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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주.부 자아성찰기4

- 작아진 다운 패딩 점퍼

by cream

다이어트에 성공해서 그때의 그 몸에 맞춰 샀던 겨울 패딩점퍼가 있다.

한겨울 눈밭에 굴러도 춥지 않을 것 같은 다운패딩.

다만 이게 겉으로는 넉넉해 보이지만 안으로 구스 다운 빵빵 볼록볼록한 슬림핏 디자인이어서 한겨울 옷이지만 이너를 두껍게 입으면 안 되는 참 아이러니한 한파용 패딩점퍼다.

다이어트에 성공해서 뿌듯하게 샀던 그 패딩은 그다음 해에는 옷장에 그대로 걸려 있었고, 샌드위치 가게로 한참 출근하던 한파가 몰아치던 재작년 겨울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다시 꺼낸 패딩은 그사이 불어난 내 몸을 감싸느라 좀 버거워 보였다. 이제는 이너를 더 얇게 입어야 팔이 들어가게 되었고 훕~하고 숨을 한껏 참아야 지퍼를 채울 수가 있었다.

매우 추울 것이라고 뉴스마다 난리가 난 어느 날, 난 샌드위치 가게로 10시까지 출근을 했다. 아이들이 차례로 롱패딩 숏패딩을 사야 하는 순서가 돌아왔어서 언제나처럼 돈을 쓸 내 순번은 아직도 무한 대기였고 그 해에는 결국 오질 않았다.

그런 이유로 난 조금 끼이는 그 패딩을 다시금 꺼내 입었다. 지퍼를 올리려면 더 얇게 입어야 하고.. 지퍼를 올리면 온몸에 보정 속옷을 입은 것 같이 갑갑했으며 궁둥이 부분은 걸을 때마다 씰룩씰룩 난리였다. 하지만 두꺼운 패딩 입음 다 그렇지 뭐~이렇게 추워서 다 정신이 혼미한데 누가 내 궁둥이를 보겠어라고 생각하며 꾸역꾸역 입고 다녔다.


이 추위에 나가서 이렇게 샌드위치를 열심히 만드는데 왜 난 패딩하나 살 여유가 없을까.

한파용 패딩이지만 두껍게 입지 못하는 패딩만큼이나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한파가 몰아친다는 뉴스가 있을 때마다 내가 가진 옷 중 그만큼 따뜻한 옷이 없으니 꺼내 입긴 하면서도 입을 때마다 마음이 우울했다.

그 패딩을 입고 샌드위치를 만들러 나가는 그 시간은 더 착잡했다.

끼이는 패딩의 팔한쪽 껴면서 살찐 내가 싫었고 다른 팔 한쪽 껴넣으면서 능력 없는 내가 너무 싫었었다. 마지막으로 지퍼를 슉 올리면 이러한 모든 싫음을 내 안에 그대로 몽땅 다 가둔 채 그 우울함을 안고 한걸음 한걸음 걷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일단 일터에 도착하면 우울함이 가득 찬 그 패딩 따위 생각할 겨를 없이 난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배달 나가는 샌드위치 만들랴, 수프 담으랴, 중간중간 커피 내리고 과일 스무디 갈고, 샐러드 만들고 떨어진 비품 채우고 설거지하고 이렇게 일하다 보면 시간은 금방 간다.




그 가게에는 나 말고 두 명의 아르바이트생이 더 있었다. 요일별로 다르게 있으니 딱히 만날 일은 없으나 처음 며칠 그분들 일할 때 나와 일을 배워서 얼굴이나 나이대 풍기는 느낌 정도는 알고 있는 상태였다.

한분은 나보다 나이가 위였고 한분은 조금 아래였다.

사는 것은 여유롭지만 무료한 일상이 싫어 일을 하시는 분, 싱글로 살면서 내 인생을 즐기면서 어디에 얽매이지 않고 쓸 만큼만 벌었다 쉬었다 하시는 분. 그분들의 실제 경제적 속 사정이야 내가 어찌 알겠냐만은 일단 들은 바로는 그러했다.


싱글의 젊은 사장님이 나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언닌 왜 아르바이트하기 시작했어요?

난 우리 가게에서 일하는 분들이 다들 생계로 일하지 않아서 좋아요.

모두들 여유로워 보여 좋거든요.

어,, 난 아닌데.. 전 정말 돈이 필요해서 하는 거라서요.

네? 언니도 생계는 아니신 거 같은데..

물론 제가 가장은 아니죠. 근데 남편 혼자 벌어서는 답도 없고

생활비가 부족해서 저도 벌어야 해요. 난 돈 있음 그냥 편히 쓰고 살고 싶어요.

언니 너무 솔직한데요~ 안 그래 보이시는데..

솔직은요,, 사실이니까요.

안 그래 보인다고요? 그럼 내가 그런 척을 했나 봐요.


그런 건가.. 솔직했나..

그동안 난 쪼들리지 않은 척, 여유 있는 척. 어디 가서 없어 보이기 싫어서 한껏 여유로운 척을 많이 하고 지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니.. 그랬었다.

여유로워 보이고 싶은 척! 도 있었지만, 그것과는 좀 다른 없어서 오히려 더 대 놓고 부러워~! 근데 뭐 어쩌라고? 와 같은 난 아무렇지 않아의 여유로운 척도 많았다.

(아직도 멤버가 다 부자인 모임에 가면 그 아무렇지도 않아의 여유로운 척이 마구 뿜어져 나온다)

하지만 내 맘이 진짜로 여유롭지 않으면 내가 느끼는 그 초라함은 배가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언제인가부터는 그 알량한 여유로운 척을 좀 버리고 싶었다.

그러려면 내가 스스로 경제적 능력이 정말로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한 입장에서 남편이 능력 있으면 좋고, 시댁이 부자라도 좋고, 친정이 부자면 금상첨화 바랄 게 없지만 젤 좋은 건 역시나 내 능력이 좋아서 내가 내 능력으로 맘껏 진정한 여유로움을 느끼며 사는 것이 제일 베스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난 돈을 벌고 싶다.

(물론 지금이야 부족한 생활비를 보태느라 벌긴 하지만 말이다)

없으면 없다고 얘기하면서 나 돈 벌어야 해요라고 말하는 솔직함이 있어야, 약간의 절박함이 보여야 사람들은 나에게 뭐가 되었든 기회를 좀 더 주는 듯하다.

돈을 벌면, 직업이 있으면 있는 척과 없는 현실이 대치하고 있는 그 상황이 평화롭게 해결이 될 것만 같았다.

그러면 나 스스로 더 초라해지는 일도 더 이상 없을 것 같았다.

없으면 없다고 솔직히 말하는 게 나에게 더 많은 길을 열어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그 해 겨울이었다.

이 모든 것을 경제적으로 돈과 연관을 시키는 것 같아 서글프지만 그때의 나는 그랬고 지금의 나도 그렇다.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는 이 말을 너무도 철석같이 믿고 살고 있지만, 그에 반해 모든 걸 돈과 연관 지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사는 내가 미성숙한 인간인가라는 생각도 든다.


남들은 대학생 때 시작해 보는 아르바이트를 40 중반이 넘은 이 나이에 처음 시작하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느껴본다.

비록 커피를 내리고 샌드위치를 만드는 단순한 아르바이트지만 생각보다 내가 능력이 있다는 희망을 보기도 하고 반대로 이 나이 먹도록 뭘 하고 살았나 싶기도 하고 잘 크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내가 또 성실하게 살았구나 싶기도 한 복잡 미묘한 과거의 나, 현재의 나이다.





한참 감정의 롤러코스트를 타고 있을 때 난 친구의 문자 한 통을 받게 되었고, 그 문자를 통해 난 또 다른 시작의 출발선에 서게 되었다.

45세 무엇인가를 시작하기에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인생을 안다기에는 부족하고 모른다고 하기에는 차고 넘치는 그 애매한 40대의 혼란스러움을 느끼면서 난 그간의 일과는 전혀 다른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전혀 다른 일을 통해 나의 능력치를 좀 더 알고 싶었고, 무엇보다 돈을 좀 더 벌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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