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를 했는데 약자가 되어 있었고 용서를 했는데 미련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것들은 모두 누구를 위한 것일까?"(중략) 실은 용서라고 하는 것이 타인을 위한 것인 줄 알았다. 헌데, 많이 울고, 많이 아프고, 많이 외롭고 난 뒤에 알게 된것은 그것이야 말로 나를 위한 것이란 사실이다.
그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 지는 유일한 길은 용서 밖에 없기 때문에, 내 행복을 위해서 용서하는 것이다. 내 마음에 그 무책임한 짐을 덜기 위해서.
-128쪽 <용서>
- 용서는 타인을 위한게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난 이 사실을 언제 깨달았냐면 나의 유년시절,
나의 좁은 세계에 스며든 미친 도파민. '아내의 유혹' 을 본 후로부터 난 복수와 용서라는 개념을 강력하게 배울 수 있었다. 남편과 내연녀에게 복수하기 위해 눈 밑에 점을 찍고 온갖저주를 퍼붓는 민소희.
그렇게 자신을 갉아먹으면서까지 하던 복수 끝엔 허탈함과 불운함만 남아있는 듯 보였다.
- 마지막 문구가 좋다. "내 행복을 위해서 용서하는 것이다. 내 마음에 그 무책임한 짐을 덜기 위해서."
- 소설 속에는 '웃자라다' 라고 하는 단어가 등장한다.
그것은 쓸데없이 보통 이상으로 자라나 연약해지는 상태를 의미한다.(중략)
현실은 합리적으로 행동해야 할 것을 강요하고, 마음은 조금 더 본능에 충실하길 원한다.
그 간극 사이에서 인간은 실로 불온한 존재다.
-129쪽 <무의식>
- 우리 집에도 웃자라는 것이 하나 있었다. 식물에 대해 살아생전 잘 관심도 안가졌던 내가
'안하던 짓 해보기' 챌린지 중 시도한 것이 바로 식물기르기였다. 다이소에서 흙을 사와 화분에 흙과 물을 넣고, 역시 다이소에서 산 상추, 고추, 토마토 씨앗을 넣어 정성껏 길렀다.
- 생각보다 빨리 싹이 트는것을 보고, 날이 갈수록 쭉쭉 커지는 모습은 너무 기쁘고 사랑스러웠다. 나도 식물을 기를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하는 또 다른 나의 가능성을 본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어느순간부터 식물이 이름답게 크지 않았다.
상추는 상추처럼 자라지 못하고 미친듯이 천장으로 길고 얇게 올라가더니 끝엔 솜털같은 꽃을 피웠다.
토마토도 위로 위로 솟구치더니 열매는 커녕 꽃은 보이지도 않고 뿌리쪽이 서서히 썩어가는 것이 보였다.
- 웃자랐다. 웃자란 것이다. 사랑과 정성으로 매일같이 물을 주고, 고루 햇빛을 받게끔 돌려줬지만..
너무 과했던 것일까. 현실과 마음에 과한 애정과 강박들이 그들을 죽게 한것은 아닐까.
"언젠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에게, 그 순간의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살아가도록 해요."(중략) 처음 사랑을 말할 때, 그리고 그 사랑이 끝이 났을때에도 내 주변은 언제나 고요했다.
세상에 꼭 그 단어만은 떼 묻지 않은 순수함으로 영영 그 자리에 있었으면 하는바람이 있다.
잠들지 못해 뒤척이는 모든 마음들, 끝내는 부디 고요해 지길 바란다.
-137쪽 <고요>
- '고요하다'. 조용하고 잠잠하다. 모습이나 마음따위가 조용하고 평화롭다. (출처_네이버 국어사전)
내가 나 혼자 존재할때에,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한다 말하고 둘이 되었을때, 끝에 다시 홀로 남았을때에도
나는 계속해서 고요하고 싶다. 그 무엇도 그것을 더럽히지 못하도록, 내 안에 부디 굳건히 고요함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있으면 좋겠다.
'빛은 비물질적인 물질로서 다른 모든 물질을 드러나게 한다. 다만 물질이 윤곽을 얻는 것은 빛만의 활동이 아니라 물질에 내재하고 있는 어둠의 계기에 의해서 빛이 한정되기 때문이다.'
-헤겔 [엔치클로페디 제3판, 자연철학]-
(중략) 그러니까 색이라고 하는 것은 외부의 요소가 단순히 결정지어 주는 사안은 아니다.
내 안에 잠재되어 있는 무언가가 나의 색을 결정짓는 중요한 가치인 것이다.
그 융합적 가치 속에서 우리는 '타자 안에서 보란듯이 존재하는 자기 내 삶'을 경험할 수 있다.
빛은 어디에 속하든 빛이다. 변하지 않는다. 질량이 없지만 고개 숙이지 않는다. 그저 나아갈 뿐이다. 헤겔이 말하길 타자 안에서의 자기 내 삶, 그것은 사랑이라고 하였다.
-138쪽 <Light 빛>
- 빛은 내 색을 뚜렷하게 빛나게 해주는 보조자일 뿐이다. 결국 아름다운 색은 아름나운 나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고, 우리는 수많은 타자들 안에서 내 색을 잃지않도록 해야한다.
- 나의 요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가 바로 이거다. 타자 안에서 나의 색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
나는 나를 사랑하고 있는가? 사랑할 순 있을까? 어떻게 해야 나를 알 수 있을까...
무엇이 나를 쓸모 없게 만드나. 다른 이들의 편견과 생각 때문인가 아니면 정말로 내가 쓸모 없는지도 모른다는 스스로의 좌절감 때문인가. (중략)
비좁은 일상이 감옥처럼 느껴져서 회사를 그만두고 작가라는 직업을 택했을 때,
실은 완전한 해방을 경험했다라기 보단 조금 더 넓은 감옥으로 옮겨왔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자유로워진다는 건 어떤 것일까. 지금 여기에 만족하는 마음가짐일까, 혹은 무엇에도 상처받지 않는 단단한 자신감일까.나는 여전히 그것에 대해 잘 모른다.
허나 분명 '자유'라는 것은 내가 타인을 위해 애쓰면서 그에 의해 자신을 잃어버리는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때때로는 예외적인 현상들이 일어나기도 했다.
타인을 위해 애쓰면서 오히려 나의 행복이 커지는 것만 같은 느낌.
어쩌면 그것이야 말로 자유로운 우정과 사랑은 아닐까.
다만,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는 다른 무언가에 구애 받지 않고 '몰입'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뿐이다.단어 하나 하나, 문장 한 줄을 엮어가며 한 권의 책을 이룰 때 그 과정 속에서 나는 무엇보다 스스로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자신을 느낄 뿐이다.
-139쪽 <자유>
- 글을 읽고 내가 생각한 자유는 '무언가에 사랑을 쏟아도 나를 잃지않는 것' 이라고 정의 내려본다.
타인을 혹은 어떤것에 온 마음 다해 사랑과 헌신을 쏟더라도 나라는 사람은 흔들리지 않을거라는 자신감.
그건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관계의 끝은 상황의 어려움이 아닌, 마음의 깊이가 얕음으로 비롯되기 때문이야. (중략) 흔히들 자칫 작은 실수 때문에 멀어질 관계에 더 많은 주의와 배려를 기울이지만 실은 어찌됐든 나를 이해해주는, 세상의 끝까지 내 곁에 있어줄 사람에게 우리는 더욱 정성을 다 해야만 해. 그러니 명심하도록 하자.언제까지나 내 곁에 있어 줄 존재들을 결코 당연시하지 않겠다고. "
- 141쪽 <소중한 사람>
- 가까이 있는 사람들부터 잘 해야한다는 걸 알지만 집에 들어오면 엄마한테 툴툴대고, 전화로 애인에게 툴툴댄다. 더욱 정성과 배려를 다해야하는 사람은 한 평생 내 편이 되어줄 사람들인데, 그들에게 고마움을 느껴야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
- "우리 비록, 지금은 활짝 핀 꽃이 아니더라도 고개 숙이지 말자.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곧 우리의 태도인거니까.'
- 144쪽 <꿈>
- 비록 지금은 내 꿈이 저 멀리 있어보일지라도 , 금방이라도 도착할것처럼 내가 곧 이룰거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가자. 이미 그렇게 되었다 확언하고, 그렇게 된 나 자신과 자축하자.
" 이렇게 제가..청룡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게 되다니... 너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