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본능적으로 쾌락과 즐거움을 원하고, 고통을 피하려 한다. 따뜻한 햇살 아래에서 한가롭게 커피를 마시고, 사랑하는 사람과 웃으며 대화하는 순간을 꿈꾼다. 반면, 고통과 불행은 멀리하고 싶다. 하지만 삶은 우리의 바램과 다르게 흘러간다. 예상치 못한 시련과 절망이 갑자기 찾아와 우리를 흔들어 놓는다. 그래서 부처님은 우리의 삶을 ‘고해(苦海)’라고 했다. 마치 끝없이 펼쳐진 바다 위에서 파도에 휩쓸리듯, 인생은 크고 작은 고통의 연속이다.
고통은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조건이다. 그런데 우리는 고통을 너무 쉽게 불행으로 규정해 버린다. 마치 고통이 없는 상태가 정상인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만약 우리가 아픔을 느낄 수 없다면, 몸에 난 상처를 방치하다 더 큰 문제를 맞이할 것이다. 열이 나는 것은 몸이 병과 싸우고 있다는 신호이고, 마음의 고통도 우리에게 무언가를 깨닫게 한다. 시인 이성복은 "고통은 살아 있음의 징조이며, 타락과 질병과 무지에 대한 경보이며, 살고 싶음과 살아야겠음의 선언이다."라고 말했다. 고통은 피해야 할 적이 아니라,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하는 존재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고통을 겪기 전부터 상상 속에서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실제로 고통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보다, 그 고통을 예상하며 불안해하는 시간이 훨씬 더 고통스럽다. 주사를 맞기 전에 차례를 기다리는 순간이, 정작 주사를 맞는 순간보다 더 무섭다.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을 앞둔 밤은,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순간보다 더 긴장된다. 많은 경우, 우리가 괴로워하는 것은 현실의 고통이 아니라,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두려움이다.
그렇다면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피할 수 없는 고통이라면, 그것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근육을 키우기 위해 운동을 한다. 처음에는 뻐근하고 힘들지만, 그 과정을 반복할수록 더 강해진다. 삶의 고통도 마찬가지다. 스트레스를 무조건 부정적인 것으로 여기기보다, 나를 성장시키는 긴장감으로 받아들이자. 때때로 우리를 괴롭히는 시련이야말로, 더 단단한 내면을 만드는 기회가 된다.
결국 삶에서 고통이 찾아오는가 아닌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자신에게 찾아온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응할지가 훨씬 중요하다. 나에게 갑작스레 찾아오는 고통을 포지티브한 긴장상태라고 여기자. 포지티브한 긴장상태는 나를 더 건강하게 만들고 발전하게 도와준다.
고통만이 인간은 성숙시킨다.
나를 죽게 하지 않는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준다.
그대 자신에게
악천후와 폭풍을 견디지 못하는 나무들이
장래에 거목으로 훌쩍 자랄 수 있는지 한번 물어보라
이런 것들을 경험하지 않고는
어떤 위대한 미덕의 성장도 좀처럼 이룰 수 없다. -니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