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지탱해 주는 것들
블로그도 그렇고 글쓰기도 그렇고 시작만 해놓고 차일피일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머뭇거리다 시간만 보냈다. 그러기를 어언 10여 년도 더 된듯하다.
이러다 죽는 날까지 글쓰기 제대로 한번 해보지 못하고 가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을 불현듯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냥 쓰기로 마음먹었다.
오랫동안 열지 않았던 브런치를 열고 지나온 시간들을 하나하나 열어보며 나의 삶을 지탱했던 것들에 대해서 글을 쓰기로 했다.
일 년 전 겨울.
오랜 시간 타지에서 일하며, 가족과 함께 험난한 환경을 헤치고 해외 현지에서 살며 앞만 보고 달린 시간들을 뒤로하고 제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20년 전 당초 2년 계획을 하고 떠났다. 그때 내가 있었던 이곳에 다시 돌아와 마주한 공간은 그리 낯설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마냥 익숙한 것만은 아니었다.
아마 내가 여기를 떠날 때 이곳을 싫어하며 떠났기에 이 장소, 이 공간도 그것을 알고 있는 듯 나를 썩 반기는 눈치가 아닌 것 같았다.
당시 결혼하고 회사에서 위치가 늘 불안하던 터라, 회사가 기회를 줄 때 잠시 2년 나가 살기로 작정하고 떠났다.
계획했던 2년의 시간이 20년이 될 줄은 미처 몰랐고, 그 긴 시간 동안 이 공간과 내가 멀어진 것도 이유라면 이유겠지.
이제는 안다.
이 모든 생각들은 다 내 안에서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고정된 눈이 있어 그것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든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 안에서 세상을 보는 눈이 나를 지탱해 주었고 지금까지 나를 살게 한 힘, 원동력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한편으로 그것이 번뇌와 상념의 바다를 방황하는 고통도 주지만, 힘이 되어준 것은 분명하다.
세상은 그저 그대로 있을 뿐 내가 세상을 어떻게 보고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쯤은 알 나이가 되었다.
그렇다 해도 앞으로 살아갈 날들 동안 나를 지탱해 줄 그것을 부지런히 찾아 나서야 한다.
지금까지 나를 지탱해 주었던 것 중 어떤 것은 아직도 유효하고 어떤 것은 유효기간이 지난 것도 있다.
해외 타지의 야전에서 한창 힘을 내어 일할 때 나에게 힘을 주었던 책과 글들이 있다.
힘든 시간을 견뎌내게 해 주었던 책들, 글들 그리고 생각들.
그것들이 나의 신념이 되고, 가치관이 되고, 믿음이 되어 나를 지탱해 주었다.
귀국하면서 많은 책을 버리고 나에게 힘이 되어 주었던 책들은 귀국하는 짐에 같이 부쳤다.
얼마 전 그 책을 꺼내 읽었다.
다시 돌아온 이곳에 적응하는 동안 다시 힘을 얻기 위해 책을 읽었다.
나에게 힘이 되었던 메모와 밑줄 친 글들을 읽으며 또 다른 낯섦이 느껴졌다. 생소했다.
유효 기간이 지난 것이었다.
그러다 문득 나에게는 유효기간이 지났지만 누군가에게는 아직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삶을 지탱하도록 힘이 되어 주었던 것들을 다시 불러내 나누고자 한다.
다시 살아나 어느 누군가에게 힘이 될 것이라 믿는다.
이 작업은 앞으로 나에게 남은 삶을 지탱해 줄 것을 찾아 나서는 또 다른 소중한 여정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