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존감 상승 & 하락 시소 타기
나는 슈퍼집딸이었다. 과자, 아이스크림, 컵라면 등등을 돈을 내지 않고 당당하게 그냥 집어다 먹을 수 있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부러움을 사던, 학교에 과자 한가득 챙겨 와 언제나 환영받던 과자갑질 파워 슈퍼집 딸.
어린 시절의 ##식품은 작은 가게였기 때문에 직원은 가게 주인인 부모님 두 분 뿐이었다. 그래서 우리 삼 남매는 어려서부터 엄마가 바쁘실 때 잠깐 가게도 보고, 진열을 도와드리며 손님맞이를 하였다.
초등학생 때부터 엄마가 바쁘실 때마다 쭈쭈바 하나 입에 물고, 딸기 우유 하나 쪽쪽 빨면서 가게를 보았었다. 그러다 이사를 가면서 ##식품이 직원도 있는 ###마트가 되었고 나도 성인이 되었다.
어려서부터 장사하시는 부모님을 보면서 난 성인이 되었다. 대학생 때는 친구들이 아르바이트하는 것처럼 난 우리 가게 일을 도와드렸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슈퍼에 오는 각양각색의 손님들을 상대하며 진상손님을 대하는 나름의 방법을 터득해 나갔다. 물론 그게 맞는 방법인지 아닌지 알 수는 없었다. 내가 뭘 어떻게 하든 그 마무리는 항상 슈퍼 사장님인 우리 아빠가 해주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40대가 된 내가 일을 하는 곳에는 더 이상 사장님인 아빠도 어렸던 나도 없었다.
돈을 벌어 보자 일을 하러 나온 아줌마가 있을 뿐이었다.
내 가게라면 내가 사장이라면 우리 아빠가 계셨었다면 진상 손님들에게 "오지 마세요"를 외쳤을 텐데 그럴 수가 없었다. 그 다섯 글자는 내 영역 밖의 일이었다. 하지만 일을 할수록 그들을 하나하나 상대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다.
( 물론 진상 손님보다는 무난한 손님들 좋은 손님들이 더 많았다. ) 난 내 할 일만 열심히 하고 급여를 받으면 됐고 정 못하겠으면 그만 두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을 하니 진상손님의 등장에도 욱하게 올라오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다.
그야말로 마인드 컨트롤 정신 승리.
커피를 내리고 에이드를 저으며 쉴 새 없이 각종 빵들과 디저트를 세팅하며, 열심히 몇 달을 지냈다.
비록 동네 카페 알바지만 난 집에서 유튜브로 쫀쫀한 우유 스팀 내는 법을 찾아보며 공부했다. 사장님이 레시피 조언을 구할 때는 나의 모든 미각을 곤두 세워 아이디어를 쥐어짜서 의견을 내고 고민했다. 또한 통유리 창을 광나게 닦아놓았다. 사실 주부로만 십 년 넘게 있다가 하는 첫 일이라서 나 때문에 이 가게에 피해가 갈까 소심한 마음이 자꾸 들어 더 열심히 했던 것 같기도 하다.
카페라는 곳이 커피 향 나는 예쁜 공간에서 손님이 오면 우아하게 커피 내려 건네면 된다고들 생각하지만 절대... 아니다. 개인 커피숍은 막강 파워 스타벅스가 아니기에 손님들은 길게 기다려주지 않는다. 바쁜 시간에는 세모진 눈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손을 움직여야 하는 비상사태이다.
손님이 없을 땐 각종 음료에 들어갈 가루들을 채우고 컵, 빨대 등등 비품들을 채우고 끝도 없이 나오는 설거지를 했다. 보기에 너무도 예쁜 전신 거울과 통유리창을 닦으며 그렇게 난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카페는 그런 곳이었다.
그래서 내 몸은 바빴지만 그만큼 카페 주방 한정 나의 일하는 능력은 점점 올라갔다
그렇게 카페일이 익숙해졌다.
에이드 두 잔 동시에 타는 건 일도 아니고, 아메리카노 서너 잔쯤이야 순식간에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맘도 내 손도 여유가 생길 즈음이 되니 난 나의 노동력에 비해 급여가 썩 만족스럽지 않다는 생각이 슬쩍슬쩍 훅! 올라왔다.
물론 매일 일하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급여가 많지 않았던 것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아무리 힘들어도 시급 만원 이상은 받을 수 없는 시급제 알바의 현실에 착잡함이 있었다.
이렇게 며칠, 몇 시간 알바를 해서는 오르는 물가를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일은 하지만 여전히 나에게 쓸 돈은 전혀 없었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있을 만큼 생활고에 시달리는 삶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작게나마 사치가 허락되지도 않았다.
몸은 힘든데 그에 비해 얻는 게 작다고 생각이 드니 자꾸만 한숨이 나왔다.
진작에 뭐든 좀 해볼걸,,
육아 스트레스 푼다고 밤에 미드 보며 맥주마실 시간에 인강으로 자격증이라도 하나 따놓을걸,,
하다못해 카페든 공장이든 밥집이든 정말 어디든 조금 더 일찍 나와 일이란 걸 해보고 돈을 벌어볼걸.
그렇게 난 나에게 내가 계속 후회 어린 원망을 퍼부었다.
그렇게 예전의 나를 후회하며 30대. 20대. 10대.... 과거로 가고 가고 가다 보니
뭐여,, 잠깐 그럼 아예 태어나질 말았어야 하는 건가?
에이.. 태어나질 말았어야 한다니. 이건 또 아니잖아?!
고작 알바 하나 하면서 뭘 또 그렇게 끝없는 자기 비하를 하나 웃기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그 당시 내 마음은 그랬다.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보니 안 그래도 키 작은 내가 점점 더 작아져서 땅을 뚫고 들어가는 것 같았다.
마치 망치가 땅 속 깊이 들어가라고 내 머리를 탕탕 치는 것 같았다.
“탕! 탕! 탕!”
-넌 지금까지 뭘 했니?
-음... 뭘 하긴.. 밥하고 빨래하고 애 키웠지.
아이러니하게도 일을 하면 할수록 나의 자존감은 한도 끝도 없이 내려갔다.
하지만 사장님은 나의 빠른 손과 부지런히 닦아대고 쓸어대는 깔끔함, 적당히 친절한 내 센스에 무한 칭찬을 해주었다.
(사장님이 참으로 좋으신 분이셨다 )
낮아진 자존감과 나도 꽤 괜찮는다라는 자신감이 양쪽으로 오르락내리락 시소를 탔다.
시소를 타면서 난 또 다른 알바를 구했다.
난 카페 이틀, 샌드위치가게 이틀 일을 하며 알바 투잡을 하게 되었다.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지 진짜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지!!! 를 맘 속으로 외쳐대며 2천 원이 더 많은 시급 12,000원을 받으며 새로운 알바를 시작하였다.
나보다 열 살 어린 싱글의 사장님 밑에서 어쩜 저리 야무지게 자기 일을 시작했을까 부러워하며, 난 알바 2개 뛰는 아줌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