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열과 균형 사이
홍보팀 사무실, 시계는 오전 9시 30분을 가리키고, 사무실 한쪽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던 김주연 대리가 손을 빠르게 비비며 투덜댔다.
“아, 정말 손 시려서 일을 못 하겠네. 여기가 회사예요, 냉동창고예요?”
그 말을 들은 옆자리의 박진수 주임이 얇은 점퍼를 움켜쥐며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요. 지금 1월인데 난방 좀 제대로 틀어주면 안 되나요? 너무 추워서 손이 얼겠어요.”
문성태 팀장이 서류를 보던 중 고개를 들어 말을 보탰다.
“그러게 오늘따라 유독 춥긴 하네. 근데 정부에서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에너지 절감 실적을 평가한다고 하니까 난방을 조절하는 것 같아.”
하지만 윤태경 과장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럼 얼마나, 어떻게 절약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방법이라도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렇게 무작정 줄이는 게 맞는 건가요?”
김주연 대리도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윤태경 과장을 바라봤다.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덥고, 이래서야 무슨 업무 효율이 나겠어요?”
그때 사무실 문이 열리며 시설관리부서 직원 두 명이 들어왔다. 난방 온도를 확인하고는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윤태경 과장이 답답하다는 듯 말을 걸었다.
“여기 난방 점검하러 오셨어요? 너무 추워서 직원들이 일을 못 할 지경이에요.”
그러자 필기를 하던 직원이 손을 잠시 내려놓고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저희도 위에서 시켜서 하는 거라서요. 중앙에서 난방 온도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라는 지침이 내려왔습니다.”
“그 지침이란 게 사람을 얼어 죽게 하라는 건가요? 직원들이 효율적으로 일하려면 따뜻한 환경이 필요하잖아요.” 김주연 대리가 거들었다.
시설관리부서 직원은 난처한 표정을 짓더니 더 이상 말을 아끼고 서둘러 점검을 마치고 사무실을 떠났다.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박진수 주임이 중얼거렸다.
“결국 저분들도 시켜서 하는 거라는데, 이건 정말 답이 없네요.”
얼마 후 홍보기획사에서 홍보 콘텐츠에 대해 협의를 하기 위해 홍보팀 사무실을 방문했다. 문성태 팀장이 그를 맞으며 자리에 앉게 했다. 그러나 기획사 담당자는 자리에 앉자마자 몸을 움츠리며 말을 꺼냈다.
“여기 너무 서늘한 거 아니에요? 혹시 난방 고장 난 건가요?”
문성태 팀장이 억지로 웃으며 대답했다.
“아, 그게요… 정부 에너지 절감 정책 때문에 난방 온도를 제한하고 있어서요. 저희도 참 불편합니다.”
기획사 담당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이었다.
“저희 회사도 에너지 절감 정책을 따르긴 하지만, 기본적인 냉난방은 유지해 주거든요. 직원들이 일하려면 최소한의 환경은 보장돼야 하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큰 공기업에서 이 정도라니 좀 의외네요.”
김주연 대리가 끼어들며 말했다.
“그 말씀이 맞아요. 이렇게 추운 데서 일을 하라니 효율이 나올 리가 있나요? 기획사에서도 우리 환경을 보고 놀라시는 걸 보면, 더 말할 필요도 없죠.”
담당자는 잠시 고민하더니 말을 이었다.
“사실, 저희가 오늘 논의하려던 주제도 관련 있는데요. 새롭게 제작 중인 홍보 브로슈어에 환경 경영 실적을 넣는 건 어떨까 해서요. 요즘은 ESG(Environment, Social, Governance) 경영이 중요 포인트잖아요.”
문성태 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를 시작했다.
“좋은 제안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평소에 에너지 절감을 실천하는 걸 생각하니까, 정말 ESG 경영을 자신 있게 홍보해도 될 것 같네요.”
기획사 담당자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맞습니다. 저희 쪽에서 추가 자료를 준비해서 자연스러운 메시지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문성태 팀장이 서류를 건네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브로슈어 초안을 검토한 뒤 추가 논의를 이어가도록 하죠. 김주연 대리는 다음 회의 일정 확인해 주세요.”
기획사 담당자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추우신 와중에도 응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그가 사무실을 떠나자 박진수 주임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우리 사무실 환경을 보고도 저렇게 놀랄 정도면, 정말 개선이 필요한 거 아닌가요?”
김주연 대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그러게요. 협력업체도 다들 힘들다고 하는데, 정작 우리 내부에서는 아무 조치도 못 하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에요.”
오후가 되자 문성태 팀장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전화기를 들어 총무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총무팀장님? 저 홍보팀 문성태입니다. 에너지 관리 방침에 대해 이야기 좀 나누고 싶은데요. 지금 사무실이 너무 추워서 업무가 안 될 지경이에요.”
전화기 너머에서 총무팀장의 피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팀장님, 저희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정책적으로 온도를 조절하지 않으면 페널티를 받을 수 있어서요. 저희도 불편함을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럼 이 상태로 계속 가야 한다는 겁니까? 직원들이 불만이 많습니다.” 문성태 팀장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저도 에너지 사용 실적을 보면서 최대한 적정하게 조절해 가겠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으시는 게 좋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뒤 문성태는 의자에 기대 한숨을 쉬며 혼잣말을 했다.
“여름엔 더워서 난리고, 겨울엔 추워서 난리고. 이래서야 일을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냐.”
시계는 5시를 넘어가고 있었고, 겨울이라 그런지 해가 빨리 져서 사무실은 더욱 추운 느낌이 들었다.
박진수 주임이 핫팩을 흔들며 농담을 던졌다. “난방도 안 되는데, 앞으로 퇴근은 일찍 해야겠네요. 어떻게든 빨리 나가야 덜 추울 것 같아요.”
그는 이어서 말했다. “이러다 핫팩 생산하는 기업만 돈 버는 거 아닙니까? 에너지 절감 덕분에 그쪽은 호황이겠어요.”
김주연 대리가 웃으며 맞받아쳤다. “그러게요, 사무실 안이 더 추우니 차라리 밖으로 나가는 게 나을 판이네요. 근데 이러다가 정말로 동태처럼 얼겠어요.”
윤태경 과장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다들 핫팩 필수 장비로 챙겨 다니세요.”
박진수 주임이 핫팩을 문지르며 농담했다. “이러다 정말로 핫팩 구매 비용 청구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겨울 업무 필수품이라면서요.”
김주연 대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한 마디 덧붙였다.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추우면 진짜로 업무 효율 떨어지잖아요? 이건 절감이 아니라 비용 증가로 이어질 것 같은데.”
그 말을 듣고 있던 문성태 팀장은 갑자기 뜨끈한 갈비탕이라도 한 그릇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갑고 건조한 사무실에서 하루를 버틴 몸과 마음을 녹여줄 따뜻한 국물이 간절했다.
사무실 안은 다시 조용해졌고, 각자 손에 든 핫팩이 유일한 열기를 제공하는 중이었다. 직원들 모두 마음속으로 어서 겨울이 지나가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어둑해진 창밖으로는 차가운 겨울바람이 스산하게 불어오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