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난 중학교 시절 그토록 무서뭐 했던 선생님을 책 속에 만났다.
금주 36일 째,아침 몸을 일으키자마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보상’이었다. 어제 저녁,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내미는 유혹을 이겨낸 대가. 흔히들 ‘만약’이라는 단어를 쉽게 쓰지만, 난 가능하면 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예외를 두고 싶다. 정말로 만약, 어제 그 순간을 참지 못하고 소주 한 잔을 기울였다면?
지금의 이 개운함은 없었을 것이다. 분명 아침 햇살 아래에서 머리를 감싸 쥐고, 후회에 몸부림쳤을 것이다. “도대체 35일 동안 쌓아온 걸 이렇게 무너뜨린 거야?” 스스로를 책망하며 찌푸린 얼굴로 거울을 마주했겠지.
그리고 숙취로 인해 흐트러진 하루의 시작. 그런 아침을 맞이하는 대신, 나는 이 상쾌함을 택했다. 그것만으로도 어제의 선택은 충분히 옳았다. 그리고 지금, 한 가지 더 확신하게 되었다.
이번엔 정말 술을 끊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
창문 너머로 바람이 세차게 두드렸다. 마치 내 결심을 시험하려는 듯한 날씨. 전화기를 보니 영하 8도, 체감온도는 영하 11도. 그런 새벽을 맞이하며, 어제처럼 거실에서 바람 소리를 들었다. 조용한 어둠 속에서 명상을 하고, 나만의 루틴을 완수했다. 하루의 기초를 다지는 시간.
그리고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책, <멘탈의 연금술>.
여느 자기계발서와는 다른 결이 느껴졌다.
정확히 뭐라고 말하기엔 아직 내 필력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굳이 요약해보자면…
책을 읽다 보면 가끔, 문장 하나가 머릿속을 강하게 울릴 때가 있다. 마치 그 문장이 나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당신은 끝까지 버틸 수 있는가?” 보도 섀퍼의 <멘탈의 연금술> 은 바로 그런 질문을 던지는 책이었다.
그는 이미 <돈,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 성공전략> 같은 책으로 밀리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부와 성공을 거머쥔 건 아니었다. 20대의 그는 신용불량자였고, 인생의 벼랑 끝에서 좌절을 경험한 사람이었다. 그랬던 그가 인생의 멘탈 코치를 만나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었고, 30대에는 백만장자로 도약했다.
그 과정에서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 바로 버티는 힘이었다. 많은 자기계발서가 인내와 긍정적인 마인드,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법을 강조한다. 하지만 보도 섀퍼는 그것을 단 하나의 단어로 압축한다. “버텨라.”
‘이겨내라’, ‘참아라’, ‘견뎌라’는 말보다 ‘버텨라’는 단어가 더 깊이 와닿았다. 단순한 의지력의 문제가 아니다. 무너지지 않고 끝까지 견디는 것. 살아남는 것이 곧 승리라는 것.
그의 문장은 거칠고 단호했다. 마치 학창 시절, 엄격한 선생님이 교실에서 매섭게 훈계를 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네가 약하면 세상은 가차 없이 너를 짓밟을 것이다.” 그의 어조는 당근보다 채찍에 가깝다. 어떤 독자에게는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강한 표현 속에서 그의 절박함과 진심을 읽었다.
‘성공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결국 버티는가, 무너지는가의 차이가 아닐까?’
책을 덮으며, 어제와 오늘을 떠올렸다. 36일째 금주를 이어가는 나. 어제의 유혹을 견디고, 오늘 아침의 개운함을 맞이한 나. 어쩌면 나도 버티고 있는 중인지 모른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을까?
보도 섀퍼는 내게 다시 묻는다.
“당신은 끝까지 버틸 수 있는가?”
책을 덮고 잠시 손을 올려 생각했다. “버틴다”는 말. 어쩌면 내 삶에서 가장 익숙한 단어였다. 나는 늘 잘 버텨온 사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버티는 것이 곧 승리라고 믿어온 사람이었다.
작년 11월, 27년을 다닌 직장을 퇴사하기 전까지 나는 누구보다 버티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직원들에게도 그렇게 말해왔다.
"버텨라, 버티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나를 봐라, 나는 이렇게 버티고 있지 않느냐— 그 말을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다녔다. 마치 그 말이 진리인 것처럼. 하지만 결국 나는 버티지 못했다.
나 스스로 떠나왔다고 합리화했지만, 사실은 포기한 것이었다. 27년간 몸담았던 곳에서 내가 원하는 자리에 서지 못했고, 결국 스스로 그만두었다. 불가피한 상황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고, 미래를 위한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얼마 전, 포기했다.
왜 포기했을까.
책을 읽으며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그러고 나니 깨닫게 되었다.
나는 준비되지 않았다.
회사와 미래를 공유하지 못했고,
신사업에 대한 감각이 미흡했고,
부하직원을 제대로 키우지 못했고,
건강을 돌보지 못했고,
자기계발에 소홀했다.
아니, 사실은 소홀했다기보다 흉내만 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버티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무작정 버티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버틴다는 것은 단순히 참는 것이 아니라, 앞을 내다보며 준비하는 과정이어야 했다. 나는 그 점을 간과한 채, ‘버티는 것’만이 정답인 줄 알았다. 그리고 결국 그 한계를 마주하고 말았다.
보도 섀퍼가 말하는 “버티는 힘” 은 단순한 인내가 아니라, 무너지지 않고 끝까지 나아갈 힘 을 의미한다. 나에게는 버티는 힘은 있었지만, 나아갈 힘이 부족했던 것이 아닐까.
이제 다시 묻는다.
나는 정말로 버티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단순히 버티는 척을 하고 있었던 걸까.
책을 읽고 난 뒤, 머릿속을 떠도는 생각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가 아니었다.
오히려 ‘왜 하지 못했을까?’ 라는 질문이 끝없이 맴돌았다.
나는 알고 있다. 후회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감정이라는 것을.
그러나 그 후회를 잘 보관해 둔다면, 언젠가 인생의 퍼즐 조각을 맞추는 데 쓰일 수 있을 것 이라는 것도 안다.
오늘 《멘탈의 연금술》 을 읽으며, 나는 내 인생의 퍼즐 조각 중 하나를 끼워 맞춘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오래전 한 선생님이 떠올랐다.
중학교 시절, 우리들은 그를 “깡패” 라 불렀다.
국어와 한문을 가르쳤던 선생님.
늘 반으로 잘린 당구 큐대를 들고 다니던 사람.
한문 시험에서 한 문제를 틀릴 때마다 큐대로 허벅지를 내려치던 무서운 존재.
시험이 끝나면 인근 약국에서 안티푸라민 연고가 동나곤 했던 시절.
물론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그때는 그랬다.
그런데 오늘, 보도 섀퍼가 그 한문 선생님처럼 나를 호되게 꾸짖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왜 포기했느냐!"
"왜 버티지 못했느냐!"
한문 시험을 보던 중학생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때처럼, 약간은 무서운 감정도 들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한문 선생님 덕분에 나는 한문을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는 것.
피할 수도 없었기에, 맞지 않으려면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그 결과, 나는 중학교 3년 내내 한문 시험에서 100점을 맞았다.
그리고 그 한문 실력은 나중에 사회생활에서 예상보다 큰 도움이 되었다.
중국 주재원으로 떠날 때도, 한자를 읽고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한 무기였는지.
나는 오늘, 보도 섀퍼라는 새로운 "깡패"선생님께 그때처럼 혼이 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알고 있다.
이 꾸중이 분명 내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다시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52년을 살았고, 앞으로 남은 50년을 준비해야 하는 나에게
보도 섀퍼는 또 다른 한문 선생님이 되어 나에게 나타났다.
이 깨달음을, 나는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다.
책을 덮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자전거에 올라 페달을 밟으며, 오늘도 영상을 시청했다. 그리고 영상의 마무리처럼,
나도 오늘을 한 편의 시로 정리해 본다.
“집은 조용하고 세상은 고요하다.
읽은 자는 책이 되고 여름 밤은 의식이 살아난 책과 같다.
집은 조용하고 세상은 고요하다.
그런 그에게 여름 밤은 완전한 생각과 같다.
고요함은 의미의 일부,정신의 일부
책을 향한 온전한 접근
집이 조용한 것은 그래야 하기 때문
조용하다, 그것은 여름과 밤,
그것은 거기서 늦게까지 몸을 기대고
책을 읽는 그 사람”
월리스 스티븐스의 <집은 조용하고 세상은 고요하다>
운동을 마치고 샤워를 마친 뒤, 거실로 나왔을 때 마침 막내가 현관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오늘 학교에서 졸업식이 있었고, 봄방학이라 일찍 끝났다고 했다.
"점심 준비를 못 했는데 어쩌지?"라고 하니,
"라면 먹으면 돼요!"
막내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때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회사 사정으로 오늘은 일찍 퇴근한다는 이야기.
그러다 말미에 볼링장으로 갈 테니 데리러 오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어제도 늦게까지 볼링 치고 오지 않았어?"
"오늘 또 가? 대단하다, 정말."
아내의 볼링 사랑은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다.
하지만 그 열정을 어떻게 거절할 수 있을까.
결국 나는 알겠다고 대답하고 현관을 나섰다.
그때 막내가 나를 따라나오며 물었다.
"나도 같이 가면 안 돼요?"
순간 고민이 스쳤다.
고3인데… 아무리 내신이 끝났다고는 해도 고3인데…
막내의 눈빛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마치 ‘장화 신은 고양이’ 처럼 애절한 눈빛.
결국 나는, "어차피 서울대 갈 실력도 아닌데, 개학하면 열심히 하면 되지 뭐."
혼자 중얼거리며 막내를 데리고 볼링장으로 향했다.
아내의 볼링 사랑은 정말 무서울 정도다.
어제 4게임을 쳤는데도 오늘 다시 6게임이라니.
그리고 막내도 아내도 전혀 힘들어하는 기색이 없었다.
"대체 저 체력은 어디서 나오는 거지?"
나는 옆에서 감탄만 하며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들의 에너지는, 어쩌면 내가 잊고 있던 무언가를 떠올리게 하는지도 모른다.
볼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늦지 않은 시간이었기에 이른 저녁을 먹고 각자의 시간을 가졌다.
보통 선생님께 혼나고 난 날은 아프고 힘들다.
하지만 그 다음 날은 이상하게 더 집중하게 된다.
오늘 하루가 딱 그런 느낌이었다.
난 오늘 내 멘탈을 강하게 담금질 했고 드디어 오늘 진정으로
강철멘탈이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오늘 하루를 정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