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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을 주는 사람은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다

by SingleOn

처음 미국으로 갈지 모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 망막하고 두려워서 어디서부터 뭘 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먼저 나온 주재원들과 나는 상황이 좀 다르기도 했고, 와이프 분들과 일을 분업해서 하다 보니, 어떤 부분은 여쭤보면 아예 모르는 부분도 있고.. 성격 상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도움을 청하지도 못하겠고, 혼자 이래저래 스트레스만 계속 커져 갔다.

그렇게 하루하루 준비를 해나가던 중, 대학/대학원 선배이자 첫 직장을 함께 다녔던 지현 언니를 만났다. 지현 언니는 회사에서도 일을 잘하기로 소문났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멀쩡히 잘 다니던 회사를 갑자기 때려치우고, 미국으로 박사 유학을 갔었더랬다. 그때 언니 아들 나이가 4살이었던 것 같은데, 그 어린 아들을 혼자 데리고 미국에 가서 박사 학위를 따고, 지금은 대학 교수가 되었다. 사는 동안 가끔 연락하며 지냈는데 마침 언니가 내가 미국 가기 직전에 한국에 방문하게 돼서 만날 수 있게 된 거다.


오래간만에 언니를 보자마자 나는 또 눈물이 터졌다(미국으로 가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부터 왜인지 모르게 나는 눈물이 많아졌다). 언니는 나보다도 훨씬 어렸을 때인데, 그때 어떻게 아들을 데리고 혼자 가서 공부를 했어? 언니, 그동안 너무 힘들었겠다..

그동안은 그냥 미국에 유학 간 언니가 부럽기만 했다. 일을 안 해도 되는 언니가 부러웠고, 나도 유학이 꿈이던 시절이 있었는데, 나이가 들어서 그걸 해 내는 언니가 멋져 보여서 또 부러웠다. 내가 막상 애를 데리고 혼자 미국에 간다고 생각하니 그때서야 그 당시 언니가 얼마나 힘들었을까가 느껴지다니 사람 마음이 이토록 얄팍하고 간사하다. 그 상황이 되어봐야 비로소 다른 사람의 힘듦이 눈에 들어오다니..


이미 많은 경험이 쌓인 언니가 나에게 말했다. ‘인온아, 아무 걱정하지 마. 힘들고 죽겠는 순간에 진짜 거짓말처럼 어디선가 좋은 사람들이, 도와주는 사람들이 나타나. 믿어봐.’

의심 많고 시니컬한 내가 말했다. ‘그건 언니가 운이 좋아서지. 그리고 언니는 교회도 다니잖아. 그러니까 어느 정도 한국 사람들도 있고… 나는 종교도 없고 아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어떡해.’ 나는 왜 이렇게 사람 말을 못 믿고 매 사 이렇게 따지듯 캐 물을까. 그런 나에게 언니가 다시 말해줬다. ‘인온아, 진짜, 나타나. 도와주는 사람들이..’

속으로는 정말 대책 없이 낙천적인 언니라 생각하면서도 내심 또 그 말이 위안이 되었다. 지금까지 이렇게 생각나는 걸 보면. 그래서 도와주는 사람들이 갑자기 나타났냐고?


그랬다.


나는 여기 와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그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다.


미국에 온 첫 주말, 2시간 거리의 우리 집으로 남편을 끌고 만삭의 몸으로 와 준 서현이가 있었다. 같이 IKEA에 가서 가구를 사서 조립해 주고, 샤워기를 호스로 바꿔 주고, TV 사는 걸 도와줬다. 한국에서 같이 일하던 후배였는데, 서현이도 회사를 다니다가 공부를 한다고 미국으로 떠났다. 사실 연락은 하면서도 그녀가 정확히 미국 어디쯤 사는지는 모르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나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다. 맨 처음 집을 찾고, 미국 여기저기 기관들(아파트 관리 사무소, 차량 보험, 집 보험 등)에 전화해서 물어봐야 할 것들을 서현이가 많이 도와줬었다.


고등학교 때 호주로 이민 갔던 영진이도 나타났다. 영진이랑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친구다.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살아서 서로 집에도 자주 왔다 갔다 하며 놀던 친구다. 영진이가 이민을 가게 되면서 연락이 뜸해졌다가, 다시 미국으로 이민 왔다는 소식을 듣긴 했는데, 영진이도 우리 집에서 2시간 거리에 살고 있었다. 이런 우연이… 어쨌거나 미국에서 맞이하는 첫 연말에 우리 모녀가 외롭게 지낼까 봐, 집으로 초대해서 밥도 해주고, 이곳저곳 구경도 시켜줬다. 집으로 돌아갈 때는 한국음식들을 바리바리 싸줬다. 지금도 영진이는 가끔 여행 가는 길에 우리 집에 들러 여러 한국 음식과 반찬들을 냉장고 가득 차도록 쥐어 주고 간다.


회사에서는 야소를 만났다. 스리랑카에서 이민 온 같은 부서 동료인데, 결혼을 하면서 2006년에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고 했다. 그러다가 이혼을 했고, 이혼 후 새롭게 일을 시작하면서 많은 것들을 홀로 일구어 나가고 있는 훌륭한 친구다. 같은 아시아 여성으로서, 집안의 이혼 1세대 로서, 그리고 이민자로서 많은 공통점을 가져서 그런지, 그 누구보다 내가 뭐가 힘들고 어려울 지에 대해 먼저 생각하고 도움을 주고 있다. 아시안 식료품들은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동네의 맛집은 어딘지, 우기 시즌에는 무엇을 대비해야 하는지..부터 시작해서 회사에서는 내가 일하다가 영어로 어려움을 겪을 때 대신 통역도 해준다. 신기하게 미국인들이 내 영어를 잘 못 알아들을 때, 야소는 찰떡같이 나의 영어를 잘도 알아듣는다.


이 밖에도 자주 다니는 식료품 가게에서 매일 윙크를 날려주는 할아버지, 우리 집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바로 달려와 주는 아파트의 관리 사무소 직원들, 때마다 집에 초대를 해주고 자기 쓰던 좋은 물건을 나눠주는 대화 클럽의 자원봉사자들.. 진짜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좋은 사람들이 잔뜩 나타나 주었다.


2년의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제야 알겠다. 미리 너무 많은 걱정을 앞서서 할 필요는 없었다고. 사실 이런 말들을 살면서 많이 듣지만, 정작 나에게는 또 잘 적용을 못 시키면서 살아왔던 것 같다. 그나마 미리, 앞서서 걱정하니까 지금 이만큼이라도 살고 있는 거야.. 라며 그 말을 애써 부정하기도 했던 것 같고..


마흔이 넘고, 계획에 없이 미국에 와서 일하며 살다 보니, 이제야 조금씩 그 말이 마음으로 와닿고 있다. 세상에는 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노력을 해도 안 될 수도 있고, 뜻하지 않게 행운이 찾아올 수도 있고. 그러니 그냥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며 살 뿐이다. 힘들 때 도움을 주는 사람은 어디선가 나타난다고 믿으며,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며 살 수 있도록 노력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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