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속도를 조절하며, 자신의 한계를 높이고, 달리는 순간을 즐기는 것
금주 51일째, 프로그램된 로봇처럼 몸을 일으켜 하루를 시작했다. 베란다 창 사이로 스며드는 찬 바람이 순간적으로 머릿속을 환기시켜 주었다. 아직 겨울의 흔적이 남아 있지만, 어딘가에서는 봄이 준비되고 있을 것이다.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명상을 마친 뒤, 자연스럽게 책상으로 향했다.
어제 잠시 덮어 두었던 <랩걸>을 다시 손에 들었다. 우연히 마주한 책이지만, 이제는 그 만남을 필연으로 만들고 싶어졌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호프 자런의 문장 속에 더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단순히 읽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세계를 조금씩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 같았다.
중반부터 호프 자런은 본격적으로 나무와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단순한 지식의 나열이 아니라, 그녀가 직접 경험한 순간들을 토대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에세이 형식으로 흘러가면서도 저자의 주관적인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통 과학자가 쓴 글이라면 건조하거나 딱딱할 거라는 선입견이 있지만, 호프 자런의 문장은 그와는 전혀 다르다.
그녀는 독자에게 자신의 해석을 강요하는 대신,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시선으로 사실을 전달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감정이 스며든다.
과학이라는 분야가 이렇게 감성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신선하게 다가왔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호프 자런이라는 작가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과학이라는 다소 어려운 주제를 그녀는 위트 넘치는 표현과 절제된 유머로 풀어낸다. 그것이 단순한 농담인지, 아니면 마치 스탠딩 코미디를 보듯 계산된 유머인지 헷갈릴 정도다. 덕분에 나는 지금 과학 서적을 읽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책 속에 몰입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이 책의 유머가 단순히 독자의 흥미를 유도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는 점이 더욱 매력적이었다. 과학적 내용이 부족하거나 가볍게 소비되는 신변잡담식의 글이 아니라, 분명한 논리와 지식을 바탕으로 한 깊이 있는 서술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나무의 목적은 오로지 이파리를 피우기 위해 헌신하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잠시 책장을 덮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나무는 매년 지고 피기를 반복하지만, 그 과정에서 결코 같은 패턴을 반복하지 않는다.
해마다 조금씩 변화를 시도하며, 더 나은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적응해 나간다. 이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사실이, 식물에 대한 내 선입견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동안 나무를 바라보며 한 번이라도 “이파리를 피우기 위해 헌신한다”는 시선으로 생각해본 적이 있었던가? 나무는 그저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존재라고 여겼을 뿐인데, 나무는 사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치열하게 변화를 모색하며 끊임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이 이 책의 부제다. 그러나 지금 2부를 마친 시점에 아직까지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등장하지 않았다. 그러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내가 사랑을 너무 인간 중심적으로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가 떠올리는 사랑은 결국 인간이 경험하는 감정이었다. 사랑은 인간만이 독점할 수 있는 감정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까지 읽은 내용만으로도, 이미 식물들 역시 사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글 속에 담겨 있다.
나무는 단순한 생명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적응하며, 스스로를 보호하고 성장시킨다.
자신의 이파리를 피우기 위해 헌신하고, 해마다 새롭게 도전하며, 존재 자체로 생태계를 이루고 살아간다. 그것이야말로 사랑이 아닐까? 그리고 생각해 보면, 호프 자런은 이 책의 처음부터 한결같이 인간을 포함한 다양한 종의 사랑을 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사랑’이라는 단어를 좇으며, 어쩌면 너무 인간적인 감정만을 떠올리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러나 아직 3부가 남아 있다. 그 주제가 ‘꽃과 열매’인 것을 보면, 어쩌면 저자가 말하고 싶은 진짜 ‘사랑’이 그 안에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저자의 생각을 섣불리 예측해서는 안 된다. 책을 읽으며 가장 크게 배운 것 중 하나는, 절대로 책을 예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저자가 이끌어가는 흐름을 따라가며 그 속에서 공감하는 것, 그것이 독서의 본질이다. 하지만 종종 나는 미리 결론을 내리고, 저자가 말하려는 것보다 앞서 상상하곤 했다. 그리고 그런 책들은 대부분 내 기대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고, 예상이 빗나간 만큼 실망도 커졌다.
그러니 이번에는 조용히 기다리기로 한다. 호프 자런이 들려주고 싶은 ‘사랑’의 이야기가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지, 그녀의 문장 속에서 자연스럽게 발견해 나가는 것. 그것이 이 책을 가장 온전히 즐기는 방법일 것이다. 결국 오늘은 2부에서 이 책을 잠시 덮어 두기로 했다.
씨앗에서 시작해 이파리, 나무, 기둥, 그리고 꽃과 열매로 이어지는 생명의 흐름을 단숨에 넘겨버리기보다는, 천천히 음미하며 가슴속에 담고 싶었다. 단순히 읽는 것이 아니라, 한 문장 한 문장을 머릿속에 깊이 새기면서, 책이 전하는 감각을 그대로 느껴보고 싶었다.
그리고 어느새 12시. 늘 그렇듯 프로그램된 로봇처럼 몸을 일으켜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웨이트를 마친 뒤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몸이 깨어나고, 땀방울이 흘러내리면서 생각도 점점 또렷해졌다. 오늘 틀어놓은 영상은 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저자가 직접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성공에 대한 동기부여를 전하는 짧은 영상이었다.
“부자들의 뇌에는 부자 소프트웨어가 설치되어 있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부자가 아닌 소프트웨어가 설치되어 있다.”
하와이 대저택
오늘 영상 속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프트웨어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부자는 계속 부자로, 가난한 사람은 계속 가난한 사람으로 살게 된다.
이 말이 처음엔 다소 단순하게 들렸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핵심은 ‘소프트웨어’ 자체가 아니라 그 소프트웨어를 작동시키는 방식에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두 소프트웨어의 본질적인 차이는 크지 않다는 점이다.
차이는 단 하나. “한계(limit)”가 있느냐, 없느냐.
그리고 이 한계는 누군가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만든다. 결국, 자신의 행동과 능력의 최대치를 설정하는 것은 환경도, 타인도 아닌 오직 ‘자신’이라는 것이 오늘 영상의 메시지였다.
우리 인생은 어쩌면 자동차와 같을지도 모른다. 모두가 태어남과 동시에 ‘인생’이라는 자동차를 선물 받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 차를 타고 ‘삶’이라는 고속도로를 달린다. 때로는 도로가 막혀 천천히 가야 할 때도 있고, 예상치 못한 고장이 나 잠시 멈춰야 할 때도 있다.
어느 순간에는 휴게소에 들러 숨을 고르며 재정비할 필요도 있다. 이런 상황들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막힘도, 고장도 없는 길 위에서는 어떻게 달리느냐이다.
앞이 훤히 뚫린 고속도로에 서 있다면, 우리는 원하는 속도로 질주해야 한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자신의 인생이라는 자동차의 성능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어쩌면 우리 인생이라는 차에 ‘LOCK’이라는 속도 제한(한계)이 걸려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그 제한이 누군가가 설정해 놓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설정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내가 지금 달리고 있는 속도는 정말 내 차의 한계인가, 아니면 내가 걸어 놓은 제한 속도인가?
옆 차선에서는 수많은 차들이 쌩쌩 지나간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막연한 박탈감을 느끼고, 때로는 "내 차가 문제인가?" 하고 자책하거나 태어날 때부터 좋은 차를 받지 못 했다는 탓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말 문제는 내 차의 성능이 아니라,
내가 설정한 속도 제한(한계)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제는 그에 맞는 속도로 내 한계를 조정해야 하지 않을까.
인생이라는 자동차를 타고 살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안전하게 도착하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다.
속도를 조절하며, 자신의 한계를 높이고,
달리는 순간을 온전히 즐기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이 아닐까.
마부자의 생각^^
영상을 보며 페달을 밟는데, 평소보다 더 힘이 드는 느낌이 들었다. 숨이 가빠지고, 다리에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 왜 이렇게 힘들지? 순간 계기판을 보니, 앗! 속도에 대한 생각을 하다 보니, 내 페달 속도도 너무 빨라져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더 강하게, 더 빠르게 밟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실제 고속도로를 달리는 기분으로.
이러다 시속 110km로 페달을 밟다가 심장이 터져버리는 게 아닐까? 갑자기 우스운 상상이 스쳤다. 그제야 속도를 줄이고, 호흡을 고르며 천천히 마무리했다.
속도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멈추거나 조절하는 것도 속도의 일부라는 것. 운동을 마치며, 오늘도 몸과 마음이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특별한 약속이 없는 한, 일주일의 루틴은 거의 변함이 없다. 독서, 운동, 청소 그리고 잠깐의 휴식 후 저녁...
술 약속이 없고, 막내의 학원 일정에 맞춰 저녁을 6시 전에 먹는다. 그리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7시까지는 아내와 함께 거실에 앉아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을 나누는 시간.
하루 동안의 크고 작은 일들을 가볍게 이야기하며, 서로의 하루를 정리하는 짧지만 익숙한 대화들.
그 후, 취침 시간인 10시 전까지는 각자의 방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보낸다. 나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아내는 TV를 보거나 조용히 쉬는 시간. 같은 공간에 있지만, 서로의 시간을 존중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방식이 자연스러운 습관이 되었다.
모든 습관이 완벽하게 뇌에 적응되는 시간, 66일. 이제 15일 남았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완전히 새로운 나로 변화하는 과정 속에 있는 것일까? 아직은 몸에 완전히 습관이 되지 않은 것인지, 가끔은 너무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고 있는 게 맞는 길인지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멍하니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지는 않다.
루틴이 일정하다고 해서 반드시 지루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같은 일상 속에서도 내 모든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 그 변화는, 아마도 매일 일기를 쓰면서부터 시작된 것 같다.
스쳐 지나가는 생각, 눈에 담긴 풍경, 무심코 들리는 소리, 혀끝에 남는 맛.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매일 내 감각을 글로 기록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덕분인지, 똑같은 하루를 살고 있어도 새로운 하루를 살고 있는 기분이 든다.
오늘도 외출 없이 보낸 하루였지만, 책과 영상 속에서 내 속도가 성장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하루였다.
이렇게 또 한 걸음 66일까지, 그리고 그 너머까지.