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민의 어린 시절 첫 기억은 부모님은 싸우고 있고, 울고 있는 지민 앞에 동화책들이 방바닥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는 장면이다.
나중에 지민은 어머니에게 이 장면에 대해 설명을 들었는데, 듣기 전까지는 무슨 내용의 장면인지 잘 알지 못했다. 지민의 어머니는 그 댱시 꽤 많은 돈을 주고 동화책 전집을 구매했다. 평상시 지민의 아버지는 돈을 쓰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기 때문에 아버지 자신에게도 돈을 쓰지 않았지만, 가정에서도 지민의 어머니가 생필품외에 돈을 쓰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런 상황에서 지민의 어머니가 지민과 지민의 동생을 위해 동화책 전집을 구매한 것이다.
"왜 이런데 돈을 써!"
이 사실을 알게 된 지민의 아버지는 책을 집어 들고 아파트 공용 쓰레기장에다 전집을 모두 갖다 버렸다. 지민의 어미니는 책이 버려진 쓰레기장으로 가서 몇번에 걸쳐 책을 들고 와서 울면서 한권한권 걸레로 닦고 있었던 것이다.
지민은 그 때를 회상했다. 그 책이 버려질 때 자신이 버려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게 떠올랐다. 내가 버려지는 거구나. 내가 쓸모 없는 애구나, 나는 저 책을 읽을 자격도 없는 애구나. 지민은 어린시절의 첫 기억이 마치 지금 일어난 일인 것처럼 몸서리쳤다.
지민의 어머니는 자식들을 끔찍히 귀하게 여기고, 남편에게는 순종하는 그런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였다. 삼시세끼 상을 차리고, 어쩌면 과보호라고 여길만큼 자식들에게는 끔찍했다.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때는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서 축하해 주고, 그 날을 기념했다. 지민의 어린시절에는 흔하지 않았던 미제 스팸, 치즈 등을 미제 가게에 가서 사서 가족들에게 차려 주었고,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옷도 깨끗하고 예쁘게 입히려고 노력했다.
지민의 아버지는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전형이었다. 엄격하지만, 마음은 약해서 불쌍한 사람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지하철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들의 물건을 꼭 하나씩 사서 퇴근하곤 했다. 자식들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컸지만, 표현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었다. 지민의 기억에서 아버지는 무서운 아버지였지만, 지민의 등하교 때 승용차로 지민을 데려다 주고 데리러 오는 자상한 면이 있는 아버지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