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꿈은 이렇게 불릴까. 생각해 봤다. 자는 동안 꾸는 꿈은 자다가 깨면 끝이었다. 다시 이어가고 싶은 꿈이 있었는데 그런 행복한 꿈 또한 깨고 나면 허무하리 사라지곤 했다. 그런데 우리의 이루고 싶은 이상과 희망도 잠시 꾸고 깨면 사라지는 꿈처럼 그렇게 쉽게 사라질 수 있다는 것.
꿈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았다. 먼저는 '잠자는 동안에 깨어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사물을 보고 듣는 정신 현상'을 말했다. 흔히들 말하는 '꿈을 꾸었다'의 꿈이었다. 모두들 알다시피 다른 뜻의 꿈이 있다.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을 말하기도 한다.
20대 초반의 나에게는 간절하리 만큼 이루고 싶은 꿈이 있었는데, 그것은 내가 기술을 배워 캐나다로 이민을 가서 성공해서 우리나라에 돌아오는 꿈이었다. 당시 우리나라보다 내가 하고 싶은 기술은 캐나다에서 복지가 좋기로 유명했고, 친척언니가 이민을 가 살고 계시며 관련 일을 하셨기에 거기에 몰두하고 매진하고 싶었다. 갓 20살의 당찬 포부였다. 근데 그 꿈은 이룰 수 있는 꿈이기도 했으나 사라질 수도 있는 또 다른 의미의 꿈이었다. 내가 현실감이 떨어진 건지 뒷심이 부족했는지. 결국은 이루지 못하고 내려놓아야 했다.
'우리 때는 적성검사가 어디 있었겠냐 다 먹고살려고 아무 일이나 시작해서 살아왔지'라는 자주 듣는 아버지의 말씀처럼 나는 그렇게 적성이며 흥미며 그런 것 따지지 말고 성공만 하자는 일념으로 그 꿈을 향해 갔던 것 같다. 그 일을 그만두기까지. 꿈을 포기하고 잠에서 깨기까지는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만큼 여기저기 탈이 나서 옴짝달싹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과정이 나에게는 꼭 필요했다. 그래야만 포기를 할 수 있고, 멈출 수 있었다. 살다 보니 안 되는 걸 알고 아니란 걸 알기까지의 과정이 꼭 필요하더라. 그래야 용기 내서 멈출 수 있다. 멈추는 용기를 배우려고 그 과정을 거쳐오나 보다 싶다. 생각보다 포기해 본 경험은 꽤 어른다운 어른이 된 자만의 전리품 같다. 많은 포기가 우리를 어른으로 만드나 보다. 지금도 어리고 여린 나는 포기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많은 과정을 거치고 있다. 이 인생의 징검다리에서 넘어지거나 빠지지 않고 한 발짝씩 잘 건너가기 위해 내딛는 발걸음이 조심스러운 것은 여전한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