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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결혼했다

by 소쿠리 Mar 01. 2025

더 이상 한 집에서 가족들과 마주치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우리 결혼할래?"


지민이 남자친구에게 물었다.


"그래, 그러자."


결혼을 일주일 앞두고 지민은 이 결혼이 잘못된 선택이라는 것을 마음 깊은 곳에서 느꼈다. 피난처로 하는 결혼이라고는 하지만, 남자친구는 결혼할 만큼 안정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계속 지민의 마음을 괴롭혔다. 어머니에게 결혼을 미뤄야 할 것 같다고 털어놓았지만 지민의 어머니는 이미 청첩장을 돌리고, 주변 사람들이 지민의 결혼 소식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결혼을 취소할 수는 없다며 단호하게 반대했다. ' 엄마라도 반대했으면 좋겠는데..' 자신의 인생에 대한 지민의 수동적인 태도는 지민의 인생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 지민은 길을 잃은 어린아이와 같이 어찌할 바를 몰랐다.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을 간 날부터 남편과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주말마다 지민은 남편에게 여행을 가자고 했다. 남편과의 결혼생활을 일주일 버티면 여행을 가는 것이 자신에게 주는 보상이었고, 여행을 가서 산이나 바다를 보면 기분이 풀리는 것 같았다. 남편의 아이는 시댁에서 키우고 있었고, 결혼하고 나서는 일주일에 한 번 여행을 갈 때 그 아이를 여행에 함께 데려가곤 했다. 지민은 남편의 아이를 볼 때마다 어린 시절의 자신을 보는 듯한 마음이 들었다. 함께 여행을 갔다가 할머니집에 아이를 놓고 올 때면, 아이는 떼를 쓰며 아빠 따라서 가고 싶다고 울었고, 지민은 그런 아이가 너무 안쓰럽고 불쌍하게 느껴졌다. 지민은 아이를 데려와 키우겠다는 결심을 했다. 아기를 낳아본 적도, 길러본 적도 없는 지민은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했지만, 그렇게 해야 자신도 살고, 그 아이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이혼하지 않기 위해 아기를 데려왔던 그녀의 어머니처럼, 지민도 그런 결정을 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이가 지민의 신혼집에 온 첫날부터 아이는 불안해했다. 지민이 집 앞 슈퍼에라도 나가게 되면, 아이는 불안해하며 울곤 했다. 아이는 5분도 혼자 있을 수 없었다. 서로 다른 방에 있을 때면 지민이 집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아이는 지민을 계속 불렀다. 살기 위해 아이를 데려왔던 지민은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최선을 다해 아이를 돌보았지만, 아이의 불안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아동심리치료 기관에 아이와 함께 가서 검사를 받아 보았다. 아동심리치료사는 아이가 불안장애가 심해서 어른이 되더라도 나아지기 힘들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지민은 무너지는 마음을 붙잡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른이 되어도 계속 저럴 수 있대. 어떡해”


지민은 흐느껴 울며 말했다. 남편은 아이를 키우는 동안 지민의 하소연을 들어주려 노력했지만, 자신의 아이의 문제를 그렇게 심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괜찮아지겠지…”


남편은 담담하게 말했다. 지민의 시어머니는 멀쩡한 아이에게 왜 문제가 있다고 하냐며 지민을 나무랐다. 지민의 시댁에서는 아이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마치 그 아이가 어린 시절의 자신인 것처럼 느껴졌던 지민은 아이를 살리고 싶었다.  지민은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도 자주 가고, 집에서 치료 미술 활동도 열심히 했다. 아동심리치료를 1년 넘게 다니던 어느 날, 아동심리치료사가 지민에게 말했다. "어머니, 애가 왜 이렇게 달라졌어요? 어머니 어떻게 하신 거예요? 상태가 너무 좋아졌어요." 지민은 자신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 것 같아 오랜만에 행복했다. 그즈음에는 지민도 아이가 많이 좋아졌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안정된 아이는 아이 특유의 기발함과 천진난만함을 일상에서 뿜어내고 있었다. 남편과의 관계는 날이 갈수록 악화되었지만, 아이가 있었기에 지민은 그 상황을 견딜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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