꾸기도 한다.
그때부터였다. 매달 하루 일정을 비우고 보통리저수지로 향했다. 수산물 시장에서 사 온 미꾸라지와 메기 등 민물고기를 물에 놓아주고, 그 위에 반야심경 독경을 얹는 짧은 시간은, 실제로는 우리 자신을 놓아주는 의식에 가까웠다. “방생”이란 불교에서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주는 적극적 자비행으로, 선 근 공덕을 지어 복을 쌓고 발원을 세우는 불교 수행 방법이라고 한다. 우리는 어쩌면 그곳에서 자기 안의 조급함과 두려움, 지나친 욕심을 조금씩 흘려보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매달 찾아가는 저수지는 계절마다 자연의 변화가 먼저 말을 건네는 스승 같은 곳이었다. 오늘은 마지막 노란 은행잎과 아기단풍잎들이 노랑빨강 갈색으로 어우러져 전등불을 밝힌 듯 저수지 주변 동네가 화사하다.
봄이면 연둣빛 능수버들이 바람결에 몸을 맡기며 마음의 쌓인 먼지를 털어주었고, 여름엔 분홍, 흰색의 청초한 연꽃이 꼭 참았던 이야기를 한꺼번에 쏟아내듯 피어 있었다. 가을엔 코발트 빛의 하늘이 물결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반짝이는 모든 것은 물결과 함께 흐른다. 물 위에서 피어오르는 겨울의 수증기는 얼어붙은 세상도 안쪽에서는 계속 숨을 쉰다고 보여준다. 우리는 기도를 하러 갔다가, 사실은 자연에게서 삶의 모양을 배우고 돌아오곤 했다.
10년 넘게 지나간 시간은 우리의 모습을 많이 바꿔놓았다. 아이들은 대부분 결혼하여 제집을 꾸렸고, 남은 건 넓어진 주말과 식탁은 가벼워졌다. 채워지지 않은 자리를 더듬으며 살아가는 빈둥지가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단출하고 적막한 풍경 속에 살고 있다. 어쩌면 자연의 가장 깊은 자비는 '기다림'인지 도 모른다.
지난주 목요일 친구들과 방생을 마치고 온화한 햇볕을 받으며 저수지 둘레길을 느긋하게 돌았다. 오랜만에 용주사에 이르니, 오래 비워둔 집에 돌아온 것 같은 편안함이 가만히 내려앉았다. 붉게 물든 느티나무 잎은 어서 오라는 말을 걸어주는 듯했고, 사천왕의 다부진 팔뚝과 단단한 눈빛은 예전과 다름없이 우리를 지키는 부리부리한 눈매가 그대로다.
100일 기도를 하며 누각에서 매일 108배를 하고 땀을 흘리던 기억이 불쑥 마음속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때의 부모 마음은 12년의 긴 공부 기간을 평가하는 수능 날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모른다. 지금 생각하면 긴 인생길 중 지나가는 길 위의 작은 여정일 뿐인데, 아이와 부모는 대학이 인생의 전부인 듯 그 간절함이 아직도 내 어깨에 묻어 있는 것만 같았다.
대웅보전 법당을 들러 참배하고 내려오는데 공양주 보살이 검정 털신을 신고, 회색 누비바지와 엷은 보랏빛의 패딩잠바를 입고 목에는 회색의 손뜨개 목도를 단단히 두르고 손짓한다.
“점심 공양하고 가요. 오랜만에 왔나 보네.” 목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리니 반갑게 합장을 한다. “어머 보살님 안녕하세요” 합장을 하고 공양간으로 들어갔다. 반갑게 인사하는 말투 속엔 사찰에서 생활하는 몸에 익은 자비심이 묻어 있고, 깊은 산속에서 옛 친구의 안부를 챙기는 마음이 있다.
절밥은 언제나 정갈하고, 소박하지만 그 자연의 원물 맛 그대로 소박함이 최고의 밥상이다. 다시마와 표고 향이 밴 국물에 졸인 무조림은 살캉거리면서 달큼했고, 그 맛이 어찌나 정직한지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그 속에 담긴 자연의 맛은 삶의 본질이 원래 얼마나 단순한지 일깨워주는 듯했다. 예전 수능 기도 때도 공양주 보살이 젊은 수능 엄마들 때문에 반찬에 신경 쓴다고 가을무로 맛있는 무조림도 해주고 가끔은 떡볶이도 해주곤 했었다. 보살의 특급 무조림이 최고라고 엄지손을 치켜세웠다.
동글동글하고 인심 좋은 공양주 보살은 웃으며 텃밭에서 농사지은 무를 하나씩 안겨주었다. 오전에 뽑아왔다는 무는 어른 장딴지만큼 튼실하여 손에 받아 드는 것만으로도 시간의 무게를 전해주었다. 우리는 늙어가지만,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과 한 줄의 기억은 늙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깨달았다. 우리가 저수지를 가는 이유는 기도 때문만은 아니고, 잊고 있던 자기 자신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은 결국 끊임없이 흘러가는 물과 같아서, 붙잡으려 할수록 더 흐려지고, 놓아줄 때 비로소 맑아진다. 우리가 방생한 것은 대학합격을 향한 집착, 부모로서 완벽하고자 했던 마음, 시간이 우리에게서 조금씩 빼앗아 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 그것들을 물 위로 흘려보낸 것이다.
무심한 세월은 아이들은 부모가 되었고, 우리는 예전보다 천천히 걸으며 눈도 침침하고 머리에는 하얗게 서리가 내리고 있지만, 저수지의 물결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우리를 맞는다. 사찰의 누각도, 고목의 느티나무도, 우리가 흘렸던 젊은 날의 땀도 변하지 않은 풍경 속에서 변화한 우리의 얼굴을 비춘다. 그리고 묵묵히 말한다. 삶은 떠나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같은 자리를 향해 돌아오는 순환이다. 모든 인연은 멀리 돌아도, 결국 서로를 다시 비춰준다. 저수지의 물결처럼, 우리 마음도 천천히 잔잔해진다.
오늘 그리운 음식은 겨울철 영양 가득 멸치 무조림입니다. 고향집 어머니가 해주시던 큼직한 무조림을 소환하고 절에서 받아온 실한 무반개를 잘라 조림을 만들었습니다. 사찰에서는 멸치를 사용하지 않고 표고와 다시마로 육수를 사용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육수용 큰 멸치를 사용했더니 멸치도 뼈 있는 생선이라고 무에서 생선조림 맛도 나고 말캉거리며 흰쌀밥과 찰떡궁합이네요. 바로 만들어 따뜻해도 맛있지만 많이 만들어 차갑게 두고 먹어도 감칠맛이 밥도둑입니다. 가을 무는 잘 먹으면 인삼보다 좋다고 하는데 맛있는 멸치 무조림 많이 드시고 건강하세요.
[멸치 무조림]
(기본 재료)
무반 개, 다시마 육수 1컵, 간장 2스푼, 참치액젓 1스푼, 고춧가루 한 숟가락, 설탕 반 숟가락, 물엿 한 숟가락,
다진 마늘 반 스푼, 생강 조금, 대파한 개, 큰 멸치 10개, 들기름 한 숟가락
(만드는 법)
- 무는 1cm 두께로 반달 모양으로 썰어 담고 다시마 육수를 무가 잠길 정도로 붓습니다.
- 멸치는 머리와 뼈, 내장을 제거하여 반으로 가르고 무와 같이 넣어주세요.
- 간장·고춧가루·설탕·물엿·마늘등 모든 양념을 섞어 양념장을 만듭니다.
- 끓으면 양념장을 넣고 중간 불에서 30분 정도 졸여 주고 중간에 양념을 끼얹어 골고루 양념을 입혀줍니다.
- 무가 투명하게 보이고 부드럽게 익으면 대파를 넣고 한소끔 더 끓여 주면 완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