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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 대충 합시다

by 유 정

현대인이 가진 '우울증'과 '조울증', '공황장애', '불안장애' 등등 감기처럼 흔하게 가진 질환이지만, 과감히 드러내고 질환에 맞서 건강한 싸움을 하려는 사람도 많다. 나 역시 '조'는 없지만 '울'은 있고, 충분한 불안 속에서 가끔은 공황도 마주한다. 하지만 나를 덮치는 감정의 파도를 겁내지 않는다. '우울한데 그게 왜?' '불안한데 그게 왜?'라는 역설적인 마인드가 필요하달까.


우리는 우울과 불안을 감추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부끄러워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 감정들을 드러내고, 직면하며,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보는 것이다. "그래, 지금 나는 우울하다. 그런데 그게 어때서? 내가 느끼는 감정일 뿐이다." 혹은 "지금 나는 불안하다. 하지만 그 불안이 나를 삼키지 않게, 나는 이 감정을 다룰 것이다."


물론 스스로의 감정을 컨트롤한다는 게 마냥 쉬운 것은 아니다. 겪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한 번 잠식당하기 시작한 마음은 내가 고개를 들 결심을 하기까지 제법 긴 시간이 걸린다는 걸 알 것이다. 감정과 싸운다는 것은 그들을 부정하거나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내 삶 속에서 그것들을 다룰 방법을 찾는 것이다. 우리는 흔들리며 살지만, 그 흔들림 속에서도 중심의 힘을 키울 수 있다.


그러니 불안이 올 때, 그것을 회피하지 말고 "이 또한 지나갈 것이다"라고 말해보자. 우울이 밀려올 때,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나는 나를 포기하지 않는다"라고 선언해 보자. 그것이야말로 건강한 싸움의 시작이 될 것이다. 우울과 불안은 우리가 무너뜨릴 수 있는 적이 아니라, 불완전한 감정일 뿐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때로는 '대충 살자'는 태도가 우리를 지켜주기도 한다. 대충 사는 것은 포기가 아니라, 나를 지키는 전략이다. 어차피 인생은 연속적인 우울과 불안의 연결고리이므로, 내 속도와 리듬을 존중하며 살아가면 된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삶 또한 성적표가 아니며, 완전하지 않은 그 자체로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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