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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내와 잘 살기...

제15편  내 아내를 만나다..굴절편_마지막

by 이and왕 Feb 01. 2025

선유도 민박집. .... 리셋 14시간 전

장자도에서 막걸리에 취한 지혜 씨를 간신히 부축하여 데려와서 민박집에 눕히고 밖으로 나왔다.

하늘에는 초저녁과는 달리 무수히 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다.

이 밤이 지나면 아내와는 영영 이별을 할 수도 있다.

지금은 젊은 아내를 알아볼 수 있지만 내일 나의 모든 미래의 기억이 리셋이 되면 나는 아내의 존재 자체를 알지 못할 것이다.

내 기억으로는 아내가 나를 또는 내가 아내를 첫인상에서 하트가 뿅뿅 발생할 정도의 호감으로 엮이어지지는 않은 것으로 안다.

선유도로 오는 배 위에서 처음 봤을 때 아내는 나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었다.

하지만 민박집에서 3박 4일간 같이 지내면서 많은 대화를 하며 연인으로 발전되지 않았던가.

그렇다고 보면 내가 아내를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아내를 찾아서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된다.

천천히 항구 방향으로 내려간다.

항구 가는 옆으로는 몇 개의 횟집이 있다.

혹시 회를 좋아하는 아내가 친구들과 회를 먹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속 기대로 발길을 항구로 향한 것이다.

하지만 젊은 아내가 보이지 않는다.

마음이 점점 초조해진다.

나에게 망설임을 가져왔던 아내와의 온갖 싸움의 기억들이 “그 정도야 뭐...”쪽으로 치우치는 느낌이 든다.

먼바다에서 환하게 집어등을 키고 고기잡이를 하는 배들이 보인다.

환한 불빛이 바다에도 비치며 파도가 일렁일 때마다 불빛이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고 있다.


아내가 보고 싶다. .... 리셋 13시간 전

무엇을 하든 무슨 말을 하든 잘 웃어주는 아내가 보고 싶다.

주말이면 술 한잔하며 “건배”를 외치는 아내가 보고 싶다.

아내가 갑상선암에 걸려서 수술받으러 가기 전에 “나 죽을까?” 하며 잠깐 울음을 보인 아내가 보고 싶다.

내가 어디를 가든 “같이 갈래?” 하고 물으면 “응 좋아 갈게. 근데 어디?” 하는 아내가 보고 싶다.

산에 가면 도시락으로 싸온 밥을 먹으며 “산에서 둘이 같이 밥 먹으니까 더 맛있다 그치?” 하는 아내가 보고 싶다.

내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다 해주고 싶어 하는 아내가 보고 싶다.

화가 나있는 아내에게 “화 풀자” 하면 “그래 풀자” 하는 아내가 보고 싶다.

아내가 옆에 있으면 내 마음이 편해지는 아내가 보고 싶다.


젊은 아내 찾기. .... 리셋 12시간 전

이 밤이 지나면 아내를 만날 수 없다는 조바심이 걸음을 빨리 움직이게 만든다.

어디일까?

젊은 아내는 어디에 있을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항구 부근을 찾아봤지만 젊은 아내는 없었다.

항구 반대편에 있는 명사십리 해수욕장으로 발길을 옮긴다.

어둠이 짙게 깔린 바다 위로 개밥바라기별이 유난히 반짝인다.

젊은 아내를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서글픈 생각이 굵은 눈물방울이 되어 떨어진다.

마음속으로 아내와 만나서 35년간 같이 한 세월 속에서 싸움의 밑거름이 되었던 나쁜 기억들이 이제는 기분 좋은 추억거리로 자리를 잡으며 그리움이 한층 더 심해진다.

나의 젊은 아내는 어디에 있을까?


명사십리 해수욕장 포장마차. .... 리셋 11시간 전

발길을 명사십리 해수욕장 쪽으로 옮긴다.

언뜻 옛날 기억에 선유도 온 둘째 날이던가 우리가 짊어지고 간 소주가 바닥이 나서 근처 슈퍼에 술을 사러 같이 나왔었는데 명사십리 해수욕장과 망주봉 사이에 포장마차가 있었다.

어렴풋이 아내와 그때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이 난다.


“와 저기 포장마차 정말 분위기 좋다.. 그렇죠?"

“저기서 어묵하고 국수 말아 먹으면 맛있겠다. 그렇죠?"

“먹고 가실래요?”

“아뇨.. 모두 기다리는데 민박집으로 빨리 가죠”


만약 포장마차가 있다면 그리고 젊은 아내가 포장마차를 봤다면 반드시 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포장마차가 있다... 포장마차가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다.

명사십리 해수욕장으로 들어서는 입구에서 바라보니 포장마차 앞쪽으로 몇 개의 둥그런 화덕이 있는 식탁이 보이고 젊은 아내 일 것 같은 여성과 함께 세명이 둥글게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가슴이 마구 두근거린다.

그 옛날... 아내와 정식으로 만나자고 이야기를 하고 첫 번째 데이트를 하기 위해 약속 장소로 갈 때... 그리고 조금 있으면 아내를 만난다는 설렘으로 심장이 마구 뛰던 그때의 내가 되었다.

“젊은 아내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탄성이 섞인 말이 나온다.

나에게 너무나 익숙한 젊은 아내의 모습이다.

와락 다가가서 안아 주고 싶다.

젊은 아내와 친구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 옆에 앉아서 어묵하고 소주 한 병을 시킨다.

소주를 한 잔.. 두 잔.. 세잔을 연거푸 마신다.

젊은 아내를 만났다는 안도감에... 그리고 사무친 그리움에 고개를 숙이고 깊은 한숨을 몰아쉰다.

시간을 보니 벌써 11시를 넘기고 있다.

빨리 젊은 아내에게 말을 걸고 나를 좋아하게끔 만들어야 된다.

“저.. 잠깐 같이 앉을 수 있을까요?”

나는 너무나 익숙한 젊은 아내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아내에게 물었다.

역시 젊은 아내는 그다지 탐탁지 않은 얼굴이다.

“호호 혼자 왔어요?. 이쪽에 앉으세요”

젊은 아내는 새침한 얼굴인데 옆에 앉은 이쁘장하게 생긴 친구가 심심하던 차에 잘 되었다는 투로 자리를 내준다.

“선유도에 어제 오전 8시 배 타고 들어오셨죠?”

“어머.. 어떻게 아세요?”

“배에서 세분을 봤습니다. 미인분들이라 말을 걸까 말까 망설였습니다. 하하”

나를 이 자리에 앉힌 친구는 이런 멘트를 좋아하지만 내가 아는 젊은 아내는 이런 멘트를 좋아하지 않는다.

젊은 아내의 미간이 살짝 찌그러지는 모습을 보니 역시 젊은 아내는 나를 아직까지는 마땅치 않게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나는 내 앞에 앉아서 퉁명스럽게 말을 하며 쳐다보는 젊은 아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말을 하면 감동을 받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산을 좋아한다는 이야기... 운동을 좋아한다는 이야기... 독서와 글을 쓰거나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는 이야기... 술을 좋아하지만 낭만도 철철 넘친다는 이야기... 요리하는 것을 좋아해서 형제들을 즐겁게 해준다는 이야기... 그리고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 등등등....

역시 젊은 아내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기 시작한다.

젊은 아내의 친구 중 한 친구가 마시지 못하는 술을 마셔서 몸이 안 좋다고 하여 다른 친구가 민박집에 데려다주고 오겠다며 자리를 비워서 자연스럽게 둘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만들어졌다.

둘만 남게 되자 젊은 아내는 어색한지 잔잔하게 파도가 치고 있는 바다를 바라다보고 있다.

“혹시 어디에서 민박을 하세요?”

“네.. 저 슈퍼 옆집에서 민박을 하는데 너무 시끄러워서 내일 군산으로 나갈까 하고 생각하고 있어요”

“아- 그래요. 그럼 혹시 우리가 묶고 있는 민박집으로 옮기시겠어요?”

“....”

“민박집에는 현재 우리 팀하고 미... 아니 아니.. 아가씨네 팀처럼 여자 세 분이 오신 팀 이렇게 두 팀뿐이 없거든요. 그리고 조용합니다.”

나는 하마터면 젊은 아내의 이름을 부를 뻔했다.

“조금 있다가 친구 오면 이야기해 보죠”

호젓한 포장마차에서 젊은 아내와 같이 있으니 옛날 연애하던 시절이 생각 난다.

보고 있는데 보고 싶고 헤어지면 마냥 아쉬웠던 그 시절...

친구가 혼자 남기고 간 친구가 걱정이 되었는지 숨을 헐떡이며 온다.

천천히 오지..

친구가 오니 젊은 아내는 내가 제안한 민박집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나는 속으로 젊은 아내나 친구들이 내일 군산으로 나갈까 봐 조바심이 난다.

“참 우리 팀이 내일 배를 한척 빌려서 고군산열도를 한 바퀴 돌기로 했는데 자리가 여유가 있으니 같이 가셔도 되는데요”

“와.. 그래요? 배를 타고 모든 섬을 돈다는 거죠. 좋은데 우리 그럼 같이 갈까?”

모험을 좋아하는 젊은 아내가 찬성을 하며 친구에게 묻는다.

“괜찮은데...”

친구도 공짜로 배를 타고 이섬 저 섬을 볼 수 있다는 것에 만족스러운지 혼쾌하게 대답을 한다.

나는 우리 민박집 위치를 알려주고 내일 아침 8시 짐을 싸서 꼭 오라고 당부를 한다.

우리는 여기에서 어둠에 취해서 별들에 취해서 파도 소리에 취해서 포장마차 주인이 이제는 문 닫는다는 말을 할 때까지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하였다.


생각하기 .... 리셋 8시간 전

민박집에 들어오니 모두 깊은 잠에 빠져있다.

나도 자리를 잡고 눕는다.

“망설임”에 대해서 다시 생각을 해 본다.

“망설임”의 주된 원인...“지겹다”였는데...

처음에 “지겹다”가 “시간”인지 “사람”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망설임”의 주된 이유가 “지겹다”였는데 그것은 “사람”이 아닌 “시간”에 대한 “지겹다”였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젊은 아내와 인연이 되면 지금부터 몇십 년 동안을 현재 내가 알고 있는 방식으로 살아갈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내용으로 티격태격을 하며 다투기도 하고 작은 집이지만 우리 집을 마련했을 때 행복해하며 둘이 얼싸 앉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보석들을 낳게 되리라.

결혼을 하자 마자 임신을 하여 아들을 낳게 되고 삼년 후에 딸을 낳는다.

우리는 작디작은 몸을 품에 앉으며 부모의 행복을 느끼게 될 것이고 아이들이 밝고 건강하게 자라나는 모습을 보며 행복해하고 각자의 위치에서 취업을 하며 잘 살아가고 있는 모습들을 지켜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될 것이다.

나는 내일 오전 10시가 되면 내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알고 있는 모든 미래의 생각들이 리셋이 된다. 그럼 나는 아내와 낯선 연애를 하게 될 것이고.. 그리고 아내와 결혼하여 낯설고 설익은 행동들로 서로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서로 의지하며 따뜻하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아둥바둥 살아 갈 것이다.

모든 미래의 생각이 리셋이 된 나는 “망설임” 위에 똬리를 틀었던 "지겹다"의 주된 원인이었던 “그러한 시간들”은 리셋과 함께 꿈처럼 없어질 것이고 젊은 아내와 “행복을 꿈꾸는 시간”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나는 내일이면 젊은 아내를 얻게 되리라.

그리고 먼 미래에 흰머리에 잘 어울리는 주름살을 가지고 아내와 손을 잡고 산책을 하고 있으리라.


민박에 오다 .... 리셋 2시간 전

젊은 아내 친구들이 짐을 들고 우리 민박집으로 왔다.

우리 동료들에게는 어제의 일들을 설명을 하였고 모두 흔쾌히 승낙을 한다.


배를 타다 .... 리셋 10분 전

작은 통통배가 정박되어 있다.

배에 먼저 올라서 젊은 아내에게 손을 내민다.

젊은 아내가 내 손을 잡고 배 위로 올라온다.

배에 오른 젊은 아내가 나를 쳐다보고 나는 젊은 아내를 쳐다본다.

젊은 아내가 나를 보며 항상 그러하듯이 이쁘게 웃는다.

웃고 있는 젊은 아내가 이쁘다.

우리를 태운 배는 서서히 항구를 빠져나간다.


에필로그

1990년 8월 19일 08시 군산에서 선유도로 가는 배 위에서 아내와 처음 만났다.

우여곡절 끝에 아내 일행은 우리가 예약한 민박집으로 와서 민박을 잡고 4박 5일간 같이 지내게 된다.

아내는 여행 기간 중에 허구한 날 술을 마셔 되는 나에게 그리 호감을 가지지 않았으나 여행 마지막 날인 전날에 내가 샤워하고 있는 샤워실 문을 벌컥 열게 되며 타의 반, 자의 반으로 엮이게 되어 만남을 이어가게 되고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된다.

나와 아내는 우리의 만남은 기적과 같다고 이야기를 곧잘 한다.

망망대해의 배 안에서 만나게 되는 장소도 그렇고 만남을 이어가는 계기도 그렇고...


내가 알고 있는 인연“세상에서 가장 얇은 천으로 세상에서 가장 큰 돌을 삼 년에 한 번씩 스치고 지나가서 돌이 닳고 닳아서 눈에 보이지 않을 크기가 되는 시간이 지나야 만나게 되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인연은 참 소중하다.


나이 드신 분들이 출연하는 방송을 보면 약 80퍼센트 이상은 다시 결혼을 한다면 지금의 상대하고는 절대로 결혼하지 않겠노라고 이를 앙다물며 다짐을 한다.

한 가지 의문 사항...과연 자기 짝을 싫어하고 있는 80퍼센트는 결혼을 할 때도 싫었고 미운데도 불구하고 결혼을 했을까?

80퍼센트가 애초에 잘못된 만남이었을까?

80퍼센트에 속해있는 남자가... 여자가 지금의 짝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만났다면 과연 행복하게 잘 살았을까?

현재의 자기 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하는 80퍼센트의 싫어하는 이유를 들어 보면 이유는 거의 비슷하다.

대다수는 상대가 게이르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능력이 없다, 무시한다, 자상한 면이 없다. 술을 너무 많이 마신다. 지저분하다. 무식하다. 가벼운 거짓말을 자주 한다. 등

특별한 사유는 도벽증이 있다, 노름을 좋아한다. 게임에 빠져 산다. 폭력적이다. 알코올 중독이다. 매사 거짓말을 한다. 사기꾼이다. 한탕 주의자다. 등

그중 제일 고질적인 것은 성격차이...

여하튼 우리나라 남성 또는 여성 80퍼센트는 적게는 한 개 많게는 여러 개의 위 조건들로 인하여 서로를 저주하며 살고 있다.

 

자신의 짝에게 바라는 것은 따뜻한 마음, 정다운 마음, 능력적인 면, 가정적인 면, 똑똑한 면, 깨끗한 면, 잘생긴 면, 키가 컸으면 등을 원한다.


우리는 기도를 한다.

하늘이시어 부디 내 짝은 위의 문제점 중 대다수가 가지는 문제점 한 가지와 바라는 것 중에는 세 가지 이상 가진 짝을 만나게 해주소 소


하늘의 소리

“너부터 그렇게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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