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32 댓글 2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알.바.주.부 자아성찰기 3

-일을 그만둔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by cream Jan 11. 2025
아래로

단순 노무. 의류 포장, 불량 검수

 월~금 /1개월 이상(장기우대)/ 9시~14시 30분(협의)

 시급 9860원(주휴수당 제외)

 나이, 경력 무관, 주부 가능

                  .

                  .  

                  .

 수많은 공고들 속에서 위치가 집 앞인 인터넷 쇼핑몰의 포장 아르바이트 공고가 눈에 딱 들어왔다.

 (아르바이트 사이트를 검색하는 것은 이제 일상이 되었고, 자기 전에 밥 먹을 때 수시로 보게 되니 이게 나의 취미 생활인 것 같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

이것저것 머릿속 계산기를 두드려보고 주저 없이 바로 지원을 했다.

 입다 보니 모나미가 되어버린 검정 슬랙스에 반팔셔츠를 스팀다리미로 잘 다려 입고, 정말 짧은 면접을 보았고 난 다음날부터 바로 일을 시작하였다.


 - 기승전결을 무시하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그곳에서 딱 일주일 일을 하였다.


 의류를 포장하고, 불량 검수하고,  행거에 비닐 씌워 대우받으며 들어오는 재킷들을 꺼내서 스팀 다림질을 했다. 알아서 해결하는 1시간의 점심시간 후 단 몇 초의 지체도 없이 바로 반품된 의류 정리, 재포장을 한다.

 그렇게 끝이 안 날 것 같았던 일이 끝나면 내 주변을  정말 빠른 속도로 사사삭 청소하고 정리하고 누구보다 빠르게 각자의 소지품을 챙겨 나오면 퇴근이다.  


하나 가득 박스 몇 개를 해결하면 그다음 줄 지어 있는 저 박스, 그걸 다 해결하면 또 줄 서 있는 다음 대 봉투 그다음에는 갑자기 등장하는 행거들, 그다음 그다음 그다음. 유후~끝나기는 하는 건가?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

배정받은 자리에서 모든 일은 서서 해야 했기 때문에 다리는 퉁퉁 붓고 어깨에는 곰 한 마리가 앉아 있었고 목에는 큰 돌덩이가 얹어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일에 놀라며 일을 하고 있었다.

그때 20대 초중반의 앳된 직원들이 순번을 정하듯 차례대로 나와 이모님들! 이거 어느 파트에서 검수하셨어요? 이모님들! 이거 누가 접었어요! 크기가 안 맞잖아요! 이모님들! 구역 좀 잘 보고 놓아주세요! 외쳐댔다.


이모님들 이모님들 이모님들!!!!!! 이! 모! 님! 들!

나이 40 중반, 이젠 내가 이모님들이라 불릴 나이가 된 건가? 낯설고 기분이 나쁘다.

그리고 내가 언제 저렇게 다 큰 조카들을 둔 적이 있었던가?


 그 조카들이 이모님을 찾고 다다다다 지적을 했다. 특히나 "이거 포장 새로 오신 이모님이 했어요? "라고 날 콕 집어 찾아 댈 때면 내 짝꿍으로 지정된 맞은편 선배님은 ( 적당히 지칭할 호칭이 딱히 없으니) 날 보며 자꾸 찡긋 윙크를 했다. 아마도 그냥 죄송합니다 하고 그냥 넘어가라는 말인 듯했다.

 "저 옷 내가 포장한 게 아닌데.. 그냥 죄송합니다 하라고요? 한번 보면 절대 잊지 않을 저런 건 누가 주문했을까 싶은 저 난해한 핑크 망사 나시를 난 오늘 포장한 적이 없다고요. "라고  온 얼굴과 으쓱거리는 어깨로 나의 억울함을 티 냈지만 내 앞 짝꿍은 계속 나에게 윙크만 해댔다.  

 갑자기 그들의 이모님이 되어 이런저런 지적을 받는 일이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내가 실수 한일이면 더는 실수 하지 않도록 더욱 정신 차려 일을 하면 그만일 거고 내가 한 게 아니면 그냥 대꾸를 말자 하고 생각했었다.

  일주일을 일하는 동안 조카들은 수시로 본인들의 사무실을 나와 그렇게도 이모님들을 찾아댔다.

  

일주일을 그렇게 한자리에 서서 몇 시간을 일 하다 보니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 버리는 느낌이었다.

한국인의 소울 치료제 파스로 어깨, 무릎, 손목을 도배하던 어느 날 난 우리 집 화장실을 나오다가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허리가 움직이질 않았다. 정말 반뼘도 안 되는 화장실 문턱이 얼마나 높게 보이던지.

 핸드폰도 없고 혼자 집에 있던 난 에베레스트보다 더 높게 느껴졌던 그 화장실 문턱을 눈물 콧물 다 짜내며 겨우 겨우 기어 나와 전화를 했다.

그리고 그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다.

 내가 바라던 100만 원을 주는 그 아르바이트는 그렇게 끝이 나버렸다.




 먼지 가득 나에게 지정된 그 작은 공간에 몇 시간을 서서 반복적인 단순 노동을 하고,

물량을 나눠하니 내가 좀 늦게 하면 누군가가 그 일을 더 해야 하고 퇴근 시간도 늦어지니

화장실 가는 것도 은근 눈치를 봐야 하고,

밥 먹을 때나 뒤에 접어진 의자를 펴고 앉을 수 있으며,

(난 집이 앞이라 점심시간에는 그냥 집에 가서 밥 먹고 누워 있었다)

묘하게 느껴지는 기존 포장 아줌마들의  텃세를 느끼며,

따로 있는 사무실 속 직원과 포장 이모님들 사이에 웃기지도 않은 상하 관계를 느끼며,

세상에는 정말 쉬운 일은 없구나를 느꼈다.

백만 원 벌기가 정말 이렇게나 힘이 드는구나..

( 일 자체를 비하할 생각도 그런 생각 자체를 가진 적도 없지만 ) 그때 난 이 나이 먹도록 이뤄 놓은 것 하나 없이 여기서 다리가 아파도 앉지도 못하고 옷을 접고 있을까란 생각을 계속했었다.

그 일주일이 그곳이 날 더 쪼그라들게 만드는 공간으로 느껴졌다. 이럴라고 우리 부모님이 날 공부 시키진 않으셨을 텐데라는 너무도 상투적인 대사를 혼잣말로 구시렁거리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의류 쇼핑몰이다 보니 옷을 보는 살짝의 재미는 있었다. 물론 40 대 중반 아줌마가 입을 옷들은 거의 없었다. 어떤 옷들의 구멍은 당최 신체의 어떤 부분을 넣어야 입어지는 건지 속옷인지 겉옷인지 상의인지 하의인지 정체성이 불분명해 보이는 난해한 옷들도 많았지만.




내 앞자리의 짝꿍 선배님은 50 중후반의 너무도 고운 외모를 지니신 분이셨다. 그리고 상냥하고 친절하셨다.

그분은 나에게 일을 정말 잘 골랐다고 집도 가깝고 최고라고 하셨다. 최고라고요? 어떤 면에서요? 도대체 뭐가요? 되물어보고 싶었지만 실제는 예쁘게 웃으며 아 그래요~맞아요 집도 가깝고 좋아요.라고 얘기를 했다.

가식적이었다. 너무도 가식적이었지만 일단 이것도 나름 사회생활이니 날 서게 얘기하지 말자.. 드러나 보자.


애들 학교 가 있을 시간에 괜히 동네 엄마들이랑 커피 마시고 수다 떨며 돈 쓰고 다니지 말라셨다. 다 부질없이 돈낭비라고 했다. 그 시간에 이렇게 나와서 일을 하면  돈도 벌고 얼마나 좋냐고 오히려 잡생각 안 나고 머리 식히는 데는 이런 단순 노동이 최고라고 했다.

여기 나와 일하는 이유가 각자 다 다르지만 어쨌거나 내가 내 손으로 일하고 돈 벌고 너무 뿌듯하고 좋지 않냐고 계속 잘 다니라고.

하는 거보니 손도 빠르고 일머리가 있어 보이니 잘 다녀보라고.

직원들이 뭐라 하면 그냥 네~신경 써서 할게요.라고 얘기하면 그만이라고.

본인도 자녀가 성인이 되고 용돈이나 좀 벌자고 나온 게 벌써 7년째라고 하셨다.

 그땐 내 몸이 내 마음이 지옥 같아서 그 말들이 내 귀에서 튕겨나가고 흘려나가기만 했었다. 일을 그만두고 며칠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곰곰이 곱씹어 보니 그 말이 딱 맞다.

 그렇구나. 내가 지원하고, 면접보고, 택해놓고 뭐 그리 생각이 많았을까.

어떤 일을 한들 어려운 점이 없을까.  꼴랑 일주일 일하고서 초라하네 비참하네 인생의 실패자라고 생각하며 혼자 속을 썩였을까.

어쨌거나 이력서 들고 면접도 봤고 그 자리에 뽑힌 거잖아.


일을 그만두고 며칠이 지난 다음, (쪼그라들다 못해 먼지 같다 생각하며 며칠을 보낸 다음 ) 그 상황을 나 자신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가 있었다.

그냥 수많은 일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 일이 그곳의 분위기가 그냥 나와는 좀 맞지 않았다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존재가치까지 들먹이며  스스로 날 더 비참하게 날 더 초라하게 만들면서 부들거렸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몸은 힘든데 새파랗게 어린 직원이 자꾸 날 무시하는 것 같아서 자존심이 상했었다. 그러다 보니 이러고 있는 내가 참 초라하다고 느껴져서 내 맘이 더 힘들었다는 걸 깨달았다.

 기계적인 단순 노동을 하면서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생각이 자꾸 드니 하는 내내 전혀 즐겁지가 않았던 것이다.

이 일이 정말 최선인가라는 생각을 나에게 더 맞는 일을 찾자는 생각으로 뻗어 나갔어야 했는데 그때의 쪼그라들었던 나는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나 보다.  


 분명 100만 원만 넘으면 감지덕지다~ 오케이~를 외쳐놓고 그만두게 되니 날 스스로 초라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일을 때려치운 그럴듯한 명분을 만들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과연 그때 내가 그만둔 진짜 이유는 허리였을까 나의 좁고 작은 마음이었을까?

이전 02화 알.바.주.부 자아성찰기2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