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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 아이가 크면 풀어줘야 하나?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 사춘기 딸

by 산소같은 여자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는 딸
해물 Pan

어제 지갑 속에 있던 200 세켈 지폐 두 장이 사라진 것을 알게 되었다.


월요일 오후, 마지막으로 돈이 있는 것을 확인했었고 오늘은 수요일 아침이다.


돈은 화요일에 사라진 게 틀림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현금 400 세켈을 쓴 기억이 없다. 정말 미칠 것 같다.


딸을 다시 의심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모든 상황을 보면, 내 지갑에 손을 댈 사람은 결국 이 아이밖에 없다.


알바를 두 개나 하는 아이인데, 왜 돈에 욕심을 부려 남의 돈에 손을 댔을까?


추궁을 해도 틀림없이 자기가 아니라고, 왜 자신을 의심하냐고 반박할 것이다.


아이를 나는 아들보다 더 다정하고 여유롭게 키워 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이는 나와 사는 게 마음이 답답하고 나를 싫어하는 것 같이 보인다.


딸이라서 내가 더 신경 쓴 것이 아이에게는 간섭으로 느껴져 너무 괴롭고 숨이 막힌단다..


나의 학창 시절을 돌이켜보면, 동네에 있는 중학교를 다녔을 때는 집과 학교만을 오가며 3년 동안 우물 안 개구리처럼 생활했던 것 같다.


부모님 두 분은 맞벌이를 하셔서 우리 3형제를 일일이 챙겨주시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전교 6등으로 연단에서 우등상 상장을 받으며 중학교 졸업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아버지의 뜻으로 인문계 고등학교 대신, 졸업하면 바로 취직이 된다는 상업고등학교 시험을 치르고 서울여자상업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1학년 첫 중간고사를 보고 반에서 중간 정도 되는 등수에 충격을 받았고, 갑자기 상업학교에서만 배우는 부기, 타자, 마케팅 같은 과목들이 끔찍하고 싫어졌다.


결국, 그때부터 공부를 포기했다. 중간고사 성적을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확인을 받아 오라는 숙제에 나는 내가 대신 서명을 해서 담임에게 제출했다.


부모님은 여전히 작은 단칸방에서 버티며, 가족을 위한 넓은 방이 있는 집으로 이사하기 위해 밤낮으로 열심히 일을 하셨다.


중간고사 성적을 물으시는데, 고등학교에서는 성적표가 없다고 거짓말을 해서 넘어갔고, 나는 반에서 10등 안에 들었다고 또다시 거짓말을 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수많은 거짓말을 하며 유흥비를 마련했다.


자습서를 사야 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타자와 부기 자격증 시험을 봐야 한다고 말하며 매달 부모님의 쌈짓돈을 받아냈다.


이렇게 받은 돈은 학교 근처에 있던 두 개의 영화를 상영하는 허름한 영화관에 가는 데 사용했고, 친구와 함께 종로에 있는 기타 학원에도 다녔다.


기타 강습을 마친 후, 친구와 종로 거리에서 즐비하게 서 있던 포장마차에서 붕어빵, 떡볶이 등을 사 먹었다.


돈은 항상 부족해서 또 어떻게 거짓말을 해서 돈을 받을까 고민했다.


지금도 부모님은 나의 이 휘청거렸던 과거를 전혀 모르신다. 나는 그때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했다.


그 시절이 나의 혼란스러웠던 사춘기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머릿속에는 가출 충동이 있었고,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늘 미묘한 거리감을 느꼈었다. 이 때는 사는 게 괴로웠었다.


나의 사춘기는 매일 구로동에서 서대문까지 버스 두 대를 갈아타며 등교해야 해서 지긋지긋할 때가 많았다.


고2가 되면서 가끔 학교에 가지 않기도 했다. 아침에 조조 영화를 보러 다니거나, 광화문에 있는 공원에 막연하게 앉아 있기도 했다.


고3 때 마지막 성적표의 등수는 아마 뒤에서 몇 번째였을 것이다. 취업 준비를 하느라 학교 시험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가장 공부하기 어려웠던 수학과 일본어는 시험 문제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충 답을 찍고, 답안지를 제출한 후 교실을 제일 먼저 빠져나왔다.


나의 딸의 사춘기는 중학교 때 시작된 것 같다. 아이는 하루 종일 자기 방에서 나오지를 않고, 항상 방문을 잠갔다.


아이는 나의 관심을 싫어한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고3이 된 아이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포기하기가 어렵다.


몇 달 후에 군대에 가는 아이, 자기가 번 돈을 저축하지 않고 1 세켈까지 다 써버리는 경제관념이 부족한 아이, 죽어라 사 들이는 값싼 옷들과 화장품들.


모든 것이 신경이 쓰이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의 불만은 말로 표현하지 않지만, 얼굴에는 그대로 나타난다.


나는 연기자가 아니다. 얼굴 표정을 아무 일 없는 듯 거짓으로 평온한 척할 수는 없다.


고3인 지금, 아이는 알바를 두 군데나 한다.

그래서 이미 본인은 독립했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의 관심이 자신에 대한 집착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곧 18살이 되는 아이는 이제 아이의 논리대로 살고, 세상과 부딪히며 깨지며 살 수가 있을지도 모른다


더 이상 이 아이와 논쟁하고 싶지 않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을 심은 데는 팥이 난다.


내가 이 아이를 이렇게 키운 것이다. 잘못이 있다면 그건 내 잘못이다. 이제 풀어주어야 한다. 아이가 하는 데로 일단 놔두어야 한다.


진짜로 무자식이 상팔이다


400 세켈은 부다페스트 여행을 가는데 보태준 돈으로 생각하고, 잊어버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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