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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원 이후 무너지는 회사

남은 사람마저 잃게 되는 다운사이징의 함정

by 라이블리데이즈

회사가 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꺼내는 방법은 감원이다. 자금난, 시장 축소, 투자 실패 같은 위기 속에서, 많은 조직은 비용을 줄이기 위해 사람을 줄인다. 감원은 빠르게 가시적인 결과를 보여준다. 인건비는 줄고, 재무 지표는 일시적으로 좋아진다. 그러나 그 뒤에 남는 것은 숫자가 아닌 상처다. 감원은 당장의 문제를 덮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그 과정에서 조직은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와 신뢰를 잃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사람을 줄인 것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글에 나오는 2가지 경영학 개념]

- 다운 사이징(downsizing): 주로 비용 절감과 효율성 증대를 위해 조직의 규모를 축소하는 데 초점을 맞추며, 해고와 같은 인력 감축이 주요 특징임

- 다운 스코핑(downscoping): 기업이 핵심 역량에 집중하기 위해 비핵심 사업을 매각하거나 축소하는 전략으로, 조직의 구조를 단순화하고 전략적 통제를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둠


다운사이징을 할 때, 흔히 ‘성과’와 ‘잠재성’을 기준으로 인력을 선별한다고 이야기한다. 과거에 성과가 낮았거나, 미래 성장 가능성이 부족한 인재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 기준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성과는 종종 수치로만 정의되지 않고, 조직에 기여하는 다양한 형태로 드러난다. 잠재성은 더 모호하다. 본질적으로 예측하기 어렵고, 시간에 쫓기는 다운사이징에서는 충분한 검토조차 어렵다.


다운사이징에서는 주로 연봉이 높거나, 눈에 덜 띄거나, 일시적으로 중요도가 낮아 보이는 사람들이 감원의 대상이 되는 일이 잦다. 그러나 드러나는 성과가 그 사람의 진짜 기여를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한 A는 조용히 뒷단에 머물고, 강의를 맡은 B는 무대에 올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겉으로 보면 B가 눈에 띄지만, 실제로 조직에 꼭 필요한 사람은 A일 수 있다.


조직은 이론상 실질적 기여를 기준으로 감원을 결정하려 한다. 겉모습이나 일시적인 성과가 아니라, 핵심 시스템을 설계하고 장기적 가치에 기여한 사람을 남기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시간과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가시성이나 단기 성과에 의해 판단이 왜곡되기도 하고, 구조조정 과정에서 부득이하게 실질적 기여자까지 이탈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래서 때로는 주변의 예상과 다른 결정이 내려진다. 눈에 띄던 사람이 남고, 진짜 중요한 사람이 떠나기도 하며, 반대로 덜 드러났던 사람이 남게 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이런 결정 과정이 구성원들에게 투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구성원들은 누가 무대 뒤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명확히 알지 못한다. 겉으로 보이는 성과와 실제 기여 사이의 간극은 결국 의심과 혼란을 만든다. “왜 저 사람이 나가야 했지?”, “일을 잘하던 것 같은데 왜 저렇게 되었지?” 같은 질문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리고 이런 질문은 성과를 내도 안전하지 않다는 불안으로 이어진다.


몰입은 무너지고, 사람들은 자신을 보호하는 데 에너지를 쓰기 시작한다. 책임을 떠안기보다는 피하려 하고, 협력보다는 자기 방어를 선택하게 된다. 결국 조직은 단순히 인원을 줄인 것 이상의 대가를 치르게 된다. 남은 사람들의 에너지와 신뢰까지 잃게 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다운사이징 이후 업무 재정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다. 조직 구조는 줄었지만, 남은 일은 여전히 많다. 남은 사람들은 더 많은 업무를 떠안아야 하고, 제대로 조정되지 않은 역할과 프로세스 속에서 지쳐간다. 결국 다운사이징을 통해 비용 절감은 이뤄냈을지 몰라도, 조직의 기능과 에너지는 심각하게 약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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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한계를 인식한다면 다른 선택을 고민해야 한다.

사람을 줄이는 대신 사업의 무게를 덜어내는 다운스코핑이다. 다운스코핑은 단순히 인력을 줄이는 것이 아니다. 회사가 운영하는 사업 자체를 전략적으로 축소하는 것이다. 수익성이 낮거나 성장성이 없는 제품과 서비스를 정리하고, 핵심에 집중한다. '누구를 남길까'가 아니라 '무엇을 남길까'를 묻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제조 기업이 소비자용 가전 사업을 접고 산업용 장비에 집중하거나, 스타트업이 부가 서비스를 정리하고 핵심 플랫폼 하나에 올인하는 것, 이 모두가 다운스코핑이다. 다운스코핑은 사람을 겨냥하지 않는다. 사업과 일의 구조를 먼저 바꾸고, 그에 맞춰 조직을 재편한다. 이 방식은 남은 구성원에게 회사가 어디로 가는지, 내가 핵심 안에 있는지,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에 대해 명확한 메시지를 준다. 이런 감각이 살아 있으면 조직은 불안에 휘둘리지 않는다. 몰입할 이유를 잃지 않는다.


다운스코핑의 실제 사례로는 GE가 있다. 한때 세계 최대 기업 중 하나였던 GE는 방대한 사업 확장 끝에 재무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GE는 단순한 인력 감축이 아니라, 사업 포트폴리오 자체를 정리하는 선택을 했다. 금융 부문을 축소하고, 가전 사업을 매각했으며, 항공과 헬스케어 같은 고수익 사업에 집중했다. 그 결과 GE는 재무 구조를 안정시키고 핵심 사업을 중심으로 다시 회복할 수 있었다. 다운스코핑은 단순한 구조조정이 아니라 조직을 살리는 전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물론 다운스코핑이 성공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둘째, 사람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일을 먼저 정리해야 한다. 셋째, 남은 구성원에게 방향성과 의미를 명확히 설명해야 한다. 넷째, 커뮤니케이션은 투명하고 반복적이어야 한다. 다섯째, 단기 비용 절감이 아니라 장기 생존과 성장을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다운스코핑 이후에도 주의해야 할 점은 있다. 사업을 정리했다고 해서 일이 저절로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다운스코핑 이후에는 남은 일과 없어질 일을 명확히 구분하고, 역할과 책임을 다시 정해야 한다.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다. 집중해야 할 우선순위를 정하고, 작은 성공을 쌓아나가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감정을 정비하는 일이다. 남은 사람들은 두려움, 상실감, 죄책감을 안고 있다. 리더는 이 감정을 외면하지 말고, 함께 이야기하고 회복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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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스코핑은 끝이 아니다. 몸집을 덜어내고 방향을 바로잡은 다음, 남은 일과 남은 사람을 믿고 다시 시작하는 일이다. 조직을 살리는 힘은 단순히 줄이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무엇을 남기고, 남은 것들을 어떻게 살릴지에 달려 있다.


사람을 줄였지만 더 무너진 회사가 아니라, 작아졌지만 더 단단해진 회사를 만드는 것.

그것이 경영진과 나의 조직을 사랑하는 구성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결과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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