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의 단상 斷想] ; 내 머릿속을 채우는 것들

by 굴러가유

- 글 쓰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특히 어떤 것을 보고 느꼈다면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 같은 것들.

전시, 공연, 책, 영화 등이 있다. 순간의 정서와 생각들은 뒤돌아서버리면 증발해 버리는 신기루 같은 것들.

나는 나를 이루는 무언가가 날아가기 전 얼른 붙잡아 글로 남겨버리고만 싶다.

나에게 감상이란 글로 남기는 과정까지가 한 묶음이다.

더 풍부한 감정과 경험과 성장을 위해 , 더 훌륭한 배우로 나아가기 위해 생겨버린 강박이다.

- 그럼에도 동시에 나는 글을 미친 듯이 써 내려가고 싶다. 허락된다면 하루에 꽤 많은 시간을 주야장천 글만 쓰고 싶을 정도다. 내 머릿속 떠오르는 생각의 속도를 가까스로 맞춰가면서 그것들을 글로 출력해내고 싶다.

나의 욕심이자, 건방짐인 것 같기도 하지만 어쩔 수없다.

순서를 지키지 않고 앞다퉈 떠오르는 온갖 생각과 잡념과 상상들을 어르고 달래어 글로 차근차근 쓰다가도

나도 그것이 감당이 안될 때가 있다. 그러면 여지없이 펜을 내려놓거나 노트북을 덮는다.

단념도 빠르다. 좀 그런 편이다.


- 살면서 생각보다 크게 분노할 일이 없는데, 정말 오랜만에 그 감정을 느낀 적이 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엄청 흥분한 상태였다는 게 자각이 들었다. 진정하려 해도 온몸에 여전히 부들거림이 느껴졌고, 관자놀이부터 머리끝까지 뜨겁게 달아올랐다. 침착하게 논리적으로 말하는 게 어려우니 짧고 간단하게 문장들이 나왔다.

나는 화를 낼 때 이렇게 내는구나.. 내 안에 있는 감정을 처음으로 대놓고 마주했다는 생각에 기뻤다. 좋은 연기를 할 수 있는 재료를 또 하나 저장한 것 같아 뿌듯하기도 했다. 동시에 엄청난 부끄러움은 덤이다. 나의 무지함, 그 때문에 남에게 당할 뻔했다는 위기감과 분함, 억울함 그런 것들이 내 안 깊숙이 있던 분노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나라는 사람은 참 그런 걸 견디기 버거워하는구나. 나를 또 알아간다.

- '자유'라는 것은 나를 잃지 않으며 나를 헌신하는 것... '몰입'이라는 강한 에너지를 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를.. '나'라는 심지는 굳게 서있을 거니까, 조금은 지칠지언정 그 심지는 뽑히지 않을 거라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가져본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나를 잘 달래가면서 , 상처받는 것에 너무 두려워하지 않기를.


- 올해가 가기 전, 감사한 기회로 공연을 준비 중이다. 나의 주말을 온전히 다 쏟아가면서 동료들과 함께 작품에 대해 고민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은 몸은 힘들지언정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은 풍요롭다. 내가 연기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던 계기. 초심을 잃지 않는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초심이 처음엔 바위크기의 어마어마한 것이었어도, 부서지고, 작아지며 한 손에 들어갈만한 작은 조약돌이 되어도 상관없다. 여전히 내 손엔 그때의 마음이 존재한다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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