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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고 Dec 27. 2024

필연

인간의 감정은 누군가를 만날 때와 헤어질 때 가장 순수하며 가장 빛난다.


인간의 감정은 누군가를 만날 때와 헤어질 때 가장 순수하며 가장 빛난다.

Man's feelings are always purest and most glowing in the hour of meeting and of farewell.




나는 살면서 생각보다 많은 이별을 경험했다.

물리적 이별부터 심리적 이별, 정말 이 세상에서의 숨을 거두는 자와의 이별까지. 이제는 이별도 필연의 법칙과 가깝다고 생각되리만큼 정해진 유통기한안에서 헤어짐이 따른다는 원리가 있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인간이 물건이나 식품처럼 변질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는 정말 많은 삶을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며 살아오고 어쩌면 만남가운데 언젠가라는 기간이 정해져 있어서 그 끝을 우리가 모르고 살아가는 게 축복 아닐까? 끝을 알고 있는 관계라면 어느 순간 시들어지고 스스로 거리를 조절할 테니. 그게 미리 유통기한이 다 되어가는 냉장고 속 소스들을 정리하듯 버리고 비우듯 우리 인간관계도 그렇게 정리하면 상하지 않고 다치지 않아 편리는 하겠지만 너무 삭막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별기간이 정해져 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 시작을 할 때부터 언젠가 끝이 있을 관계라는 느낌이 드는 관계가 있고, 정말 불가피하게 사고나 질병으로 헤어지기도 하니 내 논리대로라면 '영원한 관계는 없다'라는 말의 반증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나는 아프고 힘든 시기를 겪었다. 그 당시 많은 지인들과 연락자체를 하지 않고 어둡게 최소한의 측근들과만 교류하며 지냈고 그 시기에 날 아는 사람들은 '정말 왜 저렇게 오랫동안 동굴에서 나오지 않을까?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하고 답답해했을 것이다. 약속을 잡으면 불안해하다가 하루 이틀 전에 도망치듯 취소하기 바빴고, 전화를 피하는 것은 정말 흔한 일상이었으며 연락자체에 답장도 굉장히 더뎠다. 번호를 바뀐 적도 남들보다 꽤나 많았다. 그렇게 불안정한 시기를 거친 나는 그때의 나의 상태는 '대인기피증'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엄청난 은둔형 외톨이는 아니었지만 나름 가는 곳만 가고, 만나는 가족이나 최소 지인만 만나며 사회적으로 문을 닫은 채 지내곤 하였다. 


최근에 만났던 사랑했던 남자친구를 통해 용기를 내 그때 나에게 지쳐 기다리다 못해 떠나가고 멀어진 친구들에게 연락을 하였다. 그렇게 계기가 되어 인연을 다시 이어준 고마운 사람이 있었다. 그 덕분에 다시금 관계들이 살아나기 시작했고 일상적으로 생활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서로 맞지 않는 부분으로 다투기도 많이 했던 그와 나지만 나를 세상밖으로 나오게 용기를 주고 격려를 아낌없이 주던 그에게 이 글에서 진심 어린 감사를 전한다.


그렇게 소중했던 그런 그와도 끝이 있어 헤어졌고, 이렇듯 우리는 필연에 의해 만나지만 또 필연에 의해 언젠가는 헤어지기도 하는 삶을 반복하는 것 같다. 이별이 언제일지는 모르나 끝을 받아들일 준비를 언제나 헤야 하는 삶의 무게. 그 고통도 삶의 한 가지 색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이게 어른이 되는 과정 중의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된다. 청첩장보다 부고장을 더 많이 받게 되어가는 나이에 임해갈수록 말이다. 


가장 위의 소재처럼 우리는 누군가와 만날 때와 헤어질 때 가장 순수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며 순수한 자신의 빛나는 모습을 더 간직하고 기억하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다. 헤어짐도 아프지만 그때의 자신이 너무 빛나는 걸 알기에 기억하고 싶은 마음. 그 맘이 같다는 걸 최근에 깨달았다.


다시금 만남에 헤어짐에 다시 만남을 반복하는 필연이라면 또 만나겠지. 언제 어디서 볼지 모르니 지나가는 사람에게도 친절하고 잘 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 같다. 불과 5년 전에만 해도 같이 세상밖에서 어울리며 청춘을 누리고 살아가는 법을 몰랐던 나였지만, 이제 조금은 만나고 헤어짐의 원리를 생각해 볼 여유를 갖게 되었다.




삶을 이어가는 데는 꼭 필요한 이별이 있다. 내가 숨 쉬고 살아가는데 아프고 너무 힘든 관계가 그러하다. 애증의 관계를 그 대상과의 이별보다는 그 관계의 고리를 끊고 재정비하는 것이 정말 좋더라. 그 양가감정이라는 진액을 빼고 생각하니 정말 편안한 사이였고 그렇게 바라보고 교제하니 행복감과 편안함이 왔다. 나는 사실 주거니 받거니 하며 서로 나누고 피드백하는 건강한 관계가 정말로 좋다. 그래서 글을 쓴다는 게 나 자신과 하는 혼잣말 같고, 피드백 같다. 나중에 다시 읽어보면 '나 그랬구나' 하고는 '이때는 이렇게 생각했었지'하며 달라진 면에 대해서는 또 다른 성찰을 갖겠지. 글을 쓰고 생각을 나눌 수 있다는 게 행복이다. 많은 단어들이 선물 같다. 그 단어들이 모여 만들어진 문장은 날 덮여주는 솜이불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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