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 여행기 3일차 (2025. 04. 09.)
삶에서의 '특별함' 혹은 '즐거움'은 무엇일까?
보통 여행이라고 하면 우리는 유명한 관광지를 먼저 떠올린다.
그곳이 '특별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특별함'은 보편적인 시선에 기대어 만들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같은 나라를 다녀와도 어떤 이는 풍경을,
또 다른 이는 음식이나 소소한 경험을 특별하다고 말하지 않던가.
이번 여행에서 나는 평범한 순간 속에서 피어나는 특별함을 자주 느낄 수 있었다.
후쿠오카에서의 두 번째 밤이 지나갔다.
이 날은 혼자 이동하는 일정이라, 버스 투어가 있었던 전날보다 비교적 여유로웠다.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다자이후 텐만구였다.
학문과 문화예술의 신을 모시는 곳으로 유명한 이 신사에 가기 위해서는
텐진에서 후츠가이치역으로 가는 열차를 타야 한다.
열차는 특급, 급행, 일반 세 가지가 있는데, 시간표와 노선을 잘 확인해야 한다.
나는 급행을 탈 생각이었지만, 그만 일반 열차를 타버려서 길을 조금 헤맸다.
열차 40분쯤 타고 가자, 어느덧 목적지에 도착했다.
신사로 향하는 길가엔 상점들이 줄지어 있었고,
흘러나오는 음식 냄새가 발걸음을 붙잡았다.
나는 천천히 걸으며 구경하다가 명란 바게트, 딸기모나카,
그리고 일본 전통과자를 꼬치에 끼운 '쿠시노레 오카키'까지 맛봤다.
명란 바게트는 대전 성심당을 떠올리게 했고,
딸기모나카는 바삭한 껍질 안에 딸기, 모찌, 녹차 앙금이 어우러져 다채로운 맛을 냈다.
'쿠시노레 오카키'는 처음 접해본 풍미라 더욱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렇게 길거리 구경하다 보니 신사 입구에 도착했다.
입구에 세워진 목조건물이 웅장함과 차분함을 동시에 느끼게 했다.
신사 안에서는 의식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일본어라 내용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나도 모르게 마음이 경건해졌다.
북소리와 경전 읽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그 사이로 사람들의 수다 소리가 섞여 들어왔다.
장중함과 일상적인 소음이 한 공간에서 함께 흐르는 순간이었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산으로 이어지는 길이 나타났다.
위쪽에는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일본의 산은 한국의 산보다 자연 그대로를 살린 느낌이었다.
길을 따라 빨간 도리이가 터널처럼 이어져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1년 전 교토에서 본 여우 신사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다시 거리로 돌아왔고, 시간적 여유가 있어 카페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전통 찻집을 경험해보고 싶어 스타벅스 대신 카사노야를 선택했고,
거기서 말차 세트를 주문했다.
시원한 말차였는데, 온도와 향이 잘 어우러지지 않아 따뜻하게 시킬 걸 후회했다.
함께 나온 우메가에 모찌는 담백해 어른들이 좋아할 맛이었다.
솔직히 맛보다는 풍경이 더 기억에 남았다.
일본식 정원을 바라보며 차분히 말차를 마시던 순간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근교를 둘러본 뒤, 후쿠오카의 중심지인 하카타와 텐진으로 향했다.
눈앞에 펼쳐진 도심 풍경이 낯설 만큼 새롭게 다가왔다.
다자이후에서 도심으로 옮겨오는 길은 마치 시간을 건너 여행하는 듯한 기분을 주었다.
밥도 먹고 구경도 할 겸 텐진 다이묘 가든시티를 찾았다.
말 그대로 도시 속 정원 같은 공간이었다.
잔디 위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편히 누워 쉬는 사람들.
각자의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그 풍경은 도시적이면서도 여유로웠다.
잠시 그 자리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자유로움이 전해졌다.
다이묘 가든시티 안에는 미슐랭 맛집 니시무라야 텐진다이묘점도 있었다.
대표 메뉴인 크림 돈코츠 라멘이 궁금해 가게를 찾았고, 잠시 기다린 뒤 라멘이 나왔다.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시간이 흘렀지만, 그때의 맛은 여전히 선명하다.
부드럽지만 시원한 국물이 느끼함을 덜어주었고,
마지막에 국물과 밥, 치즈를 섞어 만든 리조또는 특히 인상 깊었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친 뒤, 세븐 일레븐에 들러 '크림 브륄레'를 집어 들었다.
일본에 올 때마다 빠지지 않고 찾는 간식인데, 그만큼 독특한 맛과 매력이 있다.
야외 테라스로 나가 크림 브륄레를 곁들이며 풍경을 바라보고 책을 읽었다.
도시의 분주함 속에서 작은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 텐진 거리 쪽으로 다시 나왔다.
걸어서 향한 곳은 텐진 지하상가.
돔 형태인 천장과 조명이 어우러져, 단순한 통로가 아닌 공간처럼 느껴졌다.
분위기에 매료되어 사진을 찍자, 몇몇 현지인들이 힐끔 쳐다봤다.
마치 '왜 이런 지하상가를 찍는 거지?'라는 시선 같았다.
그들에게는 매일 지나가는 평범한 길일 테지만,
나에겐 그 평범한 속에서 오히려 특별함이 느껴졌다.
시간적 여유가 있어 갈까 말까 고민하던 라라포트를 마지막으로 들렀다.
라라포트는 시내 중심이 아니어서 지하철을 타고 갔는데,
가는 길에 잠시 헤매다 결국 아무 역에 내려 걸어가 보기로 했다.
그곳은 관광객으로 붐비는 곳이 아니었다.
후쿠오카 시민들의 일상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동네였다.
낯선 거리에서 현지인들의 일상을 바라보며 천천히 걷는 그 시간이,
내게는 예상치 못한 특별한 추억으로 남았다.
걷다 보니 기찻길도 보였다.
맑은 하늘과 일본 특유의 색이 어우러진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남들이 정한 포토스팟이 아니라, 내 시선으로 담았다.
그래서인지 나한테만큼은 특별하게 느껴졌다.
어느덧 라라포트에 도착했고,
이곳의 상징 초대형 건담을 볼 수 있었다.
지정 시간엔 건담 쇼도 진행되는데, 건담 마니아라면 환장할 듯했다.
시내로 돌아갈 때는 버스를 탔다.
마지막 날이라 조금이라도 사고 싶어서 요도바시 카메라로 향했다.
매장 꼭대기 층에는 마트가 있는데, 할인을 많이 해서 싸다고 소문난 곳이다.
난 여기서 지인들한테 줄 과자와 컵라면 등을 샀다.
쇼핑을 끝낸 후 다른 층도 구경했다.
딱히 살만한 건 없었고, 눈에 띈 건 피아노 매장이었다.
아무래도 음악 전공이라 그런지 쉽게 지나치지 못했다.
휴학한 이후 피아노를 친 적이 한 번도 없는데,
4개월 만에 일본 매장에서 건반을 만지게 될 줄은 몰랐다.
보면대 위 악보를 보고 마음에 드는 곡을 막 연주해봤다.
치면서 생각했다. 내가 음악을 좋아하긴 하구나.
밤이 깊어 숙소로 돌아가는데, 같은 방을 쓰는 영국 아주머니가 앞서 걸어가고 있었다.
순간 너무 반가워 얼른 달려가 조심스레 어깨를 툭 쳤다.
아주머니는 크게 놀라며 웃으셨다.
이어폰을 꽂고 리듬을 타며 걷고 있던 사람이 바로 나라는 걸, 아주머니는 몰랐던 것이다.
그 상황이 웃겨 한동안 함께 웃고,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숙소로 돌아갔다.
방에 도착하자, 아주머니가 스타벅스에서 사 온 곰인형을 꺼내셨다.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계속 눈에 밟혀 결국 샀다며,
너무 귀엽지 않냐고 행복해 하셨다.
머리에 꽃장식하고 기모노를 입은 곰인형은 정말 귀여웠고,
일본 여행을 추억하기 좋은 인형이 될 것 같았다.
방에 돌아갈 때마다 밝은 미소로 맞아주시고,
좋은 에너지를 전해 주셔서 혼자 하는 여행도 외롭지 않았다.
3일 동안의 고마움을 담아 한국에서 가져온 핫팩과 일본 휴족파스를 몇 개 드렸다.
한 가지 아쉬운 건 SNS를 주고받지 않아 연결고리가 없다는 점이다.
다음에 인연이 된다면 꼭 다시 만날 수 있길 바란다.
마지막 밤이라 조금 더 즐기고 싶어, 혼자 맥주와 간단한 안주를 먹기 위해 2층 부엌으로 갔다.
거기에는 이미 마카오 여자 두 분이 요리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한 분은 내 룸메였고, 다른 한 분은 그녀의 친구였다.
날 보자 같이 먹지 않겠냐고 제안해서 흔치 않은 기회라 좋다고 했다.
그 뒤 영국 남자분도 합류했고, 왁자지껄 수다를 나누었다.
나는 거의 듣는 포지션이었지만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흥미롭고 새로웠다.
1시간 정도 대화를 나눈 뒤, 다음 날 아침 비행기 때문에 먼저 일어났다.
첫재 날이나 둘째 날 밤이었으면 좀 더 어울려 놀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이렇게 나의 첫 혼자 해외여행은 끝이 났다.
솔직히 말하면 후쿠오카는 다른 관광지에 비해 뚜렷한 특징이 없어 평범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 평범함 덕분에 현지의 성격과 분위기, 문화를 조금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게스트 하우스를 선택한 것도 좋은 결정이었다.
혼자 여행하며 생길 수 있는 무료함과 외로움을 타국 사람들과의 소통을 통해 극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간은 나에게 정말 의미 있었다.
이런 경험들이 내가 혼자 여행하며 찾아내고 만들어낸
'평범함 속의 특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