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을 위한 고통
초겨울 주말 오후.
신입사원 연수 때 받은 초록색 운동복을 입고 슬리퍼를 끌고 점심을 먹으러 나선다.
자취방 옆 조그만 중국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는다.
맛으로 음식을 먹기보다 그저 한 끼를 때운다는 것이 적절한 표현이다.
식당 주변 목재소에서 '윙~~' 나무를 자르는 기계음이 들렸다.
그 소리는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다.
짜장면과 초록색 운동복, 그리고 '윙~'하는 목재소 기계음.
모두 연결되어 있다.
냄새도 기억을 담지만, 소리도 기억을 담는 기능이 있다.
특별할 것도 없는 그 기계음이 3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기억 속에 왜 남아 있는지 의문이다.
20대 청춘의 깊고 깊은 공허함을 채운 것이 그 소리가 아닐지.
지금은 재개발로 완전히 탈바꿈했지만 1990년대 오르막길 아현동은 눈이 오면 엉금엉금 기어 다니던 허름한 골목이 이어진 그런 동네였다.
다주택이 즐비한 아현동 주택가 오르막길 옆 조그만 중국집에서 혼자 짜장면을 먹으며 타향살이의 허기를 채우던 시절이었다.
서울로 올라와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2~3년 지났을 즈음이었다.
마음이 공허했다.
인생이 어디를 향해 가는지 몰라 불안했다.
군대에서 불어난 체중이, 제대 후 복학하고 직장을 구해 서울로 상경하면서 빠져 57킬로그램 수준에 머물고 있었다. 그저 젊은 혈기 하나로 버티며 힘겹게 사회생활을 시작한 터였다.
한 겨울 출근길
갈색 바바리코트 깃을 바짝 세우고 몸을 웅크리며 지하철을 타러 종종걸음을 옮긴다.
대방역에서 내려 여의도로 들어가는 다리 위에 출근하는 사람들 속에 나도 같이 걸음을 옮기고 있다.
뼛속 깊이 스며드는 추위를 헤집고 빠른 걸음으로 출근한다.
삶을 열심히 산다고 살고 있었지만 너무 추웠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1990년대 초 어느 겨울 신입사원 시절 장면들이다.
마음이 공허했다.
그 공허함의 원천은 미래에 대한 불안이었으리라.
가진 것 없이 시작한 타향살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떻게 가야 할지 모르는 20대 청춘의 공허함은 늘 옆에 붙어 따라다녔다.
불안함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몰랐다.
아마 그때부터 서서히 깨달았던 듯하다.
삶은 오롯이 혼자 헤쳐나가야 하는 고독한 여정이라는 속성을 깨닫고 있던 중이었다.
30년이 지난 2024년 연말
지인들과 연말 모임이 있었다.
법적 정년퇴직 나이를 두어해 앞두고 중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이 시대의 가장들이다.
'끼인 세대'로써 처한 현실을 서로 공유하면서 서로의 어려움과 아픔을 공감하고 '그렇지!', '맞아'라는 추임새를 넣어가며 서로 등을 토닥여주는 모임이었다.
서로 위로하는 자리지만, 자녀에 대한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대부분 20대인 아들, 딸을 자녀로 두고 있는 이 시대 '끼인 세대'들이다.
위로는 노부모님을 모시는 일, 아래로는 자녀들이 제대로 이 사회에서 독립하도록 지원을 지속해야 하는 위아래로 끼인 세대인 것은 분명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대화는 20대인 이 시대 아들들 이야기였다.
2024년을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의 아들들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에 공감했다.
경제 성장은 정체기에 접어들었기에 아들들이 꿈을 펼칠 기회는 줄어들었으며, 부모세대보다 가난한 세대라는 정의가 따라다닌다.
내가 20대 시절이었던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은 사회 전반적으로 고도성장의 시기였으며, 성장을 위해 달려가느라 바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 위한 작업으로 기회는 널려 있었다.
21세기가 시작된 지금, 우리나라 경제 성장은 정체기에 들어섰고, 젊은 우리 아들들이 자신의 삶의 가치를 찾을 기회가 너무 적다는데 모두 공감했다.
고도성장의 시기를 살았던 우리 세대는 자아실현까지는 아니더라도 부모세대보다 좀 더 나은 삶을 성취할 기회가 많았다. 그렇다고 해서, 삶의 고뇌, 20대의 고뇌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대기업이라지만 당시 받는 월급이 50만 원 수준이었다.
그 월급으로 저축을 하고 생활하다 보면 매월 빠듯한 수준이었고, 이 일을 얼마나 오랫동안 해야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을지 매일매일이 불안의 연속이었다.
물려받을 자산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서울로 올라와 오롯이 홀로서기를 시작해야 했다.
허허벌판에 홀로 내던져진 느낌이 바로 그때의 마음이었다.
누가 나를 허허벌판에 내던졌다기보다는, 스스로 더 큰 세상을 향해 서울로 올라왔고, 어찌 되었던 한번 부딪혀보자는 마음이 컸다.
그러한 환경에 내던져진 나의 20대를 그토록 불안하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나
지금 생각해 보면 생명 유지를 위한, 생존을 위한 고뇌가 20대 방황의 원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처한 현실이 너무 곤궁하여 이를 탈출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뚜렷한 방안을 몰라 많이 불안했으리라.
그리고 성인으로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기르고 편안한 노후를 맞는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생을 살아낼 수 있을지 불안했으리라.
지금 젊은 세대가 직면한 현실과 그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입사 후 일 이년은 너무 힘들었다.
그렇게 힘겨워하던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같은 사무실 선배와 하루가 멀다 하고 술로 지새웠다.
삶에 대한 끝없는 대화를 주고받았던 것 같다.
그 긴 대화에도 불구하고 답은 찾지 못했다.
강원도에서 고등학교를 수석 졸업하고, 서울 명문대 경영과를 졸업한 그 선배도 나와 다름없이 방황하는 20대를 보내고 있었다.
20대의 방황은 지연, 학벌과 상관없었다.
주어진 생을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가란 질문에 답도 없고,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가야 할지 모르는 두 청춘의 밤은 매일 그렇게 술과 함께 깊어갔다.
무엇이 20대의 청춘을 불안하게 만드는지 제대로 모르는 체...
3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때를 돌아본다.
불안해하거나 걱정할 필요 없이 주어진 삶을 그저 살아내면 될 것을 하릴없이 스스로를 너무 괴롭히지 않았나 하는 후회가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러한 고뇌, 불안, 방황은 나의 삶의 성장으로 이끌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그렇게 20대는 지금 50대의 나와 아주 가깝게 연결되어 있다.
30년의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다는 느낌이다.
우리가 느끼는 시간은 시각적으로 비치는 외부 사물들이 변하여 느끼는 감각일 뿐, 그 사물들의 내면에 깃든 실상은 변하지 않는 본질적인 무엇이 있지 않을까.
그렇게 1990년대 초 나의 20대와 2024년 지금 50대는 많이 닮아 있다.
어느 주말 오전
가느다란 햇볕이 반지하방 작은 창문을 통해 희미하게 들어온다.
좁은 방안에 이리저리 널린 옷과 책들, 그리고 이불이 한 구석에 쌓여 있고, 14인치 브라운관 텔레비전이 조그만 난쟁이 책상 위에 앉아 있다.
가재도구라 할 것도 없는, 20대 두 청춘이 머물렀던 1990년대 초반 서울 아현동 오르막길 옆 반지하 자취방 한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