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
잊었다고 생각했다.
살다 보면 어느 순간 그런 기억쯤은 흐려질 거라고,
시간이 다 씻어줄 거라고 믿었다.
그 시절을 일부러 떠올리지도 않았고,
누군가 묻지 않으면 먼저 말하지도 않았다.
이제 괜찮다고,
아무 일도 아닌 일처럼 꺼내 놓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여전히 그 시절을 살고 있는 것 같다.
꿈에서 자주 본다.
그 방이 나온다.
그 냄새와 소리, 눅눅한 장판, 닫히지 않던 문.
냉장고는 여전히 덜컹이며 숨을 쉬고 있고,
나는 그 아래 웅크린 채 깨어나지 못한다.
눈을 떠보면 현실은 멀쩡한데,
심장은 이미 그 방에 다녀온 듯 지쳐 있다.
무의식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도 기억을 놓지 않는다.
기억을 ‘잊었다’고 말하는 건
아마도 의식의 영역일 것이다.
무의식은 그런 걸 믿지 않는다.
잊었다는 말이 얼마나 부정확한지를
매번 꿈을 통해 증명한다.
그러고 보면,
나는 그때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그게 불안이라는 감정인지,
두려움인지, 어딘가 부서지고 있다는 신호인지조차 몰랐다.
그저 누가 시키는 대로 따라 했고,
누가 화내지 않게 조심했고,
누가 나를 싫어하지 않기를 바라며 살았다.
그게 살아내는 방법이었다.
말 그대로, 살아‘내는’.
지금 와서야 알겠다.
그 시절은 끝났지만,
내 안의 무의식은 여전히 그때를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조용한 방 안에서도
나는 자꾸 소리에 민감해지고,
누가 내게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에도
숨을 멈추곤 한다.
몸은 여기 있고,
시간도 지금인데
무의식은 여전히 그 시절에 머물러 있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땐 어렸잖아.
지금은 괜찮잖아.
그 말이 틀렸다는 건 아니다.
맞다.
지금은 괜찮다.
하지만 아주 가끔,
이유 없는 눈물이 흐를 때가 있다.
말 없이도 울컥할 때,
나는 안다.
그건 내 무의식이,
그때의 나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시절은 지나갔다.
나는 살아남았고, 잘 지내고 있고,
아무렇지 않은 날도 많다.
그런데도 꿈은 말한다.
무의식은 여전히 그 방에 있다고.
아직 거기에 한 아이가
작은 이불을 끝까지 끌어올린 채
잠들지도 못하고 웅크려 있다고.
가끔은 생각한다.
나는 어른이 되면서
그 아이를 데리고 나올 수 있을까?
그 방의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그 아이를 지금의 나에게 데려올 수 있을까?
한참을 망설이다가도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는 변하고 있다는 걸 안다.
예전 같았으면 입도 떼지 못했을 말을
이젠 글로라도 쓰고 있고,
그때는 참아야만 했던 감정을
이젠 느껴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있다.
크게 바뀌지 않았고,
여전히 불안하고,
때때로 흔들리지만,
나는 어쨌든 간에 미세하게나마,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그게 성장이라면
나는 아주 천천히, 그리고 다정하게
성장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아마 그 아이를 완전히 데리고 나오기까진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는 지금도
그 아이를 향해 걷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 아이가 나를 따라
이 방을 나서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