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여행기 1일차 (2025. 05. 13.)
동남아.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이었다.
언젠가 꼭 발을 디뎌 보고 싶었던 땅, 그중에서도 마음을 끌었던 곳은 싱가포르였다.
보통 동남아 하면 '조금은 위험하다'는 인상을 떠올리기 쉽지만 싱가포르는 달랐다.
깔끔한 치안, 높은 시민 의식, 다채로운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
그 속에서 내가 어떤 장면을 마주하게 될지 기대가 컸다.
마침 작년에 오키나와에서 함께 좋은 추억을 만든 친구가 있었고,
그 친구와 다시 여행을 떠나자는 얘기가 자연스럽게 싱가포르로 이어졌다.
싱가포르 창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ATM에서 지폐를 뽑았다.
지금까지는 일본 지폐만 많이 봐왔는데,
처음 보는 낯선 지폐를 손에 쥐니 여행이 시작됐다는 걸 온몸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공항 둘러보는 동안 서울에서 출발한 친구도 도착했다.
사는 곳이 달라 자주 보지 못했는데, 무려 8개월 만에 한국이 아닌 해외에서 다시 만나니 감회가 새로웠다.
새벽이라 우리는 곧장 택시를 타고, 하루 정도 묵을 숙소로 향했다.
이렇게 싱가포르 여행이 시작되었다.
싱가포르에서 맞은 1일차 아침
시작부터 작은 문제가 생겼다.
시내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려 했는데, 친구 카드는 사용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난 이미 개찰구를 지나 들어와 버려서 결국 잠시 따로 움직였다가 숙소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이렇게 예기치 못한 상황이 종종 생긴다.
그럴 때마다 '그럴 수도 있지'하며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의지가 필요하다.
안 좋은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추억 하나 생겼네.'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같은 상황이라도 그로 인해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결국 내가 정하는 일이다.
아마 이런 태도가 행복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도 꼭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지하철 타고 도착한 곳은 클락키. 싱가포르 도심 중 한 곳이다.
가장 눈에 띄었던 풍경은 높고 풍성한 나무 사이에 우뚝 선 빌딩들이었다.
마치 도심 속의 정원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었다.
도시의 활기와 자연의 여유를 동시에 누릴 수 있다는 게 인상 깊었다.
그곳에서 잠시 서 있기만 해도 마음이 탁 트이고, 생활이 조금은 더 여유로워질 것 같았다.
호텔에서 친구와 다시 만나 싱가포르 대표 음식 '락사'를 먹어보기로 했다.
주변을 둘러보다 들어간 곳은 laksa labo by wild coco.
2인석이 없어 낯선 사람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됐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이내 다른 테이블에 앉은 것처럼 신경 쓰이지 않게 되었다.
뜨거운 국물이 담긴 락사가 나오자 향신료 특유의 향이 먼저 훅 들어왔다.
국물은 진하고 묵직했으며, 먹을수록 입 안에 느끼함이 감돌았다.
다시 찾아 먹을 정도로 끌리진 않았지만,
싱가포르의 대표적인 맛을 직접 경험했다는 게 여행의 의미를 더해줬다.
1일차에 가장 먼저 간 곳은 아랍 스트리트였다.
이름처럼 싱가포르에 거주하는 아랍인들의 공동체 중심지로,
거리와 건물, 상점, 그리고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주었다.
공예품 가게마다 무늬가 화려한 접시, 반짝이는 램프, 손으로 짠 카펫 등이 놓여 있었는데
하나하나가 그들의 문화와 생활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기념품으로 사고 싶었지만 예산을 생각해 그냥 눈으로만 즐겼다.
그래도 잠시나마 다른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듯한 기분이 들어 충분히 특별했다.
거리를 걷다 보니 아이스크림을 파는 터키 아저씨도 만났다.
아이스크림을 줄 듯 말듯 장난치는 모습이 이 가게의 묘미인데,
문득 어릴 적 백화점 지하상가에서 같은 장난을 당하며 웃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구경하다 보니 어느덧 오후 2시가 되었고,
아랍 스트리트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술탄모스크로 향했다.
술탄모스크는 방문 시간이 정해져 있어 10~12시, 혹은 14~16시 사이에 들어갈 수 있다.
입장할 때는 신발을 벗어야 하고 복장도 노출이 적어야 한다.
반바지나 짧은 치마는 피하는 것이 좋으며, 부적절한 복장은 현장에서 대여해 주는 옷으로 가릴 수 있다.
나 역시 파인 원피스를 입고 갔기에 치마를 하나 더 겹쳐 입어야 했다.
그 순간, 조금씩 아랍권 문화에 스며드는 듯한 설렘이 밀려왔다.
사원 안에 들어서자 신도들이 기도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바깥의 소란과 달리 안은 고요했고, 그 분위기에 나도 자연스레 마음이 차분해졌다.
아랍 스트리트의 마지막 코스로 타릭이라는 카페에 들렀다.
따뜻한 샤프란 티를 주문했는데, 직원이 벽화 속 장면처럼 작은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따라 주었다.
맛이 오묘하면서도 은근히 끌려서 꽤 만족스러웠다.
2시간 정도 쉬고, 이번에는 인도인들의 주요 공동체인 리틀 인디아 거리로 향했다.
거리 시작점에는 인도인의 삶을 담은 벽화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강렬한 색채가 덧입혀진 벽은 단순한 외벽이 아니라, 그들 문화의 한 조각처럼 느껴졌다.
걷다 보니 인도 슈퍼마켓이 눈에 띄었고, 무엇을 파는지 궁금해 들어가 보았다.
들어서자마자 상품 진열대 위에 앉아 있는 비둘기 몇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놀라 소리를 질렀지만, 정작 가게 주인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내버려 두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한국에서는 가게 문이 열려 있어도 비둘기가 들어오는 경우가 드물고
혹여 들어온다 해도 바로 쫓겨날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비둘기조차 자연스럽게 공간을 공유하는 듯했다.
이것 또한 문화의 차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틀 인디아에도 사원이 있었다.
스리 비라마칼리암만 사원, 리틀 인디아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힌두 사원이라고 한다.
이곳도 역시 복장 규정이 있어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
안에 들어가 보니 대다수가 인도인이었고, 한창 의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곳곳에서 인도 전통 의상을 입은 사람들을 볼 수 있어 한층 더 흥미로운 분위기였다.
돌아다니다가 불타는 꽃들도 발견했는데, 무슨 의미를 담아 이렇게 했을까 궁금해졌다.
옆에서는 인도 전통의상을 입은 아주머니가 그 꽃을 들고 의식을 진행하고 있었다.
힌두교 신자들의 믿음이 느껴지던 순간이었다.
한쪽에서는 웃통을 벗은 남자분이 꽃을 나눠주고 있었다.
우리가 받아도 되는지 물어보니 가능하다고 해서 바글바글한 사람들 틈에 껴서 기다렸다.
우물쭈물하고 있자,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우리를 앞으로 땡겨주며 꽃을 받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꽃은 화요일에만 나눠주며, 축복을 의미한다는 사실도 함께 알려주었다.
단순히 꽃을 받은 것만이 아니라 그 의미까지 알게 되어 더 특별한 경험으로 남았다.
꽃을 받은 사람들은 머리에 장식하고 있어서 우리도 따라 해봤다.
평범한 꽃 하나였지만, 다른 나라 문화를 온전히 경험한 것과 더불어
친절한 사람들을 만나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 순간은 여행의 흔적이 담긴 작은 기념품처럼 마음속에 남았다.
다른 나라 문화를 조금씩 경험한 뒤, 다시 클락키로 돌아왔다.
저녁 시간이어서 친구가 미리 찾아둔 레전더리 바쿠테라는 식당으로 향했다.
이름 그대로 바쿠테를 파는 곳이었다.
주문할 때 곁들여 먹을 밥 종류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친구는 면을, 나는 빵을 골랐다.
첫인상은 갈비탕과 비슷해 보였지만, 실제 맛은 조금 달랐다.
자극적이지 않고, 삼계탕처럼 부드러웠다.
국물은 깔끔하고 시원했고, 고기도 야들야들했다.
특히 국물에 적신 빵은 퍽퍽함이 사라지고 부드러워지면서 맛이 한층 깊어졌다.
너무 마음에 들어서 마지막 날에도 다시 찾을 만큼 인상적인 식사였다.
싱가포르는 나이트라이프가 발달해 있어 밤에 돌아다니기에 적합한 곳이다.
첫날 밤은 하지 레인에서 보내기로 했다.
개성 있는 외관을 가진 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작은 골목이었다.
낮에는 벽화를 보며 고즈넉하게 구경하는 재미가 있고,
밤에는 형형색색의 조명이 거리를 밝히며 활기찬 분위기를 즐길 수 있을 듯했다.
싱가포르 오면 꼭 가보고 싶었던 곳 중 하나가 재즈바였다.
하지레인의 분위기를 담은 재즈바라면 더욱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찾은 곳이 Blu jaz, bali lane이다.
개성있게 그려진 벽화, 화려한 조명, 그리고 흘러나오는 재즈 음악, 사람들의 대화 소리.
모든 것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었다.
안쪽으로 들어가 맥주 두 병과 안주를 시키고 기다리는데, 연주자분들이 무대 세팅을 하고 있었다.
맥주를 마시며 재즈 음악을 감상할 생각을 하니 벌써 설렜다.
시간이 되자, 트럼펫 연주자를 필두로 연주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조용하고 감미롭게 흘러갔던 음악이 점차 빠르고 활기차게 바뀌었다.
주요 악기를 바꿔가며 연주했는데, 각 악기마다 가진 매력에 빠져볼 수 있어 좋았다.
트럼펫의 묵직함, 기타의 여유로운 소리, 피아노의 부드러움, 불꽃처럼 터지는 드럼 사운드.
음악이 진행될수록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연주하는 연주자들의 열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다양하고 새로운 문화를 접할수록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모두 같은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과연 성장할 수 있을까?'
'평생 자신이 옳다고 믿으며, 그 자리에 머물러 있게 되진 않을까?'
같지 않기에 때로는 갈등이 생기지만, 같지 않기에 서로를 채워줄 수도 있다.
그래서 사람 사이의 다름은 나에게 하나의 배움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다름의 미학이라 부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