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따뜻한 겨울나기
어느 찬양의 가사처럼 주울 것 없는 빈 들에서 걸을 때, 가난한 마음으로 누구보다 마음이 낮아져 있을 때, 작은 것도 소중하고 감사해서 기쁠 수 있을 때. 그럴 때 하는 기도를 좋아한다.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풍족에 겨워 호의호식하는 마음의 기도는 기쁘고 감사가 넘칠 수 있다. 그러나 작은 것에도 소중함을 느끼기 어려울 수 있다. 가난한 마음의 기도가 지금껏 나를 살렸다.
어쩌면 내가 하고 있는 이 모든 삻의 동작들이 그 힘에서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누구도 나를 사랑하지 않고, 사랑해 주지 않을 것이며, 사랑받을 만하지 않다고 생각한 시기가 있다.
너도 나도 각자 자기 길을 가기 바빠 주변 돌아보기 너무 힘겨운, 인생에서 가장 빛나고 중요한, 20대 중후반이 그러했다. 아플 만큼 아팠는데도 남들보다 뒤늦은 첫사랑은 너무나 깊은 열병처럼 독하게 날 아프게 했고, 누군가와의 이별은 여전히 힘들었고, 대장암으로 아프셨던 아버지의 병원 침대에 누워계신 모습은 마음을 주저앉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렇게 지금은 내 삶을 돌아볼 여유와 여력이 되어 누군가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건 정말 작지만 큰 기적과 같다. 예전의 나로서는 전혀 상상하지도, 꿈꾸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내가 사회적으로 대단히 성공한 사람은 아니지만 적어도 살아있지 않은가.
내게는 지푸라기 같은 심정으로 붙잡아야 살 수 있었던, 너무도 감사한 존재들이 몇몇 있다. 내가 정말 초라하고 보잘것없고 세상에서 환영받을 모양이 아니었을 때 나를 사랑해 준 이들. 진심으로 편견 없이 나를 대해준 이들께 진정으로 감사하다. 한 분, 한 분 찾아가 감사했다고 작은 선물로나마 부족한 표현력을 돕기 위해 마음을 전하고 싶지만 오랫동안 안부도 묻지 못하고 지냈던 그들에게 다 가기란 여간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반면, 세상의 색안경에 사로잡혀 나의 속을 바라보지 못하고 안타깝게 여기지 못했던 이들에게도 감사하다. 그들이 있어 내가 더 단단해질 수 있었고,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으며 무너질 수는 있으나 지나치게 나약해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 또한 느꼈다. 삶은 당겨지지 않은 방아쇠 같아서 언제 어떻게 총알이 누군가, 어딘가로 향할지 모르는 일과 같다. 그 총알이 위험한 상황의 사람을 살리기도, 누군가를 돕기도, 누군가를 헤치지기도 할 테니 우리는 저마다의 권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게 아닐까.
이 추운 겨울 누군가는 따뜻한 방을 그토록 원하며 힘겨움에 떨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 그들에게 도움의 방아쇠는 당길지언정, 다치게는 하지 말자. 가난하지 않더라도 따뜻한 마음을 지켜내자. 가난한 마음으로 따뜻한 겨울을 살아내자.
내가 본 어른 중의 가장 어른, 나를 누구보다 귀하다 품어주셨던 분, 날카로워 다가가기 다소 어려웠지만 그래도 날 향했던 마음은 정말 따스했던 분. 신앙으로 뭉쳐 나를 꼭 안아주셨던 세 분들. 감사하다. 정말 소중하다. 가난한 마음으로 그분들께 감사를 전한다. 깊어지는 밤마다 연말이라 그런지. 고마운 분들에 대한 그리움이 간절한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