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담아, 슬픔과 너무 가까이 지내면 슬픔에도 중독될 수 있어.
슬픔이 행복보다 익숙해지고 행복이 낯설어질 수 있어.
우리 그러지 말자.
미리 두려워하지 말고 모든 걸 다 겪자."
[급류]_정대건 / p. 256
한때 반복되는 삶에 진절머리가 나던 시기가 있었다.
하루가 시작되는 게 괴롭고 내 마음속 땅굴은 끝도 없는 깊은 곳이어서 발버둥 치며 올라오려 해도 매번 미끄러지곤 했다. 어두운 구덩이 속에는 나만 있는 게 아니었다.
슬픔이 함께했다.
우울이 함께했다.
그렇게 좌절, 무력과 같은 친구들을 점점 데리고 오더니 그나마 작게 보이던
저 하늘의 작은 빛 구멍까지 걔들이 막아버렸다.
익숙해졌다.
그들과 함께 있는 게 익숙해졌고, 그게 당연하게 되었다.
잠깐 나에게 찾아오는 기쁨은 잘못 본 신기루 같은 빛이어서 낯설었고 믿지 않았다.
언제든 떠날 것들, 그리고 항상 나를 지키고 앉아있는 슬픔 것들.
난 나와 계속 함께할 이것들에게 의지했다.
나는 중독되었던 걸까.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 그 냄새와 빛깔이 배어들어가는 것도 느끼지 못한 채.
어느 날 내가 지내는 동굴 속 고여있던 웅덩이에 비친 나를 발견했다.
그렇게 나는 향과 색을 잃어가고 있었다.
하늘의 빛을 가린 건 걔들이 아니라 나였다.
막무가내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책을 빌려 읽기 시작했고, 무작정 브런치 글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나를 감싸고 있는 이 어두운 것들을 하나하나 벗겨내고 싶어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정체를 알지도 못했지만
글로, 글자들로 풀어내어 눈앞에 쌓아놓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각 없이 매일 글을 읽고 쓰는 과정에 나를 던져놓았다.
나를 덮고 있던 부정적인 아이들이 점차 뜯어져 나오고 몸이 가벼워졌다는 걸 느낄 새도 없이,
그 모습에 기쁨과 행복이 나를 구경하러 왔다감을 눈치챌 틈도 없이.
정신을 차려보니 내 몸에는 아무것도 붙어있지 않았다.
그 모든 것들은 내 주변을 부유하고 있었고 익숙함과 낯섦을 구별 짓지 않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내 몸에 붙어있던 것이 다시 붙지 않기를 경계하긴 했지만
행복도, 기쁨도, 슬픔도, 좌절도 특별히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그저 흐르고, 잠시 나에게 닿기도 했다가, 다시 떼어져 부유했다.
그저 그렇게 모든 걸 겪었다. 미리 예상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것. 그저 하루를 살아보는 것.
고개를 들어보니 나는 땅 위에 발을 딛고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