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그만둔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단순 노무. 의류 포장, 불량 검수
월~금 /1개월 이상(장기우대)/ 9시~14시 30분(협의)
시급 9860원(주휴수당 제외)
나이, 경력 무관, 주부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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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공고들 속에서 위치가 집 앞인 인터넷 쇼핑몰의 포장 아르바이트 공고가 눈에 딱 들어왔다.
(아르바이트 사이트를 검색하는 것은 이제 일상이 되었고, 자기 전에 밥 먹을 때 수시로 보게 되니 이게 나의 취미 생활인 것 같다는 착각마저 들었다. )
이것저것 머릿속 계산기를 두드려보고 주저 없이 바로 지원을 했다.
입다 보니 모나미가 되어버린 검정 슬랙스에 반팔셔츠를 스팀다리미로 잘 다려 입고, 정말 짧은 면접을 보았고 난 다음날부터 바로 일을 시작하였다.
- 기승전결을 무시하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그곳에서 딱 일주일 일을 하였다.
의류를 포장하고, 불량 검수하고, 행거에 비닐 씌워 대우받으며 들어오는 재킷들을 꺼내서 스팀 다림질을 했다. 알아서 해결하는 1시간의 점심시간 후 단 몇 초의 지체도 없이 바로 반품된 의류 정리, 재포장을 한다.
그렇게 끝이 안 날 것 같았던 일이 끝나면 내 주변을 정말 빠른 속도로 사사삭 청소하고 정리하고 누구보다 빠르게 각자의 소지품을 챙겨 나오면 퇴근이다.
하나 가득 박스 몇 개를 해결하면 그다음 줄 지어 있는 저 박스, 그걸 다 해결하면 또 줄 서 있는 다음 대 봉투 그다음에는 갑자기 등장하는 행거들, 그다음 그다음 그다음. 유후~끝나기는 하는 건가?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
배정받은 자리에서 모든 일은 서서 해야 했기 때문에 다리는 퉁퉁 붓고 어깨에는 곰 한 마리가 앉아 있었고 목에는 큰 돌덩이가 얹어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일에 놀라며 일을 하고 있었다.
그때 20대 초중반의 앳된 직원들이 순번을 정하듯 차례대로 나와 이모님들! 이거 어느 파트에서 검수하셨어요? 이모님들! 이거 누가 접었어요! 크기가 안 맞잖아요! 이모님들! 구역 좀 잘 보고 놓아주세요! 외쳐댔다.
이모님들 이모님들 이모님들!!!!!! 이! 모! 님! 들!
나이 40 중반, 이젠 내가 이모님들이라 불릴 나이가 된 건가? 낯설고 기분이 나쁘다.
그리고 내가 언제 저렇게 다 큰 조카들을 둔 적이 있었던가?
그 조카들이 이모님을 찾고 다다다다 지적을 했다. 특히나 "이거 포장 새로 오신 이모님이 했어요? "라고 날 콕 집어 찾아 댈 때면 내 짝꿍으로 지정된 맞은편 선배님은 ( 적당히 지칭할 호칭이 딱히 없으니) 날 보며 자꾸 찡긋 윙크를 했다. 아마도 그냥 죄송합니다 하고 그냥 넘어가라는 말인 듯했다.
"저 옷 내가 포장한 게 아닌데.. 그냥 죄송합니다 하라고요? 한번 보면 절대 잊지 않을 저런 건 누가 주문했을까 싶은 저 난해한 핑크 망사 나시를 난 오늘 포장한 적이 없다고요. "라고 온 얼굴과 으쓱거리는 어깨로 나의 억울함을 티 냈지만 내 앞 짝꿍은 계속 나에게 윙크만 해댔다.
갑자기 그들의 이모님이 되어 이런저런 지적을 받는 일이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내가 실수 한일이면 더는 실수 하지 않도록 더욱 정신 차려 일을 하면 그만일 거고 내가 한 게 아니면 그냥 대꾸를 말자 하고 생각했었다.
일주일을 일하는 동안 조카들은 수시로 본인들의 사무실을 나와 그렇게도 이모님들을 찾아댔다.
일주일을 그렇게 한자리에 서서 몇 시간을 일 하다 보니 온몸이 딱딱하게 굳어 버리는 느낌이었다.
한국인의 소울 치료제 파스로 어깨, 무릎, 손목을 도배하던 어느 날 난 우리 집 화장실을 나오다가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허리가 움직이질 않았다. 정말 반뼘도 안 되는 화장실 문턱이 얼마나 높게 보이던지.
핸드폰도 없고 혼자 집에 있던 난 에베레스트보다 더 높게 느껴졌던 그 화장실 문턱을 눈물 콧물 다 짜내며 겨우 겨우 기어 나와 전화를 했다.
그리고 그 아르바이트를 그만두었다.
내가 바라던 100만 원을 주는 그 아르바이트는 그렇게 끝이 나버렸다.
먼지 가득 나에게 지정된 그 작은 공간에 몇 시간을 서서 반복적인 단순 노동을 하고,
물량을 나눠하니 내가 좀 늦게 하면 누군가가 그 일을 더 해야 하고 퇴근 시간도 늦어지니
화장실 가는 것도 은근 눈치를 봐야 하고,
밥 먹을 때나 뒤에 접어진 의자를 펴고 앉을 수 있으며,
(난 집이 앞이라 점심시간에는 그냥 집에 가서 밥 먹고 누워 있었다)
묘하게 느껴지는 기존 포장 아줌마들의 텃세를 느끼며,
따로 있는 사무실 속 직원과 포장 이모님들 사이에 웃기지도 않은 상하 관계를 느끼며,
세상에는 정말 쉬운 일은 없구나를 느꼈다.
백만 원 벌기가 정말 이렇게나 힘이 드는구나..
( 일 자체를 비하할 생각도 그런 생각 자체를 가진 적도 없지만 ) 그때 난 이 나이 먹도록 이뤄 놓은 것 하나 없이 여기서 다리가 아파도 앉지도 못하고 옷을 접고 있을까란 생각을 계속했었다.
그 일주일이 그곳이 날 더 쪼그라들게 만드는 공간으로 느껴졌다. 이럴라고 우리 부모님이 날 공부 시키진 않으셨을 텐데라는 너무도 상투적인 대사를 혼잣말로 구시렁거리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의류 쇼핑몰이다 보니 옷을 보는 살짝의 재미는 있었다. 물론 40 대 중반 아줌마가 입을 옷들은 거의 없었다. 어떤 옷들의 구멍은 당최 신체의 어떤 부분을 넣어야 입어지는 건지 속옷인지 겉옷인지 상의인지 하의인지 정체성이 불분명해 보이는 난해한 옷들도 많았지만.
내 앞자리의 짝꿍 선배님은 50 중후반의 너무도 고운 외모를 지니신 분이셨다. 그리고 상냥하고 친절하셨다.
그분은 나에게 일을 정말 잘 골랐다고 집도 가깝고 최고라고 하셨다. 최고라고요? 어떤 면에서요? 도대체 뭐가요? 되물어보고 싶었지만 실제는 예쁘게 웃으며 아 그래요~맞아요 집도 가깝고 좋아요.라고 얘기를 했다.
가식적이었다. 너무도 가식적이었지만 일단 이것도 나름 사회생활이니 날 서게 얘기하지 말자.. 드러나 보자.
애들 학교 가 있을 시간에 괜히 동네 엄마들이랑 커피 마시고 수다 떨며 돈 쓰고 다니지 말라셨다. 다 부질없이 돈낭비라고 했다. 그 시간에 이렇게 나와서 일을 하면 돈도 벌고 얼마나 좋냐고 오히려 잡생각 안 나고 머리 식히는 데는 이런 단순 노동이 최고라고 했다.
여기 나와 일하는 이유가 각자 다 다르지만 어쨌거나 내가 내 손으로 일하고 돈 벌고 너무 뿌듯하고 좋지 않냐고 계속 잘 다니라고.
하는 거보니 손도 빠르고 일머리가 있어 보이니 잘 다녀보라고.
직원들이 뭐라 하면 그냥 네~신경 써서 할게요.라고 얘기하면 그만이라고.
본인도 자녀가 성인이 되고 용돈이나 좀 벌자고 나온 게 벌써 7년째라고 하셨다.
그땐 내 몸이 내 마음이 지옥 같아서 그 말들이 내 귀에서 튕겨나가고 흘려나가기만 했었다. 일을 그만두고 며칠을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곰곰이 곱씹어 보니 그 말이 딱 맞다.
그렇구나. 내가 지원하고, 면접보고, 택해놓고 뭐 그리 생각이 많았을까.
어떤 일을 한들 어려운 점이 없을까. 꼴랑 일주일 일하고서 초라하네 비참하네 인생의 실패자라고 생각하며 혼자 속을 썩였을까.
어쨌거나 이력서 들고 면접도 봤고 그 자리에 뽑힌 거잖아.
일을 그만두고 며칠이 지난 다음, (쪼그라들다 못해 먼지 같다 생각하며 며칠을 보낸 다음 ) 그 상황을 나 자신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가 있었다.
그냥 수많은 일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 일이 그곳의 분위기가 그냥 나와는 좀 맞지 않았다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존재가치까지 들먹이며 스스로 날 더 비참하게 날 더 초라하게 만들면서 부들거렸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몸은 힘든데 새파랗게 어린 직원이 자꾸 날 무시하는 것 같아서 자존심이 상했었다. 그러다 보니 이러고 있는 내가 참 초라하다고 느껴져서 내 맘이 더 힘들었다는 걸 깨달았다.
기계적인 단순 노동을 하면서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생각이 자꾸 드니 하는 내내 전혀 즐겁지가 않았던 것이다.
이 일이 정말 최선인가라는 생각을 나에게 더 맞는 일을 찾자는 생각으로 뻗어 나갔어야 했는데 그때의 쪼그라들었던 나는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나 보다.
분명 100만 원만 넘으면 감지덕지다~ 오케이~를 외쳐놓고 그만두게 되니 날 스스로 초라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일을 때려치운 그럴듯한 명분을 만들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과연 그때 내가 그만둔 진짜 이유는 허리였을까 나의 좁고 작은 마음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