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쓸함은 파도처럼

일본 후쿠오카 여행기 2일차 (2025. 04. 08.)

by 얼음안경

시끌벅적한 도시에서 살다 보면 가끔은 자연 속에 조용히 파묻히고 싶을 때가 있다.

자연이 주는 차분함과 아름다움, 그리고 성숙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도시보다는 소도시를, 소도시보다는 자연을 선호한다.

물론 도시가 주는 쾌락과 즐거움도 일상 속 작은 비상구가 되어주긴 한다.

이런 생각 끝에 후쿠오카 주변의 소도시들을 가보기로 했고,

여러 군데를 효율적으로 둘러보기 위해 버스 투어를 선택했다.


일본 편의점에서 산 아침식사

출근길 사람들로 분주한 거리를 지나, 버스 투어 출발점인 하카타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간단히 먹을 커피와 샌드위치도 샀다.

배가 고파서라기보단 일본 편의점에서만 맛볼 수 있는 '가츠산도'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8시 25분이 되자 투어 참가자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계속 일본어만 듣다가 오랜만에 한국어가 들리니 기분이 묘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었음에도 왠지 모를 소속감이 들었다.

마메다마치 거리 풍경

약 1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첫 번째 장소인 히타 마메다마치에 도착했다.

가이드분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면 된다고 하자마자,

난 얼른 혼자만의 세계로 빠지고 싶어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길가다가 발견한 골목 속 벚꽃나무

히타라는 소도시의 첫인상은 차분했다.

정갈하게 정돈된 길거리, 일본 전통 가옥들이 주는 특유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내가 기대했던 '히타'의 이미지에 걸맞게 사색하며 산책하기 좋았다.

산책을 하다 보니 출출해져서 길거리 음식도 맛봤다.

가라아게의 맛은 솔직히 평범했다.

눅눅한 치킨 먹는 느낌.

하지만 가라야게를 건네주던 사장님의 환한 미소만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간장 아이스크림은 한 번쯤 도전해볼 만한 맛이었다.

젤라토 같은 질감에 간장의 짭짭함과 아이스크림의 달콤함이 어우러져 독특한 조화를 이뤘다.

히타를 1시간 30분쯤 둘러보고, 다시 버스에 올랐다.

다음 목적지는 유후인. 히타에서 차로 1시간 정도 걸렸다.

유후인에 도착하자, 히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상점가에는 관광객들이 북적였고,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표정도 밝았다.

첫인상만으로도 유후인은 그야말로 명랑했다.

유후인에 피어난 벚꽃들은 후쿠오카 성터 벚꽃 못지않게 아름다웠다.

후쿠오카 성터의 벚꽃이 마치 그림 속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준다면,

유후인의 벚꽃은 보는 이의 동심을 살짝 깨우는 듯했다.

거리를 걷다 발견한 놀이터.

아이 한 명이 다른 놀이기구로 신나게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나도 어렸을 땐 이런 사소한 일로 기뻐하고, 재밌어하곤 했는데.

어른이 된다는 건, 소중하고 아기자기한 감정들을 조금씩 내려놓는 일일지도 모른다.

유후인의 하이라이트, 긴린코 호수로 향하는 길.

호수에 가까워질수록, 활기 넘치던 유후인 거리와는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자연이 주가 된 공간에서 분위기는 점점 차분하고 고요해졌다.

3~5분 정도 걸으니, 호수가 어렴풋이 보였다.

여느 호수처럼 강가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걸으며 마주한 일본 전통 가옥, 벚꽃, 긴린코 호수는 서로 어우러져 눈을 즐겁게 했다.

새벽에 가면 물안개도 볼 수 있다고 했는데, 나는 낮에가서 못 본 것이 아쉬웠다.

어느 가정집의 벚꽃나무

긴린코 호수 주변을 산책한 뒤, 골목길을 통해 다시 번화가로 돌아갔다.

가끔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골목길을 걷다 보면 마음이 자연스레 평화로워진다.

이렇게 3시간 정도 유후인을 구경한 뒤, 유후인 주변을 둘러싼 산, 유후다케로 향했다.

잠시 들른 포토스팟이었지만, 산과 평지가 극명하게 대비되는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광활한 자연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작아 보였다.

그 다음으로 향한 곳은 벳푸 가마도지옥이었다.

개인적으로 크게 인상적이진 않았지만, 하루 종일 걸어 다닌 발을 따뜻하게 담글 수 있어서 좋았다.

계란과 사이다 맛도 평범했다.

특이했던 점은 사이다를 따는 방식 정도였는데, 도저히 혼자서는 따기 힘들어 앞 사람에게 부탁했다.

이럴 땐 혼자라는 사실이 더 크게 느껴지고

옆에 누군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싶은 마음이 스쳤다.

이렇게 소도시 버스 투어를 마치고 다시 시내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타국에서 혼자 여행하는 '이방인'이 되어 있었다.

해방감과 쓸쓸함이 동시에 스며드는 순간이었다.


하루 종일 걸어 다녀 허기가 졌기에 저녁부터 먹기로 했다.

미리 찾아둔 돈카츠 와카바 하카타역점으로 향했다.

시킨 메뉴는 돈가스 계란덮밥.

이 집은 저온 요리와 고온 요리로 나눠 판매하는데

시간 오래 걸리는 건 싫어서 저온 요리로 주문했다.

바삭한 돈가스와 부드러운 계란의 조합이 아주 좋았다.

거기에 시원한 생맥주까지 곁들이면 입안은 축제 분위기였다.

엄청 유명한 맛집은 아니었지만, 내 입맛에는 완벽했다.


바삭한 돈가스와 부드러운 계란.

성질이 전혀 다른 두 음식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맛을 한층 끌어올렸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함께 어우러질 때, 조화롭고 풍성해지는 것처럼.

밥을 먹고 간 곳은 캐널시티 하카타점.

쇼핑몰이긴 했지만, 나는 오로지 음악 분수 쇼만 보러 갔다.

분수와 영상이 어우러진 장면이 눈과 귀를 동시에 사로잡았다.

참배하고 있는 직장인

게스트 하우스 주변에는 작은 신사가 있었다.

사람이 많지 않아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였다.

잠시 들러 그 분위기를 느끼고 숙소로 들어가기로 했다.


크게 특별한 것은 없었지만, 그래서 좋았다.

신사 고유의 느낌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구경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갈 때는 직장인 두 분이 참배하러 들어오는 모습이 모였다.

피곤할 텐데도 신사를 찾은 모습에서 성실함이 느껴졌고,

그들이 어떤 소원을 빌었을지 괜히 궁금해졌다.

나도 조용히 속으로 소원을 빌어봤다.

숙소에 도착하니 9시쯤이었다.

이상하게도 건물 안에는 나 혼자뿐이었다.

넓은 공간에 나만 있으니 공허함이 스쳤다.

하지만 그 공허함도 잠시, 혼자일 때만 느낄 수 있는 편안함이 찾아왔다.

얼른 씻고 아무도 없는 부엌으로 가서 미리 사둔 맥주와 푸딩을 꺼냈다.

그 뒤에는 책과 작은 장식품들을 둘러보며,

혼자만의 공간에서 느끼는 소소한 즐거움에 잠시 머물렀다.

소화를 시킬 겸 나카스강 주변을 걸었다.

이 거리는 낮보다는 밤이 훨씬 활기찼다.

가게도 많았지만 이미 배를 채운 상태였고, 혼자 들어가기에는 적적할 것 같아 구경만 했다.


길거리에서는 공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배고픈 예술가들이 많구나’라는 생각이 스쳤다.
동시에 자신의 꿈을 향해 용기 내어 공연하는 모습이 반짝였다.


조금 구경하다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 룸메들과 잠시 잡담을 나누고 잠들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사회적 동물'이라 불렀다.

인간은 사회적 관계를 통해 성장하고 발전하기에 타인과의 상호작용 없이 살아갈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일까.

생각과 감정을 나눌 동행자가 없으니 쓸쓸함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 감정을 억지로 밀어내지 않았다.

쓸쓸함은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이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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