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주재원으로 나올 경우, 집을 구하는 동안은 호텔 등임시 거처에서 지내게 된다. 그런데 나는 한 달 전 출장으로 이곳에 오면서 아파트를 미리 계약해 놓은 덕분에 첫날부터 앞으로 쭉 지내게 될 아파트에서 잘 수 있게 되었다.
아이를 데리고 단 둘이 오는데, 호텔 좁은 방에서 그 많은 짐을 펼쳐 놓으며 어수선하게 지낼 것을 생각하니, 그냥 한 달치 월세를 미리 내놓더라도 이 편이 낫겠다 싶었다. 출근도 해야 하는데, 중간중간 아이의 함께 이곳저곳 집을 알아보러 다니며 걱정하고 근심하고 낙담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싫었다. 돈은 들었지만 공항에 입국해서 아파트 키를 받아 드니 정말 잘 한 결정이었다고 나 스스로를 칭찬해 줬다. 세상의 많은 근심과 걱정 중,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가장 많고 쉽다는 말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 사실 이 말은 대학교 때 만났던 남자 친구가 해 준 말인데, 20년이 훌쩍 넘도록 살면서 힘들 때마다 떠올리게 된다. 19, 20살 남짓이던 그 아이는 어떻게 그 나이에 그런 말을 했을까. 물론 돈을 쓰는 일 또한 쉽지는 않고 그 돈 때문에 많은 사건 사고가 나는 것도 사실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돈보다 중요한 것들이 더 많다는 것도 알게 되는 것 같다.
143kg의 짐에는 청소도구를 포함, 베개, 이불, 잠옷, 그리고 따님의 인형, 엄마가 만들어 준 쿠션 등도 있었다. 첫날 낯선 곳에서 너무 휑하게 자고 싶지 않아서 굳이 담아 오지 않아도 될 인형까지 바리바리 챙겨 왔다.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보고 싶을 것 같다고 매일 울던 따님을 위해 가족사진도 출력해서 액자에 넣어 챙겨 왔다. 혹시 집 안이 깜깜할까 봐 스탠드까지 여행가방에 넣어 온 나였다..
덕분에 첫날이지만, 원재가 기분이 괜찮아 보였다. 책상에 앉아 한국에서 잔뜩 챙겨 온 문구류로 일기를 쓰고,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보내 줄 웃으며 찍었다. 앞으로 정착해 나가며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 같이 느껴지는 나는, 계속 가슴이 쿵쾅쿵쾅 뛰고, 도저히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내가 불안해하고 힘들어하면, 애한테도 이 기분이 전달될 텐데.. 하는 또 다른 걱정으로 애써 억지 웃음만 계속 짓고 있었다. 괜찮은 척, 씩씩한 척..
방은 2개였지만 이불은 같은 방에 나란히 깔았다. 혼자 자고 싶지 않았다. 바닥에 이불을 나란히 깔고 누워서 잠을 청해 보지만, 쉽사리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내일은 회사 가서 뭐부터 해야 하지, Social Security Number신청하려면 어디로 가야 하더라, 애 학교 등록하려 학교도 가야 하는데, 은행 계좌도 만들어야 하는데, 운전면허 따려면 뭐부터 준비해야 하지, 차도 사야 하는데 어디 가서 어떻게 알아봐야 하지… 이런 걸 다 어떻게 영어로 말하면서 알아듣고 처리하지… 머릿속에는 온통 앞으로 해야 할 일들과 걱정들만으로 가득했다. 또 심장이 쿵쾅쿵쾅 옆 사람한테 들릴 정도로 뛰기 시작했다. 그래도 걱정할 엄마, 아빠를 위해, 해맑아 보이는 따님의 사진을 찍어 보내며, 우리 걱정은 하지 말라고 안심시켜 드렸다.
원래 잘 때 누가 옆에 있는 걸 싫어하는데, 오늘은 내가 먼저 원재 옆에 찰싹 붙어 손을 잡아 보았다. 원재도 당연히 느껴졌을 것이다. 이 엄마가 안 하던 짓 하네.. 그렇게 생각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너와 이곳에서 잘 적응하며 살아야 하는데, 지금 내가 이 곳에서 마음으로 의지할 사람이 너밖에 없다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