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민은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되었다. 어머니와 그렇게 멀리 떨어져서 오랫동안 혼자 있는 것은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다. 유치원에 가니 또래 아이들이 많이 있었다. 손을 들고 발표를 하는 것도 어색해서, 손을 들 수도 없었다. 너무 부끄러웠다. 유치원을 몇 달 다닌 지민이 가장 힘들었던 것은 어딘가 낯선 곳에 혼자 남겨지는 일이었다. 익숙한 집을 떠나 유치원에 남겨지는 것은 지민에게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지민은 이렇게 가족과 멀리 떨어져 본 적도, 어머니의 돌봄에서 벗어나 본 적도 없었다.
" 가기 싫어! 싫다고!"
지민은 길바닥에 드러누웠다. 지민의 어머니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평상시에 떼를 쓰거나 억지를 부리는 아이가 아니었다. 도대체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유치원에 가야지. 이렇게 떼를 쓰면 어떡해!"
"나 유치원 안 갈래!"
지민의 어머니는 더 이상 지민을 끌 수가 없었다.
"집에 가자. 안 되겠다."
그렇게 지민은 유치원을 그만두게 되었다.
대신에 지민의 어머니는 집에 와서 가르치는 피아노 선생님을 구했고, 지민은 집에서 피아노를 배우는 것으로 유치원을 대신했다.
지민이 초등학교 6학년 2학기를 마칠 때쯤 아버지가 서울로 발령이 났다. 온 가족이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에서 지민의 아버지는 지민의 남은 학기를 본래 지민이 다니던 학교에서 보내도록 하기로 결정했다. 어차피 얼마 남지 않은 초등학교 생활이기에 한두 달만 지나면 겨울방학이었다.
"아빠 회사 아저씨네 가족에게 얘기해 두었으니, 그 집에서 한 달 정도 있으면 돼."
지민의 아버지는 지민에게 말했다. 그 가족은 지민네 가족과 몇 번 가족끼리 만나서 지민도 알고 있는 가족이었다. 그 집에는 여자아이와 어린 남동생이 있었다. 다행히 또래 여자아이가 언니언니 하면서 잘 따랐기 때문에 지민은 별 걱정하지 않았다.
가족 문화가 달라서 어색하긴 했지만, 지민에게는 어쩌면 좋은 기회였다. 다른 가족들의 삶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침 식사로 라면을 먹는 것도, 남편과 아내가 별로 싸우지 않는 것도, 엄마가 아이들을 지나치게 보호하지 않는 것도... 모두 지민에게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러나 지민은 가족과 떨어진 지 2-3주가 되면서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그동안의 낯섦이 극에 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민은 공중전화로 갑자기 서울 집에 전화해서는 오열했다. 지민은 가족에게서 버림받은 느낌이 폭발하는 기분이 들었다. 견딜 수가 없었다. 저 아랫배에서 끓는 듯이 솟구쳐 나오는 버림받은 것 같은 분노와 서글픔, 몸서리쳐짐... 이런 감정들을 느끼며 전화기를 붙잡고 한참을 울었다. 전화를 받은 지민의 어머니는 당황스러웠다. 지민 아버지의 회사 동료는 지민이 잘 지내고 있다고 했고, 지민도 또래 동생과 잘 지내고 있다고 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지민이 전화해서는 대성통곡을 하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지민의 어머니는 의아했다.
어머니에게 한참을 울면서 얘기를 하고 나니 지민은 속이 후련해진 것 같았다. 그동안의 여러 가지 감정들이 다 쏟아져 나오고, 결국에는 텅 빈 상태가 된 것 같았다. 조금은 쑥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평소에 지민은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서 가족에게 표출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힘들다고 한 적도 없고, 자신의 힘듦을 말해 본 적도 없었다. 왜 갑자기 눈물이 나면서 울컥했는지 지민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동안 다른 가족과 함께 살면서 재밌는 것도 많았다. 그렇게 많이 울만큼 구체적으로 힘든 일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지민은 자신의 감정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홀가분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