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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by 꿈치 Feb 11. 2025

어느 날 약방집 친구네에 놀러 갔다가 정말 놀랍고 부러운 장면을 목격했다.

바로 그 친구가 혼자서 중국집에 전화를 해서, 자장면을 시켜서, 진짜로  자장면이 배달이 와서, 그 자장면을 비벼 먹는 장면이었다.


아니, 배달 자장면은 집안에 어른이 시켜주셔야 먹을 수 있는 거 아니었던가...?


나는 너무 놀라 친구에게

어떻게 혼자 자장면을 시켜 먹고 있느냐고, 할아버지께서 시켜주신 것이 아니냐고 물었다.

친구는 자장면 시켜 먹을 돈을 모아서 자신이 직접 전화해서 시킨 거라고 대답했다.(그 당시에는 자장면 한 그릇 배달이 되던 때였다.)


정말 이게 가능한 것이었던가...

나는 왜 이제껏 자장면을 노루메 밤하늘에 뜬 닿을 수 없는 보름달처럼 여기며 염원해 왔던 것인가...

그렇게 먹고 싶어도 참을 수밖에 없었던 지난날들의 기다림이 한대 솟구쳐 내 목구멍을 지나 친구에게 날아갔다.


"다음에는 꼭 나랑 같이 시켜 먹자!"


그 후로 나는 자장면만을 생각하며 돈을 조금씩 모으기 시작했다. 하지만 코끝과 눈앞에 아른거리는 자장면을 도저히 참지 못하고 약방집 친구에게 달려가 둘이 모은 돈을 꺼내어 보았다. 세어보니 자장면 한 그릇 시킬 수 있는 돈뿐이었다. 나는 친구에게 한 그릇으로 나누어 먹자고 했다. 친구의 이마에는 아쉬움의 주름들이 가득이었다. 그래서 내가 집에 있는 밥도 같이 비벼먹으면 정말 맛있을 거라고 설득하였다. 그러니 친구의 아쉬운 이마가 활짝 펴졌다.


드디어, 친구가 수화기를 들고 중국집 전화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나는 겁이 났다. 혹시 중국집 사장님께서 어린아이가 시킨다고 어른을 바꾸라고 하거나, 이곳에 찾아와 우리를 혼내는 것은 아닌가 하며 조마조마했다. 내가 이런 걱정을 하고 있는 동안 친구는 주문을 끝내고 수화기는 재자리에 놓여있었다. 친구도 혼자 자장면을 시켜 먹은 지 얼마 안 되어 긴장한 모습이 있었지만 나보다는 훨씬 여유로워 보였다.


그리고 얼마 후 정말 자장면 배달이 왔다. 나는 무서워서 약방집 작은방에 숨어 이었고 친구가 받아주었다.

나는 방 안에서 열린 문으로 들려오는 철가방의 까랑까랑한 소리와 자장면의 비닐랩이 바닥에 닿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정말 왔구나. 정말 왔다. 우리는 친구네 집에서 빈 그릇과 수저 두 개 그리고 밥 한 공기를 챙겨서 다시 약방집 작은 방으로 왔다. 그날 먹은 자장면은 정말 맛있었다. 한 그릇뿐이었지만 내 인생(10년 내외) 최고의 자장면이었다.


자장면은 원래도 맛있는 음식이었지만 그날은 다른 맛이었다. 바로 자유라는 맛이 추가된 것이다. 어른들 없이 우리들끼리 시켜 먹는 그 자유 말이다. 그날 작은 약방집의 작은 방에서 작은 소녀의 머리와 심장엔 자유의 포효가 넘치고 있었다.

(그 후로도 종종 노루메의 작은 약방집 작은방 작은 TV의 만화영화 소리와 함께 자장면냄새가 솔솔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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