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민은 평소에 단순하고 명료한 것을 선호했지만, 지금은 온 세상이 엉켜 숨쉬기조차 힘든 기분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이 모두 거짓이라는 말인가?" 지민은 마치 먹던 음식물이 목에 걸린 듯 눈앞이 하얘지는 것을 느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상태였다. 세상의 시간과 공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었지만, 지민의 시간과 공간은 멈춰 서 있었다.
"나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부모님은 지금까지 나를 속인 것인가? 왜 그랬을까? 친척들에게 나는 동물원 원숭이처럼 여겨졌던 걸까?" 이런 질문들이 떠오르며, 지민은 지금까지 찾아다녔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답이 여기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그 궁금증이 풀릴 것 같았다. 지민을 괴롭히던 그 지긋지긋한 마음의 공허함과 안개에 가린 듯이 뿌옇던 존재의 핵심이 바로 이것이었구나. 지민은 자신의 몸 밖에서 밀려오는 생각들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겨우겨우 숨을 쉬고 있었다.
평소 지민은 입양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TV에서 입양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그저 그러려니 했고, '안 됐네' 정도의 감정이 전부였다. 그런데 자신이 입양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나자, 지민은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내 엄마와 아빠가 따로 있다는 것인가?" 늘 자신감에 차 있던 지민은 갑자기 쪼그라드는 기분이었다. 지민의 어머니가 노숙자일지,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일지, 혹은 화류계 여성일지 알 수 없었다.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떠올랐다. "나는 어떻게 입양까지 가게 된 걸까?" 그 생각에 미치자 지민은 멈춰 섰다. 지민은 택시를 잡아 탔다.
"괜찮아, 괜찮아."
남자친구가 지민을 다독이며 말했다. 저 사람이 없었다면 나는 어쩔 뻔했을까. 지민은 초점 없는 눈으로 남자친구를 바라보았다. 집에 들어가서 누워있고 싶었지만, 지민에게는 돌아갈 집이 없었다.
"이건 말이지 가족들이 모두 해외로 여행을 갔는데,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비행기 사고로 모두 죽고 나만 살아남은 거 같은 거야. 내 기분이 지금 그런거야. "
지민은 집에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 "어떡하지...이제 우리 집이 아닌데..." 지민은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거부감을 애써 참으며 한참을 망설이다가 터벅터벅 집으로 들어갔다. 눈에 익은 모든 것이 새파랗게 낯설게 느껴졌다. 함께 사는 지민의 어머니는 2박 3일 여행을 계획하고 친구 집에 가셨다. 다행이었다. 지금 어머니의 얼굴을 보는 건 무리다. 지민은 조용히 이불을 펴고 누웠다. 눈물은 흘렀지만,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지민의 영혼은 살아남기 위해 무감각을 선택했다. 그래야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