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7일 자의 여상 작가님의 글(기억하자)을
3월 3일에 읽고 공감의 마음을 댓글로 전하였다.
그런데, 3월 12일 여상 작가님의 답글이 전해졌다.
'무성의하게도 작가님의 남긴 글을 이제서야 보게 되었네요. 너무 미안하고, 감사합니다.'
미안해하실 일이 아닌데 미안해하시는 답글에 오히려 내가 겸연쩍었다.
동시에 실시간의 답글이 아닌 시간차를 두고 받은 답글로 하여금
편지를 주고받던 시절을 떠올리며 그리워하는 시간을 누리게 해 주었다.
물리적인 거리가 무색할 만큼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대화가 아닌,
물리적인 거리를 느끼게 해 주는, 내 마음이 건너가고 네 마음이 다시 건너오는 시간차의 대화에는 서로 간의 대화를 위한 서로 간의 시간을 투자하는 너무 낭만적인 그리움으로 채워지는 듯 하다.
그래서, '브런치의 답글은 편지처럼 와도 좋다'라는 생각을 하였다.
인터넷의 발달 이전에, 아니 인터넷을 사용하기도 전에는
일반적으로 안부나 소식을 전하는 수단으로 편지를 이용하였다.
태어나보니 세상의 통신망이 인터넷이 기본이었던 젊은 청년들은 이메일이나 모바일 메신저를 이용하여 안부나 소식을 전하기에 아마도 편지가 무엇인지 모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편지지에 펜으로 글씨를 쓰고, 편지봉투 크기에 알맞게 맞추어 접어 넣고, 우표를 붙이고, 우체통에 넣는 것까지가 내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다음부터는 우체국이 책임지고 내 편지를 전해주는 역할을 해 주었다.
집배원은 자신의 관할 지역의 우체통을 매일 열어보고, 우체통에 있는 편지들을 집배가방에 옮겨 담고, 우체국에 가져가면 그때부터 상대방에게 배달이 시작되었다.
지금은 상상하지 못할 일도 있었다. 자신의 글씨체가 마음에 들지 않던 친구들은 글씨체가 예쁜 친구에게 대신 편지를 써 달라고 부탁을 하곤 했었는데, 부탁을 해야 하는 친구는 당연히 그 친구의 비위를 맞춰줘야 했었다. 갖고 싶은 학용품이나 먹고 싶은 군것질 등으로 그 친구가 편지를 잘 써 줄 수 있도록 마음을 움직여야 했었다. 물론 부탁을 받은 친구가 아무 조건도 없이 써 주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다행히 부탁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라 다행이었다.
(학창 시절 예쁜 편지지, 편지봉투, 엽서를 위하여 문구점을 찾아다니기고 하였고, 마음에 드는 편지지가 있으면 친구들 간에 서로 나누어 주기도 하였고. 참으로 낭만적이었지.)
우체통에 편지봉투를 넣는 그 순간부터 시계가 된다.
지금쯤 편지를 받았을까? 편지를 받고 바로 답장을 써준다면 언제쯤 올까?
마음에는 수십 개의 시계 초침이 짤깍대며 쉼 없이 돌아가고, 대문에 걸려있는 우편함 안을 수시로 들여다보기 위한 몸은 끊임없이 분주했다.
나는 편지를 쓸 때 유독 날씨에 민감했다. 혹여라도 편지가 배달되는 과정에 비라도 내리면 종이 편지가 젖는 안타까운 일이 생기기 때문에, 가급적 날씨가 고약한 주간에는 편지 쓰는 일을 피했다. 그럼에도 꼭 편지를 보내야 하는 일이 생긴다면 우체국에 직접 찾아가 편지를 전달했다. 그럼 비를 맞을 확률이 줄어든다고 확신했으니까.
친구들에게 편지를 받으면 꼭 레터오프너로 편지봉투를 열었다. 언뜻 보면 편지봉투를 열었는지 구분도 되지 않았던 것이 좋았다. 다시 읽을 때 그 편지봉투를 보면 이제 바로 받은 편지 같았기 때문이다.
아! 오늘 생각해 보니 편지를 썼던 때가 언제였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제는 '손편지'라는 말도 그리운 단어가 되어 버렸네.
오늘 밤은, 편지를 보내고 싶은 그리운 그 누군가를 떠올려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