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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그 길을 간 선배들이 있다

by SingleOn

처음 주재원 발령을 받았을 때 머릿속에 처음 든 생각은 엄마가 애를 데리고 가서 잘 된 경우가 있었나? 였다. 보통 혼자 부임을 하거나, 아니면 가족들이 다 같이 가게 된다. 문제는 가족의 구성이 대체로 일하는 아빠와 집안 일과 아이들을 돌 봐주는 엄마, 그리고 아이들로 구성된다는 거다. 물론 우리 아이는 중 3이라 혼자서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는 나이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미국 가면 아이 등하교부터 해서 엄마가 라이드를 정말 많이 해줘야 한다던데, 코 앞으로 닥칠 입시는 어떻게 할 것이며, 한국에서는 엄마 아빠가 집안일을 나 대신 다 해줬는데, 나는 어떻게 하지? 뭐.. 이런 생각과 두려움들이 너무 많았다.


그때 생각났던 게 예전 직장 선배였다. 그 언니도 딱 아들이 원재만 할 때 중국으로 주재원 발령을 받아 나갔던 게 생각났다. 살다 보면 ‘아, 내가 처음이 아니구나..’라는 생각만으로 위안이 되고 안도감이 느껴질 때가 있다. 특히 직장 내에서 일이라는 것은 더 그런 거 같다.


첫 회사에서 임신을 했을 때, 나보다 2년 먼저 임신한 언니가 있었다. 신생회사를 다니던 때라, 그 언니가 임신한 게 회사에서는 첫 임산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회사에 임산부가 생기자 여성 휴게실이 생겼고, 그 휴게실은 나중에 모유수유실로 활용되기도 했다. 나도 원재를 임신하고 출산 후 복직하면서까지 그 시설을 잘 활용했다.


아이 출산 후, 컨설팅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같이 일하던 PM(Project Manager)이 나를 불편해하던 기억이 아직도 있다. “이 일은애 엄마랑은 잘 안 맞는데… (그러면 날 뽑지를 말든가).”, “애 엄마랑 일해보는 게 처음이라서 어떻게 대해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진심 어처구니가 없네, 너는 하늘에서 태어났냐)”


대기업으로 이직했을 때는 “아, 여기는 직무 특성상 여자 직원은 뽑지 않았었는데요…” 이직 한 회사에서 처음 팀장이 되었을 때는 “다른 사람들의 우려가 있었지만…”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20여 년의 커리어 중, 17년을 넘게 애 엄마로 지내면서, 늘, 여자라서, 애 엄마라 못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안 된다는 강박이 내게 알게 모르게 있었는지 모른다. 나의 예민한 성격 탓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진짜 그 모든 것이 나의 예민함으로 치부될 수 있을까?


그럴 때마다 나에게 힘을 준 건 먼저 그 길을 걸어 준 선배들이다. 이제 나이가 40 중반이 넘어가니, 사실 회사에서 여자 선배를 찾는 게 그렇게 쉽지가 않다. 그래도 고마운 건 항상 있다는 점이다.

나는 회사를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이혼을 했다고 굳이 말하지 않았었다. 그냥 저희 애는 초등학생이에요, 중학생이에요..라고 하면 당연히 남편도 있으리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런 오해(?)가 딱히 뭐 나쁠 것도 없었다. 나에 대한 불필요한 선입견을 갖지 않게 해 주고 쓸데없는 말을 덧붙이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내가 먼저 ‘아, 저는 싱글맘이에요’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죄지은 것도 아니고, 뭐 이젠 그게 그렇게 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이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어야 진짜 아무렇지 않은 일이 되기도 하니까. 내가 그렇듯, 먼저 그 길을 간 선배들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로 힘이 되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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